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은 나를 닮았다

잃어버린 나

by 무쌍
너무 피곤 했다.
자고 일어나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외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 입구를 내려가야 하는데 까마득한 계단 아래를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을 뗄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무거웠다. 택시를 타고 곧바로 잠이 들었고, 기사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집에 왔지만 방금 전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며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목 중앙에 작은 공이라도 들어간 듯 블룩 솟았는데, 마른침을 삼 겼는데 아프거나 따갑지도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은 목은 단단히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 만져보니 뭔가 말캉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묵직한 듯 거북했다.


회사로 가는 대신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무섭기도 했다.

의사는 목을 보더니 혈액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또 잠이 들었다.

병원에서 온 전화를 두 번 만에 받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세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응급 상황이에요. 상급병원에 가셔야 해요."


가까운 병원을 알려달라며 응급으로 진단서를 보내줄 수 있다고 나를 재촉했다. 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기분 때문인지 모르지만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상급병원 응급 진료는 늦은 오후지만 일사철리로 진행되었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나를 잃어버렸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었다. 서른, 막 신혼을 시작했고, 날개를 단 듯 내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월급을 받는 일이 즐거웠다. 진정한 행복이란 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짝이는 곳만 쳐다보니, 등뒤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내 몸에 이상이 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회사일이 늘어서 잠이 많아진 줄 았았다. 일주일 넘게 그런 날을 보내고 나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런데 계속해서 몸무게가 늘었다. 가장 먼저 알려준 체중계의 신호를 무시한 것이 내내 후회되었다.


나는 피곤함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불끈하고 다시 충전되었다. 휴대폰이 배터리 잔량 부족 알림처럼 경고가 울리지만, 몸이 방전될 때까지 멈추지 못했다. 때론 내 몸이 고통을 잘 못 느끼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잘 다치는 손은 늘 작은 상처가 만든 흉터로 알록달록 하고,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작은 상처가 늘 있다. 긁히고 스친 흔적은 있지만 피가 나지 않으면 언제 그런지 기억이 없다. 웬만해선 피곤하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루 일과가 끝이 나면 고단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 갑상선은 늘 피곤하다.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채우기 위해서 매일 같은 양의 호르몬제를 먹는다. 아침 공복에 먹으면 전날 저녁에 충전기에 꽂아 둔 휴대폰이 아침이면 충전이 다 된 것처럼 된다. 잠시 약으로 충전된 듯 살아난 몸이지만 다시 호르몬은 부족해진다.


도 비슷하다.

주변에 일어나는 골칫거리를 치우느라 녹초가 된다. 매일 빨간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막 뭔가를 끝내고 돌아섰지만, 또 다른 일이 순서를 기다린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어색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할 일이 주욱 늘어져 있어야 하고 뭔가를 보고 있는 시간들이 있어야 존재감으로 포장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시간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느라 내 건강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갑상선이 망가지고 나서야 나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상선 호르몬을 채워주는 씬지로이드처럼 내 일상에도 처방이 필요했다.

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신세 진다는 기분이 싫어서 부탁을 잘하지 못했다.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먹기 싫은 약을 먹는 기분이다. 그래서 한 번쯤 그냥 내가 해버리면 안 될까 하는 유혹도 있.


하지만 그렇게 지내다간 영영 글을 쓸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서 집안일은 다 하기보다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해 본다. 매일 먹는 갑상선 호르몬제처럼은 아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갖으려고 한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섰다.


화단마다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산에서나 보던 진달래가 화단마다 분홍 꽃잎이 활짝 피었다. 진달래가 핀 화단을 따라 걷다 보니 한적한 산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달래 꽃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와서 묻는다.

" 벌써 진달래가 피었나 보네요?"

하며 말없이 꽃을 내려다보셨다.

잠시 동안 우린 진달래 꽃을 함께 바라봤다. 할머니는 내게 말없이 손인사를 하며 어디론가 걸어가셨다. 달래꽃 앞에서 묵직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꽃을 한참 보고도 금방 돌아서지 못했다. 다정한 미소와 싱그러운 자연에게 신세 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