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진단 검사가 알려준 것들

갑상선은 왜 망가졌을까?

by 무쌍
갑상선 질환은 심리적인 문제가
원인 때문이라고?


갑상선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내 갑상선이 왜 망가졌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심리적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대부분 갑상선 질환에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상선 질환은 유전적인 요인도 영향을 준다고 알고 있지만, 왠지 다른 이유도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게도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지만, 몸이 좋아질 수 있다면 확인해보고 싶었다.




상담실 대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예약된 시간이 되자 이름을 불렀다. 10일 전 나는 이미 두 가지 리 진단 검사를 했다.

하나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 -2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였고, 다른 하나는 문장 완성검사(SCT Sentence Completion Test)였다.

다면적 인성검사는 500개가 넘는 질문지였는데, 평소 활자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답을 작성하는 일은 좀 피곤했다. 생소했지만 문장 완성검사가 한결 나았다. 쓰인 문장을 이어서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그리고 다음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상담사가 하라는 대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걸 썼다. 래서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리가 없다."라고 썼다.


검사를 위해선 50개의 문장을 다 완성해야 했다. 일 글을 쓰는 나지만, 글쓰기로 진단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문장 완성검사는 글쓰기나 퇴고하는 기분과는 달랐다. 어울리는 문장을 떠올리는 것도 아니었고, 오직 진단을 위한 문장 완성이었다. 내가 느끼는 걸 문장 속 주어진 상황이나 대상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막상 다 채우고 나니 내가 회피하고 싶던 대부분의 것들이 글로 쓰여 있었다. 어쩌면 그런 것을 알아내기 위 문장 완성검사였다.



막상 진단검를 하고 나니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피곤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기 직전 긴장감이 몰려와 전문의 앞에서 초초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괜히 했나 싶었고, 반대로 내 심리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리고 10일 기다리고 받은 진단 결과지에는 가장 바랬던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스트레스 관리가 잘 이루어져 있고 정서적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너무도 몰랐다는 것을 후회했다. 갑상선이 망가진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검사 결과에 쓰인 글들은 나를 훨씬 더 놀라게 했다. 나의 과거, 감추고 싶던 상처, 심지어 내가 보지 못한 아픔까지도 해석되어 있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같았다.

나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관계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비난받을 것에 매우 염려하고 살고 있었다. 관계에서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자제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인이 보는 관점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장면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지난 10년 넘게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깨달은 것은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동안 별 탈 없이 같은 용량의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



아마도 나의 갑상선은 주 어린 시절부터 초적 욕구는 되도록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참고 억눌려 지낸 것이 문제였다. 지금은 우울증이나 다른 소견이 없었으니 나는 '갑상선'만 문제였다. 병을 얻었지만 나를 돌아볼 기회도 얻은 거라고 믿고 싶었다. 픈 몸을 치료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아픔도 함께 보살핌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재 내게 심리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큰 포상이었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듯했다. 앞으로 나의 심리상태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의사이자 정원사인 그녀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보듯 정화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 카타르시스다.
- 수 스튜어트 스미스 <정원의 쓸모> 중에서


집으로 돌아와 키우고 있는 식물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시든 풀들을 정리하고, 토마토도 땄다. 그리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대파를 뽑았다.


화분을 정리하며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더 이상 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직접 식물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 하는 힘을 키워주는 듯했다. 내가 붙들어야 하는 꿈은 무엇이고, 어떤 꿈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정리를 미뤄서 인지 빈 화분이 한꺼번에 많아졌다. 다시 화분에 새로 흙을 고르고,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사랑을 담아 씨앗을 심었다. 화분에 커가는 식물처럼 나도 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사람으로 나답게 살아가고 싶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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