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조용해지는 연습을 한다

글쓰기

by 무쌍

시험점수가 엉망이면 어쩌지?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지?

결혼을 못하면 어쩌지?

아픈 몸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지?

애를 잘 못 키우면 어쩌지?

여러 단계의 걱정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못쓰면 어쩌지?'가 고민이다. 하루쯤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그렇고, 아무리 써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못쓸 것 같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두 가지의 의미가 다 담긴 걱정이다. 그렇게 들어오고 싶은 세계였지만 매일 써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다.

이럴 땐 책 속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 해결이 된다. 시름시름 기운 빠졌던 나는 방금 전까지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정말 감쪽 같이 증세가 사라졌다. 보통 잘 듣는 진통제 책 목록은 정해져 있지만, 요즘은 든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작가의 대명사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 말이다. 그의 운둔 시절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읽고 있다. 책을 열자마자 펜을 들고 있는 안경 쓴 작가 사진을 보니 압도하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글을 쓰는 일이 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노인과 바다>가 10년이나 걸렸고, 작품이 돌풍을 일으키며 얼마 뒤 1954년 노벨문학상을 게 되었다는 것도 잠시 지독한 병이 그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그가 지독한 독감이나, 낙상사고로 다리가 다쳤다면 어땠을까? 마음의 병은 참으로 가혹하고 종잡을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랬지만, 지금 시대처럼 치료법도 안전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가 어떤 삶이었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비행기사고를 연달아 겪은 일이 있었지만, 어디서 부터 생긴 트라우마가 그를 계속 괴롭히고, 무엇이 몸을 무너지게 했는지 말이다.


그래도 작가는 스스로의 삶을 글로 남겨두기에 그의 인터뷰에서 트를 얻었다. 그는 매일 우물의 물을 규칙적으로 퍼내듯 글을 쓰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를 쓰지 못하게 했던 건 아픈 몸이었다.


소설이나 단편을 쓸 때면 매일 아침,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방해할 사람도 없고, 날은 서늘하거나 춥고, 와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더워지죠. 전날 써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알고 있을 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계속 써나가요. 아직도 신명이 남아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는 지점까지 쓴 다음, 거기서 멈추고 다음날까지 꾹 참고 살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힘든 일이죠.
- <파리 리뷰> 1958년 봄 호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글을 썼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인터뷰에선 매일 쓰고 써야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작업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장애물처럼 몸과 마음이 흔드는 통증들을 넘어선다는 것이 그를 더 힘들게 했을 듯싶다. 60세를 넘긴 그가 더 여유롭고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면, <노인과 바다>처럼 또 다른 노인이 주인공이 된 작품을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생을 마감해도 작가의 글은 멈추지 않는다. 미완성 원고나 출간되지 않는 원고가 발견되고, 쓰다만 문장과 끼적인 메모들이 발굴되니 말이다.


헤밍웨이 역시 생전에 출간한 작품 말고도 사후에 발표된 작품들도 있다. 헤밍웨이에 관한 이야기가 루머인지 사실인지 경계를 넘나드는 후일담을 보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만, 완벽하게 밝은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 있는 인생을 살다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일까. 작품을 완성하는 일은 몰아치기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물을 퍼내는 일처럼 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내일도 비슷한 오늘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일단 발을 들여놓았으니 계속 멈추고 싶지 않다. 시작하긴 어렵지만 '쓰기의 시간' 금방 끝이 나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글을 여러 번 고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책상은 고요하지만 치열한 곳이었다. 을 고통 없이 너무 쉽게 쓰려고 하진 않았는지, 노력 없이 요령을 부리는 건 아닌지 터벅터벅 시끄럽게 소리 내던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오늘도 난 없이 잠잠하게 조용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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