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예뻐서 앵두가 열리나 봐요

앵두꽃

by 무쌍

학교에서 오자마자 아이들은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곧바로 몸의 긴장을 내려놓는다. 방금 전까지 있던 일과는 모두 과거가 되고, 지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잠시 엄마의 품에 안기기도 하지만, 쌩하니 거실로 나간다. 수업시간 종이 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무언가에 집중한다.
늘 영감이 떠오르는 데로 만들기를 하거나, 궁리를 한다. 난 그런 아이를 지켜보고 잠깐 싹을 말을 붙인다.
"오늘 별일 없었었어?"
"응"

그리고 또 집중하면 뭔가 만드는 아이에게 방해되지 않게 나는 노트를 펼친다. 그전까지 몸을 움직였다면 이젠 한숨을 돌리게 된다. 집안 일과 해야 할 일들을 대부분 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집중하는 시간에 나도 집중을 하게 된다. 바로 글을 쓰기 적당한 시간이다.

멍하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아이의 손이 바쁘다.
또 말을 건다.
"뭐 좀 먹을래?"
"아니."
그리고 아이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수라장 같은 거실에서 아이가 찾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냥 아이의 의식이 가는 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골똘히 빠진 아이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공부하고 돌아온 지친 머리를 혼자만의 놀이를 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뭉친 몸의 근육을 풀면서 누웠다가 앉았다가. 그래서일까. 개운해진 듯 편안해 보였다.
한 번은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피곤했을 텐데 안 쉬어?"
"엄마 이게 쉬는 거야."

규칙과 규율에 맞춰 지낸 후라 그런지, 아이는 혼자 궁리하는 일을 쉬는 거라고 표현했다.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내가 희열을 느끼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간절히 원했고, 좋아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 훨씬 많았던 시절에 내가 유일하게 그리운 장면들이 있다. 바로 시간을 마음껏 내 것으로 쓰던, 반대로 말하자면 방치된 채 혼자 놀던 어린 나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 남겨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방치해 둔 부모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자연의 틈에서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친구의 시기나 질투도 없이 비교할 대상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건 떠 있는 태양이 알려주었고, 뱃속 위장들이 알려 주었다. 졸음이 쏟아지면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고, 호기심이 발동하면 도마뱀을 쫓아다녔다.


뭔가 갖고 싶어지면 귤나무 아래 야생화가 가장 많이 핀 장소를 찾아갔다. 제초제를 쳐도 그 나무 아래 야생화 꽃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꽃술이 층층이 달린,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만지면 툭 떨어지는, 한눈 판 사이 시들어 버린, 대롱대롱 작은 꽃다발처럼 생긴, 내 얼굴에 닿을 만큼 키가 큰, 진한 향기가 지독하게 느껴질 만큼 코를 찌르는, 알록달록 선명하지만 아주 작아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하는, 순식간에 귤나무 아래를 덮어놓는 위력을 가진, 끝없이 새로운 꽃이 피고 시들었다.


앵두꽃 과 자두꽃(2023.04.01)

정원 한쪽에 있던 앵두나무는 아빠가 참 예뻐하셨다. 꽃이 달린 만큼 열매도 달린다며 꽃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다.

앵두나무옆을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몰래 앵두나무를 만지다가 들켰다.


앵두는 해마다 많이 달린 건 아빠가 나무에게 보낸 애정도 있지만, 나무를 귀찮게 하지 않으셨다. 귤나무에 비료를 줄 때 같이 주긴 했지만 귤나무처럼 똑같이 사랑하셨다.


이상하게도 앵두보다 더 사랑받는 나무가 있었는데, 자두나무였다. 앵두나무에겐 무심하듯 놔두면서도, 자두나무엔 늘 시선을 못 떼셨다. 자두를 맛보는 마음을 나무가 두어 번 채워주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앵두를 따고 나면 자두 차례였는데, 자두 나무엔 이파리 말고 달려 있는 것이 없었다.

동네에 핀 앵두꽃도 자두꽃도 너무 예뻐서 며칠을 구경 갔다. 작년에도 열매가 잘 열렸는데, 아빠도 그런 마음이셨나 보다. 아이에게 풍기는 애틋함이 과일 꽃에게서 풍기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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