꿈쩍하지 않는 갑상선 수치
늘 나아지는 기분을 갖고 싶다
결국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
오락가락하는 컨디션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1년 동안의 휴직에도 갑상선 염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기운 없음' 증상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갑상선에서 서서히 자란 염증들은 쉽게 물러설 곳이 없어 보였다. 면역체계가 무너진 몸은 가누기 힘든 시간을 대부분 침대에서 보내야 했다.
당장은 아픈 몸을 돼 살리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쉬는 일도 어려웠다. 특히 주변에선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도 되는 거니?"
"잠을 하루종일 잘 꺼야?"
"약을 먹어도 그렇게 피곤해?"
"살쪄 보이는데, 적당히 먹어라."
"어제 뭘 먹었길래, 얼굴이 부었니?"
"요새 살쪘니?"
"다들 약 먹으면서 회사 다닌다던데?"
"약 먹으면 괜찮아진다던데?"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테니 나를 이해 못 하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기분 나쁠 일도 아니었다. 호르몬제를 드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환자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가혹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듯싶다. 녹초인 기분을 꾹 참고 지내야 하는 일은 자신만이 아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호르몬제를 먹은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직장 생활하던 때가 그리워졌다.
일을 하며 쓸모 있는 나를 찾는 보람, 즐거움, 보상들도 말이다. 갑상선 염증으로 서늘해진 몸 때문일까? 성취하며 느끼는 열기가 그리웠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흔히 말하는 경력 단절 여자가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이력서에 10년 동안 갑상선 염증과 싸우며 보냈다고 쓸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시간과 돈이 주어지면 대부분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픈 환자들에게 똑같은 조건이 주어지면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머뭇거리다가 시도조차 못한 꿈을 이뤄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건강을 잃는다는 건 모두를 잃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깨달은 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것이다. 일을 통해 내 안에 열정을 맘껏 쏟아낼 날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난 걷는 것을 즐겨한다. 평소에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걷는 일은 몸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는 효능도 있다. 아무것도 안 되는 날에도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나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발 한발 걷는 행동이 마치 제자리에 멈춰진 일들까지도 진척이 되어가는 것 같다. 초조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선, 걷기 만한 약도 없다.
올 초에 바이러스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몸이 문제가 생겼다. 아이를 잠시 안아주고 나서 저녁 무렵부터 허리를 쓰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누워 지냈다. 화장실 가는 일이 가장 눈물겹고, 다음은 잠을 자는 것이 슬펐다. 갑상선이 문제였을 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집 밖은 바이러스가 문제였지만 몸을 위한 가벼운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냥 가만히 있다가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평소 같으면 하루에 아이 둘의 등하교, 장보기, 산책을 하면 만보기가 15,000보는 넘게 찍힌다. 특별한 운동 없이도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매일 걷기를 하던 몸이 집에 묶이자 오히려 근력이 떨어지고, 힘이 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쉬고 나머지 날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와 걷기를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허리 부근이 힘이 생기고 아랫배에 당김이 느껴졌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 갑자기 귀찮아졌다. 태양이 가득한 낮시간에 걷기 위해 , 하품이 밀려왔지만 정오가 되자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본 장미꽃은 아직 남아 있을까? 시들어 가고 있었지만 화단에 남아 있는 장미꽃을 한 번 더 찍고 싶었다. 그리고 뒷산으로 갈 작정이었다.
시들어가는 장미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전날보다 꽃잎은 옅어지고 있다. 말린 장미꽃이 아닌 천천히 시드는 장미꽃은 황홀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시간을 부드럽게 누리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말린 장미가 좋아서, 장미꽃을 사다가 활짝 피기 전에 거꾸로 매달아 말려서 걸어 놓기도 했지만, 자연 그대로 시드는 꽃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꽃을 찍다가 시든 꽃을 보면 좀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짙은 꽃잎은 점점 연하게 변하고, 연한 꽃잎은 점점 짙은 갈색이 된다. 근처에 장미정원이 있는데 지난가을에 사계장미들이 제법 만개했던 것이 떠올랐다. 뒷산을 가는 대신 장미공원으로 향했다.
건물 화단에 장미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장미공원을 가는 길에도 화단에 핀 장미들이 보였다. 이미 지고 있는 장미 꽃송이가 찬바람에도 생기 있게 버티고 있었다. 장미공원에 도착하니 그곳에 장미꽃 모습도 비슷했다. 달력의 계절은 12월 겨울이지만, 자연은 서서히 조금씩 겨울로 가고 있었다.
오월 봄 장미축제에는 수없이 많은 인파들이 꽃구경을 하러 온다. 내가 원하는 장미꽃 사진을 맘껏 찍으려면, 이른 아침에 가야 한다. 사람들 속에서 꽃을 찍는 일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미꽃을 실컷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바로 장미가 시들어갈 때다. 지는 꽃을 구경 나온 사람들은 없다. 운동 삼아 산책을 나온 어르신들만 보일 뿐이다. 피어나는 꽃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시들시들한 꽃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나가는 할머니가 시든 장미에게 "장미가 다 시들었네, 시든 꽃은 보기 싫어 내 얼굴 같아."라고 찡그리셨다. 꽃의 시간에 여자의 시간으로 맞추자면 할머니가 된 꽃은 시든 꽃이 맞을까? 할머니가 되어야 그 말에 대답할 수 있을 듯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을 거닐 듯 장미공원을 홀로 걸었다. 오직 나를 위해 핀 장미꽃인 듯 사진에 담을 장미꽃은 줄을 서서 날 기다렸다. 구석구석 꽃을 찾아 사진을 찍었지만 뭔가 쫓기듯 조바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장미꽃과 붉게 익은 장미열매(로즈힙) 사진들을 정리했다. 뭔가 억지로 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지만 간절했다.
내일, 그리고 내년에도 지금보다 나아진 기분이 되길 바란다. 설령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버리고 싶지 않다. 갑상선 수치가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경계선까지 내려와 주길 바라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도 호르몬제를 먹으며 내 갑상선에게 기대를 건다. 지금 이대로 더 나빠지지 않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