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의 뱀딸기꽃

뱀딸기 꽃

by 무쌍

누구에게나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내 아이는 한 시간을 꼼짝 안고 게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한 시간 동영상을 보는 것도 눈이 아프다. 편은 영화 한 편을 한자리에서 보지만 나는 벌써 들락날락 몇 번이고 일어난다. 드라마 한 편을 보면 머리가 띵해지니 같은 시간에 책을 보는 일이 더 쉽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데, 모두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기서 아는 사람들이란 집안 경조사에 만나는 가족이나 일가친척들, 이들 친구 엄마,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는 같은 동사람들다.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기도, 수다를 시작하는 것도 편치 않다.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지금 내겐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되었다. 아파트 경비업무와 청소를 하는 관리인들이나 마트직원들과 도서관 사서에게 가장 친근함을 느낀다.


이런 증상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고는 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적성에 맞는 '조용히 지내기'가 글 쓰는데 가장 필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주변의 말들이 귀에 잘 들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긴 노하우인 줄 알았는데, 군중 속에 살면서도 은둔하는 법을 터득하는 듯 싶다.


생각은 혼자가 되지 않고는 할 수 없었다. 종종 남편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다 들키면 참 미안해지곤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란 혼자 일하는 때를 말다. 사유하는 일은 글을 짓는 일의 시작이었다. 고독한 공간에서 오래도록 외톨이가 되는 것이 필요했다. 때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도 들었다.



다채로운 야생화가 뒤덮은 화단이 볼만해졌다. 꽃들을 들여다 내내 등뒤로 따듯한 햇살이 깨를 찜질해 주듯 고맙게 느껴졌다. 포근한 점심시간에 집을 나섰더니 화단에 내리쬐는 빛이 어딘지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무척 어려워했던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내가 자라던 귤밭엔 묘목들을 키우는 밭이 따로 있었다. 항상 양지바른 곳에 있는 밭은 가장 빨리 야생초들이 피어났다. 겨울에도 포근한 묘목밭엔 잡초가 나무를 덮은 보호망 아래 숨어서 자랐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둥굴레 싹이 올라오면 귤밭엔 아빠의 손이 귤나무 가지치기를 하 시작했다. 가지치기는 그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을 보낸 귤나무의 굳은 어깨를 덜어주는 일 같았다. 아빠의 전정가위는 일정게 쩍쩍 소리를 냈고, 종종 톱이 내는 솔음 돋는 소리도 났다.


아빠가 과수원을 오가는 동안, 언덕 위의 묘목밭에서 잡초 뽑는 일을 했다. 외톨이처럼 작은 귤나무들과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익숙했다. 가끔 비둘기가 울거나 아빠의 기침소리가 들렸고,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독한 장소였다.


섭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잡초를 뽑는 일엔 고민을 많이 했다. 알록달록 야생화들은 뽑아내기 아까워서 꽃송이만 따로 모아두기도 하고, 얄미운 듯 팩 하고 던져버리기고 했다. 꽃을 버리는 일이 싫었지만 귤나무 아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귤밭의 뱀딸기꽃은 어린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하고 있었다. 꽃이 지면 빨간 열매도 먹을 만해서 뽑아 버리기 싫었다. 화단에 핀 뱀딸기꽃을 보니 그 아이가 망설이던 때로 돌아간 듯 시간이 멈춰버렸다. 이제는 잡초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란 꽃 앞에서 금방 떠나지 못했다.


내가 귤밭을 지겨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영토에서 외톨이처럼 글을 쓰는 일과 닮은꼴이었다. 끝까지 해내야 하는 잡초 뽑기는 팔꿈치 만했던 묘목이 결국 귤나무로 크게 했다. 그 여자아이의 기억이 뱀딸기꽃처럼 선명하게 찾아와 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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