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는 성격은 갑상선 때문이다

갑상선의 경고

by 무쌍


진단명은 갑상선 기능저하증
하시모토 갑상선염이었다.


응급실을 통해서 혈액검사를 하고 만난 의사의 첫 마디는 "힘드시죠?" 였다. 내 갑상선 호르몬 기능을 전혀 하지 않아서 심각하다고 했다. 이 정도 호르몬 수치면 앰뷸런스에 실려오는 분들도 많은데 다행이라며, 일주일 후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목이 부은 증상에 대한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의사도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약을 먹으면 목의 혹은 가라앉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의사가 직접 준 작은 지퍼백엔 7개의 알약이 들어 있었다. 씬지로이드 정 0.1mg 노란색 작은 단추 만한 약을 매일 아침 공복에 먹으면 된다고 했다. 먹고 1시간 뒤에 식사를 하고 당분간은 쉴 것을 당부했다.


아픈 증상에 비하면 약은 너무 가볍고 작았다. 의사는 일주일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직장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의사는 최소 3개월 이상의 휴직을 권했지만, 곧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가까운 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도 아픈 몸을 들키고 싶지않았다. 쉬면서 치료하면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회복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모든 일상이 달라질 것이란 예상을 전혀하지 못했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라푼젤처럼 성에 갇힌 채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높은 탑 위에서 긴 생머리를 늘어뜨려 누군가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탈을 꿈꾸며 많은 상상을 했다. 내가 갖고 있던 어떤 기질들이 살아나길 바라며, 알수없는 미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시간을 대부분 망설이는데 쓰는 중이다.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놓쳐버린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싫지만, 후회하는 것이 아직은 참을 만한 것 같다. 가끔은 망설이는 시간 때문에 위험한 일을 피하기도 했다. 내게 자유롭고 끈질긴 열정이 있기는 할까?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망설이는 성격은 더 강력해졌다. 오늘 하루를 쓰게 될 에너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으로 자각할 수 있다. 가뿐한 날은 평소대로 지내고, 피곤한 기분이 들면 그날은 오전에만 움직이고 오후는 쉰다. 마음은 하고 싶지만 매일 컨디션을 체크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마음이 항상 복잡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몸에 생기는 병은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겠다.


인간관계에서 더 나은 모습이 되려면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배워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잘 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타인에게 좀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를 항상 맨 마지막으로 두었다. 모든 일이 정리가 되어야 나의 차례가 되었다. 누군가의 하소연을 듣거나 말을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예전처럼 수다를 감당하는 것도 갑상선이 자꾸 가로막아 피곤해졌다. 아이들을 보내고 홀가분해진 엄마들과 수다도 친구를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몸을 지켜야 했다. 충전이 필요한 휴대폰처럼 깜빡깜빡 사인을 보내듯, 휴식이 필요해지면 내 몸에서도 '띵띵' 위험 신호를 보냈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공짜로 훔쳐보는 듯 묘하게 스릴 넘쳤다. 도서관에서 다정한 주인공이 정원을 가꾸며 하는 수다가 담긴 책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바깥 생활을 못한 채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것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것처럼, 혼자 하는 글쓰기가 좋았다.

가만히 있으면 가슴속에서만 들끓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밖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할 방법이었다.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고독 속에 은둔한 채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늘 갑상선의 눈치를 봐야 하는 병을 가졌으니,
나를 소심병 작가라고 해두자.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기처럼 시작했지만, 쓰는 일은 이력서 작성보다 훨씬 더 진실되게 느껴졌다. 갑상선이 망가진 것이 오히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신호였다.


회사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매달 입금되는 월급으로 끝까지 숨길 수 있었는데, 툭 튀어 난 목처럼 겉으로 드러나 버렸다.


병이 더 이상 내가 돌아갈 곳이 거기가 아니란 걸 증명이라도 해준 것 같았다. 라푼젤처럼 회사에 갇힌 나를 구원한 것이 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후에야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몰라서, 계속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갑상선이 나빠도 약 먹으면서 일도 하고 회사도 다니던데요?"

그녀의 말은 맞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갑상선에 대해선 자신감이 1%도 없었다. 다시 나빠지면 심각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많다. 갑상선 저하증이지만 언제든 항진증으로 바뀌거나, 갑상선 결절이 생겨 암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건강은 언제든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최악이었다.

갑상선이 문제가 생길까봐 무척 쫄아 있었기 때문이다.


갑상선염증이 나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는 것은 스스로 숨기고 있는 생각이었다. 회사 생활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과거의 나는 어리석었다. 마음이 원하는 주파수를 찾아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는데 열중해야 했다. 갑상선이 주는 경고는 바로 현실을 직시하고 병이 주는 교훈을 배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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