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걸까? 작가라는 직업은 꿈꿔왔으니, 좋아하는 작품만큼 작가들에게 호기심이 많았다. 직접 만날 기회는 갖기 어렵지만 작가들의 인터뷰 글은 꼭 찾아서 보게 된다. 그리고 작가 인터뷰 중에서도 골라서 보게 되는 질문이 있다.
글을 쓸 때 어디서 쓰는지?
글이 안 써질 때는 뭘 하는지?
글이 언제 잘 써지세요?
특히 글이 잘 써질 때는 언제인지, 어떤 상황이 글을 잘 쓰게 해 주는지 말이다. 난 그게 가장 궁금하다. 나도 글을 잘 쓰는 기분을 갖고 싶어 훔쳐보기를 하듯 샅샅이 인터뷰를 읽는다.
대부분 작가들은 기분이 좋을 때 보단 슬프거나 아프거나 좋지 않을 때 더 글을 쓰게 된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시작한 건 인생이 좀 안 풀리고 어긋났다고 느꼈을 때였다.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다. 갑상선이 망가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 문제들이 쏟아지며 하나도 건져 올릴 것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넘어진 채로 바닥에 한동안 있었다. (갑상선 때문에 일 년 넘게 누워 지내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수개월은 누워있다시피 했으니 엎드린 게 아니라 누워 있었다가 맞겠다.) 언제쯤 다시 일어날까? 그러다가 망설이는 마음들이 글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되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그전에 작가가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만 했지.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생각은 못했다.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책임질 자리가 분명해졌고, 아이들이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닌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그냥 묶인 채 잠시 내버려 두었다. 내 힘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포기가 된 것인지 모른다.내가 존재했던 것들은 무너졌지만, 아이들은 쑥쑥 자랐다. 살림과 육아가 때론 위안이 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서서히 애정으로 바라보는 관찰자로 바뀌어 갔다.그랬더니 글도 써지기 시작했다.
작가 토니 모리슨도 비슷한 말을 했다. " 아이들이 어려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과는 정반대입니다. 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글을 전혀 쓰지 않았어요."서른아홉이 되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가 타계할 때까지 삶을 대단했다. 나에겐 넘볼 수 없는 그녀지만 적어도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는 비슷하다고 하고 싶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직장을 다닐 때였다. 제휴업체 담당자였던 그녀와 편하게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녀에겐 공부 잘하는 딸이 있었고, 자신이 번 돈으로 딸의 학비며, 생활비를 주는 것이 보람이라고 했다. 얘기를 하는 중에 카페 유리창 너머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잠시 밖을 응시하더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저 등단한 시인이에요!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새벽 바닷가에서 시를 썼는데, 그 시로 등단했어요. 그런데 그다음은 잘 안되더라고요."
"....."
난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커피는 뜨겁게 남아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아팠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녀의 소식은 끊겼다. 하지만 그녀가 일을 하며, 시를 쓰고 있기를 바란다.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는 엄마들은 수없이 봤고,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인생이 아니었다. 대신에 사연이 많아진다는 건 글 쓸 기회도 많아지는 것이니까 손해 본 건 아니라고 믿는다.
한 소설가는 고향이 서울이라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시골에 태어났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수많은 작가들이 어린 시절로부터 글감을 끌어 온다는 것 알고 있고, 부럽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소설가의 모든 문장이 탐이 난다. 소설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건 여전히 그가 부러워서 그렇다.
나도 작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온다면 그럴듯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계속 글을 쓰며, 누군가와 글로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