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는 나무가 있다

여름동안

by 무쌍

어쩌다 시작한 일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에 관심이 해볼 기회가 왔다. 한 달에 두 번 외 화단에 심어진 나무와 화초 그리고 주변을 청결게 유지하는 일을 한다. 내가 관리하는 화단은 7군데인데, 모두 다른 장소에 있다. 크기도 제각각에 모두 다른 식물이 심어져 있다. 같은 화단은 하나도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은 취급하지 않아서 인지 대부분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내가 만든 화단도 아니었고, 내 소유가 아니니 당연할 테지만, 잠시 빌려 쓰는 텃밭만큼도 내 것 같지 않았다. 일로 만나 사이이기 때문인 듯싶다.


벌써 두 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식물들과 어색하기만 하다. 집 안에서 키우는 화초들과는 다른 처지이기도 하고 자주 보지 않아서 인지 나무 이름도 아직 기억 못 하는 곳도 있다. 화단에 피어난 민들레나 고들빼기, 개망초가 더 반가우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야생초들은 잡초이기 때문에 모두 뽑아내야 한다.


화단을 찾아갈 때마다 별일 없이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한여름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고 고온에 습도까지 올라가면 식물들은 여름감기를 앓는다. 곰팡이 바이러스와 벌레들이 들끓고 뜨거운 직사광선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선명한 색의 독버섯들이 여기저기 솟아나 균을 퍼트리며 삽시간에 버섯농장도 만든다. 텃밭처럼 갈 때마다 화단 관리 일도 항상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화단이 크면 한 시간도 걸리고 작은 곳은 십분 남짓 손을 보기도 했다. 같은 화단이지만 지난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이 화단은 누가 관리하는 걸까?

장맛비에도 맑은 날은 있었다. 해가 제법 뜨거웠다.

모처럼 찾아간 화단엔 거미줄이 치렁치렁 달려 있었다. 장갑을 끼고 제거하려는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나무 봤어요? 아이고 나무를 말려 죽었나 보네. 멀쩡하던 나무가 노랗게 죽었다니까."


나를 보자마자 흥분해서는 어서 가보라며 채근했다. 내게 말을 한 사람은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미화원이었다.

장맛비가 어제 그쳤는데 말려 죽는 나무가 있다니... 긴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얼른 화단을 살피러 갔다.


지난번에 초록 잎이 보송했는데, 누렇게 잎이 말라 있었다. 들여다보니 세상 처음 보는 벌레가 온통 가지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다. 가지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는 녀석들 때문에 나무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했다.


야외 화단은 벌레들이 천국이다. 나비나 벌은 상관없지만,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는 해충이 문제다. 수건으로 닦아내고 벌레가 심한 잎과 가지는 잘라냈다. 앙상해진 나무가 초라해 보였지만, 해충제를 살포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그날은 벌레 잡는 일과 잡초제거까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일을 해야 했다. 식물관리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계절의 특수사항을 식물들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은 듯했다.




다음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나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문가도 아닌 듯싶다며, 청소미화원이 건물 관리자에게 내 말을 했다는 것이다. 딱 두 번 마주친 사람 나를 그렇게 말했다니,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관리자에게 주의를 받고, 하루 종일 참담한 기분을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그냥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을 곱씹다 보니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던 것 같다.


그럭저럭 시간은 흘러갔고, 다시 화단관리를 하러 갔다. 그와 마주치기 싫었지만 그도 나를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평소처럼 달려와 말을 걸지도 내다보지도 않았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화단에 죽어가던 나무 두 그루엔 새잎이 돋아났고, 벌레가 붙어 있던 가지는 말끔해졌다. 주변에 응애가 잔뜩 들러붙었던 돌단풍잎을 모두 잘라냈었는데, 새잎이 돋아 아이 손바닥만 해졌다.


지난주에 남편에게 털어놓았다가 '그만둬'라는 말을 들었다. 하소연할 때도 없고, 따지러 갈 용기도 없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날이 되었다. 나무는 내편이었다.


꾸역꾸역 몸살을 견디고 살아나 주었다. 나무는 다시 건강해졌으니 덥수룩하게 잎이 돋고, 차란차란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를 뻗어내길 바랄 뿐이다.


식물과 함께 하는 일은 스릴이 넘치고, 예측할 수 없었다.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았고, 알고 있는 것은 소용없었다. 경험이 가장 좋은 공부인 것을 인정하면서 저절로 공부가 되었다.


몸살을 보란 듯이 이겨낸 나무에게 고마웠다. 감기도 걸렸다가 또 걸리듯, 나무도 자연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초록잎이 마치 손인 양 귀엽게 흔들었다.


나무는 내게 흘러가게 두라며, 털고 일어나라고 했다.

누가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지나갈 것은 지나간다고 말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더니 끝이 좋으니 에피소드가 되었다. 한 달 남짓 여름을 나면 가을이다. 3개월을 하기로 한 일도 여름과 함께 끝이 난다. 대신 가을엔 내 글로 쓰인 이야기가 화단처럼 탄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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