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갑상선을 타는 기분이란

갑상선 기능 저하증 판정 후 11년

by 무쌍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기운 없음'이다.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잠이 쏟아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을 꼬박 새운 듯 눈만 감았다가 뜬 느낌이다. 특히 자고 일어나려고 할 때가 무척 힘들었다. 낮잠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였다.


목이 불편했고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말도 느려지고 말 수도 줄었다. 기력이 없는 날은 타인과 만남도 최소화했다.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줄어야 겨우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밖으로 향했던 에너지를 모두 내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병원은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석 달 만에 가다가 반년에 한 번 진료를 받게 되었다. 점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치료는 간단했다.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약물로 보충해 주면 되는 것이다. 조금씩 호르몬제 줄여가며 내 몸은 차츰차츰 생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오랫동안 마주해야 했다. 시간은 오래 걸린 듯 하지만 몸이 점점 나아지니 우울감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지금 먹는 호르몬(씬지로이드 0.025mg) 용량은 5년 전부터 유지 중이다. 호르몬제에서 가장 적은 용량으로 말고 있고, 몸도 특별한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경우 항체 수치가 워낙 높아서 약을 끊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내 몸에 맞는 최소의 복용량을 지키고 잇으니,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고장 난 갑상선을 갖게 되니 망망대해 홀로 조각배를 탄 기분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 위에 출렁이는 파도가 몸을 계속 지치게 했다. 파도를 즐기는 법을 모르는 몸은 출렁일 때마다 녹초가 되었다. 그러다 호르몬제를 먹고 나면 몸을 지치게 한 파도는 잔잔해지며 사라졌다.


상황이 나아지면 바로 배가 출항을 할 듯 하지만, 문제는 항해를 할 기분이 안 든다는 것이다. 배가 움직이긴 하지만 미 뒤처진 기분이고, 피로감이 느껴질 때마다 큰 파도처럼 서워 움츠려 들기도 했다.


치료를 시작하고 행히 아무렇지 않게 종일 항해를 나설 수 있었다. 잠시 바람이 불어주고 날씨가 좋으면 시원한 바다를 건너는 기분도 느껴졌다. 지만 갑상선은 계속 삐그덕 하며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앉게 만들었다. 좋은 날과 별로인 날이 섞인 일상 어색했다. 그렇게 내 갑상선은 치료를 시작하고 한참 지나서야 익숙해졌다.




서른을 막 넘긴 나이에 찾아온 병은 이전에 삶을 계속할 수 없게 했다. 바로 휴직을 했지만 일 년 만에 결국 퇴사를 했다. 일 년 동안 치료를 했지만 바닥으로 주저앉히는 '기운 없는 몸'은 오락가락하며 날 지치게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불쑥 무기력과 우울증이 달려와 몸을 붙잡아 버리면 더 나쁜 상황이 될지 몰랐다.

갑상선 때문에 식욕이 없어도 몸무게가 늘었지만, 체중계도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 동안 치료를 하기도 했지만, 호르몬 복용량이 거의 맞춰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급격한 '기운 없음' 증상은 3년 정도 지나니 호전되었다. 약을 먹고 3년이 지나서야 기운 없는 몸을 숨기고, 아픈 갑상선을 내색하지 않게 되었다.


고장 난 갑상선을 움직일 능력이 생긴 건 르몬제를 먹고 7년째 되는 해였다. 특별하게 피곤함을 느끼거나 몸이 무겁고, 체중이 늘지도 않았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 호르몬제를 끊을 수 있다고 기대했었다. 삶의 목표는 갑상선이 회복한 후에 다시 세울 생각이었을까? 지난 7년 동안 나는 아플까 봐 두려워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까지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고 완치해서 예전과 같은 갑상선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일 지도 모른다. '완치라는 기대'를 내려놓는데 7년이 걸린 셈이다. 그 뒤로 5년이 지났지만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초음파 검사를 받고,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를 확인한다. 나는 갑상선이 시키는 대로 산다.

갑상선은 이제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연료 없이도 갑상선을 쓸 수 있지만 나는 호르몬제라는 연료를 채워야 한다. 예전엔 연료를 다 채워야 했지만, 지금은 딱 필요한 만큼 매일 충전해서 쓴다.


망망대해 아무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더 진실되고 깊은 인생이 있다는 걸 게 되었다. 시간의 강을 건너는 동안 내면에 채워진 에너지는 더 강해져 있음을 말이다. 상선에 생긴 염증은 그렇게 내 몸이 일부가 되었다. 에서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나에게 집중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상선이 내 삶을 바꿔 놓았지만 이전에 삶보다는 훨씬 나를 위한 시간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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