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이 자꾸 날 재운다

내 갑상선은 잠이 부족해

by 무쌍
뿌옇게 생긴 갑상선 염증을
처음 보았다.


병원을 다녀온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진료가 있던 날 일 년 뒤 예약일을 잡고 의사가 갑상선 초음파를 하자고 했다. 처방전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해서 겁이 났다. 처음 병원에 오던 날 했던 초음파 검사를 갑자기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의사는 갑상선 호르몬 약을 먹는 환자들에게 보통 2-3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약을 먹은 지 십 년이 되는데 초음파 검사는 두 번째다. 검사일을 예약하고 약을 받고 돌아왔지만, 끝나지 않은 갑상선에게 좀 부탁하고 싶었다.


'좀 나를 내버려 둘 수 없겠니?'

그럼 갑상선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스스로 괴롭혀서 그런 걸 내가 무슨 수로?'

아프고 나서야 나를 알게 되었다는 좋은 점도 있었다. 혈검사를 하면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나오는데 검사를 하기 전엔 내 갑상선이 안전한지 몰랐다. 사실 어디가 아프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음파 검사 결과를 보러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었다. 흑백 사진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검은 바탕에 뿌옇게 덮인 회백색의 무늬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갑상선 염증이란 걸 처음 보았다.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먼지처럼 희끗한 것들이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의사는 먼지 같은 염증들이 단단하게 뭉쳐지거나 커지면 종양이 된다고 말했다. 염증 소견만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내가 환자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몸이 차츰 회복되고 나선,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책을 읽었다. 상선이 복되면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책을 통해 '갑상선'에 관해서 하나씩 알게 되었다. 일부러 찾아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전혀 상관없는 책에서 툭하니 나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얼마 전에 정신과 전문의가 쓴 심리학 책을 읽다가 갑상선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심리상담으로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겪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임상에서 만난 우울증 환자 중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체적으로도 자가 면역 질환을 겪는다고 했다. 그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질환이 바로 갑상선 질환이었다는 것을 의사 본인도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내 병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지만 의사는 집안의 유전적인 물려받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외에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또 귀가 솔깃했다. 정말 아픈 이유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 내가? 나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걸까? 내가 왜 아파야 하는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직장을 다니다 결혼한 지 2년 차였던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었다. 암 진단을 받지 않았으니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땐 그런 생각은커녕 분노에 차 있었다. 원망해도 소용없는데도,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중얼거리며 계속 화를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다독일 것들이 필요했다. 의사가 말한 6개월 후엔 기적처럼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가길... 완전히 병에서 벗어나길 말이다.




갑상선이 자꾸만 날 재운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나는 갑상선이 재우면 자야 했다. 자고 나면 모든 일이 순조롭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낮잠을 자는 것도 부족했는지 자꾸 잠이 쏟아졌다. 오늘도 벌써 두 번째 토막 잠을 잤다. 밤에 잠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깊은 잠을 잤다.


컨디션이 좋을 땐 낮잠이 필요 없기도 하지만 이번 여름은 잠이 쏟아지는 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그냥 눈이 감기면 잠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금방 개운하지 않지만 분명 다른 효과가 있다.


바로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새로고침'이다. 한숨을 자고 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집안일을 시작했다. 잠깐씩 눈을 붙여 무리가 되지 않게 지내려고 했지만 하루에 두 번 이상의 새로고침은 부작용도 있었다. 자주 멍해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모든 걸 갑상선이 아닌 이글거리는 날씨 탓으로 떠밀고만 싶었다.


빛나는 건 어디든 있습니다

파올로 코엘로의 <내가 빛나는 순간>은 자신의 트위터 글을 모아서 묶어낸 책이다. 책 제목부터 내가 좋아하는 '빛'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나를 알면 알수록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젠 나의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봐요. 오늘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비난받기 싫어서 사람들 기분 좋게 하려고 친절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세요. 세상에는 빛나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무난한 것은 이제 됐습니다.

파올로 코엘로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나를 위한 메시지 같았다. 내가 바라는 <내가 빛나는 순간>은 바로 내가 빛을 내는 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건강해야 했다.

초초해하지 말고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피곤할 땐 쉰다. 지인들과 만남도 몸이 무거워지면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을 관리하다 보니 아이들과 관계도 유쾌해진 듯했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니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일어났네? 엄마 더 주무세요."

시도 때도 없이 자는 엄마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듯 말한다. 아이 얼굴은 발그레하고 뭔가 들킨 모습이었다. 런데 알고 보니 잠들기 전에 잔소리를 했던 일을 엄마가 기억 못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분 상쾌해진 난 아무 일 없었던 처럼 했다.


"배고프지 맛있는 거 해줄게."

나는 다시 다정한 엄마로 새로고침 되었다. 상선이 재우면 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난다. 매일 먹는 호르몬제만큼이나 강력해서 '지금 여기'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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