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나무의 힘

이태리 포뮬러 나무

by 무쌍

이름을 아는 나무가 많지는 않다. 꽃처럼 길가에서 흔하게 만나는 나무지만 내 키보다 훨씬 크거나 회양목처럼 늘 보던 나무들이 대부분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아보는 나무가 하나씩 늘어나자 나무가 서있는 자리도 함께 입력되었다.


한 2년 전부터였다. 산책로에 아름드리나무 하나를 알게 되었다. 노거수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얼핏 봐도 50년 이상의 수령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루나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의 교배로 만들어진 포퓰러 나무인데 고향은 이탈리아라고 한다. 나무가 성장이 빠르고, 목재는 제지용으로 사용되는 고마운 나무였다.

나무 아래는 긴 벤치가 놓여 있지만 늘 만원이라 한 번도 앉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 작년 겨울 산책로를 찾았을 때였다. 나무 옆 벤치엔 미루나무엔 따스한 태양이 드리우고, 나무그늘이 태양을 머금은 듯 포근한 공기가 느껴졌다.

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 나무는 모습과 반짝반짝 나뭇잎이 흔들리고 강물에 비친 노을이 사진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를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단단하게 무늬가 생긴 줄기를 손바닥으로 만져보며, 가까운 곳에 흔히 볼 수 없는 노거수가 있어 좋았다.

작년 겨울 산책로에 미루나무 그늘은 포근했다

곧 새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안식처가 될 곳이었다.



지난 6월 초 산책로엔 나무를 제거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유독 키가 큰 이태리 포퓰러 3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엔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의 안내가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위험 수목 정비 안내
이 수목은 수목 정밀안전조사 결과 수목의 부투도가 심하여 풍수해 시 전도될 경우 인명사고 발생 위험도가 높아 안전을 위해 2023년 6월 중 제거 예정임을 안내드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이 나무가 쓰러질 것 같지 않았다. 비가 아무리 와도 둑위로 물이 차오른 적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수변 공원이 아닌 아파트 단지와 나란히 조정된 산책로였다. 풍수 피해가 생긴다면 주변 아파트 단지가 모두 침수피해를 입을 곳이었다. 행정상 주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년 중랑천 수변공원에 식재한 이팝나무들의 수형에 비하면 오히려 반듯하게 곧은 나무였다. 유난히도 새로 식재한 이팝나무는 제대로 곧은 나무가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작년 폭우에 아니라 다를까 다 쓰러지셔 새로 지지대를 세우는 걸 보았다.


6월 말이면 제거된다는 말에 나무 앞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돌아왔다. 꼭 해야 하는 일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파트 주민도 아니었고,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산책로를 가보지 못했다. 나무가 잘렸을지 궁금했지만 얼마 전에야 산책로를 찾았다.



나무가 게시판이 된 것일까? 이번엔 나무 진단평가서와 쓰러진 나무 예시를 압정으로 덕지덕지 고정시켜 놓았다. 그리고 옆엔 테이프로 고정시킨 종이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고목을 제거하려면 먼저 주민들의 동의를 거치시기 바랍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선 모양이다.

마치 답을 하듯 구청에서 코팅된 종이들을 붙여 놓았다.

진단 평가에 내용을 훑어보았다. 위험이라고 하던 나무는 평가는 '보통'이란 결과로 쓰여 있었다.

나무 이름은 '이태리포퓰러' 지름은 84센티미터 수고는 19 미티였다. 기의 기울기도 '정상'이었다. 그래서 안 보이던 현수막이 걸렸다. 아파트 산책로에 조명등 조성을 한다고 큰 현수막이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누가 봐도 행정 편의상 벌어진 일이었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도 수군수군거렸다. 큰 나무만 골라서 자르려고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엔 한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나무를 살펴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분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나무 그늘이 주는 치유의 힘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분명했다.



얼마 전에 식물치유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녹색 자연을 바라보았는데도, 전두엽에서 불안과 혼란을 주는 세타파가 감소하고, 안정과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알파파라는 뇌파가 나왔다고 한다.

실내에서 키우는 관엽식물을 3분만 바라보아도 옥시헤모글로빈 농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이 역시 편안함을 느끼는 뇌파를 나오게 도움을 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단지 아파트에 조정된 산책로는 걷는 사람들은 늘 북적이는 곳이다. 한눈에 보아도 멋진 인공조명 등을 설치해서 알록달록 화려한 도시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도 우린 빌딩 숲에 살고 있다. 부디 나무가 주는 힘을 사라지게 하지 않기를 바고 싶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압정으로 고정한 사람의 손과 테이프로 붙여놓은 사람의 손은 다른 온도를 갖은 듯싶다. 녹색의 힘은 그 두 사람들의 온도도 잘 맞추어 주리라 기대해 본다. 나무가 위험한 건지 나무를 없애는 것이 위험한 것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7월이 되었다.

산책로 나무숲 사이로 높이 솟은 이태리포퓰러는 바람이 흔드는 대로 잎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무는 힘찬 여름을 품은 듯 풍성한 가지를 뻗어 말을 건네는 듯했다.

'너희들은 잘 지내고 있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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