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도 않은 평양 땅에서 소멸되었다니, 서울은 지나간 듯했지만 어디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태풍도 휴전선을 넘고 육지를 건너는 일은 힘에 부쳤나 보다.
피해소식이 없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자연 앞에서 입을 다물수밖에 없나 보다. 매일 걷는 숲길이 궁금해졌다. 나무들이 간밤에 태풍을 잘 견뎠는지도 궁금했고, 입추가 말복이 지난여름의 시원한 공기도 느끼고 싶었다.
바람 소리 없이 주룩주룩 내리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집을 나섰다.
숲에 들어서니 병충해를 입고 누렇게 변한 이파리들이 떨어져 낙엽처럼 깔려 있었다.막 여물기 시작한 굴참나무 열매가 뒹굴고, 길을 따라 선 마로니에 나무 열매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큰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촘촘하게 떨어져 있었다. 백합나무잎은 가을 색처럼 알록달록 다른 색이었고, 청단풍나무엔 꽃송이가 달린 채 툭하고 놓여 있었다.
어제 오후엔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눈길을 끌었다. 태풍이 데리고 온 바람이 털어놓은 것들이지만 세차게 내린 비도 한몫을 한 모양이다.
잔가지들은 잘라놓은 머리카락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나무를 올려다보니 커트를 한 듯 짧아진 가지들이 단정해 보였다.
숲에 서 있는 나무를 돌보는 정원사는 자기 자신이었다.기회를 엿보다 해치운 듯 태풍을 만난 나무는 벌레 먹은 열매도 이파리도 아픈 가지들도 도려내듯 떨구었다. 나무는 사람들이 전정을 해주기만 기다리는 줄 알았다. 나무가 셀프 자기 관리 기술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로 겹쳐지지 않고 적당한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건 나무 자신이다. 숲의 상공에서 찍은 항공사진들을 보면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로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공생하는 나무의 모습 말이다.
태풍은 요란하게 비바람을 몰고 와서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했지만, 여름동안 덥수룩해진 나무들은 일제히 가지를 다듬은 날이었나 보다.
잘린 나뭇잎과 가지들을 보면 꾀나 시달렸을 텐데도 나는 나무들에게 '홀가분하지?'라는 안부를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필요 없는 가지들을 시원하게 털어낸 듯 나무는 더 건강하게 목표를 향해 뻗어나갈 듯 보였기 때문이다.
큰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나무도 있다고 하지만, 숲의 나무들은 서로를 잘 지탱해 주었는지 큰 탈은 없었다.
이른 아침 문자가 울렸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적인 일이 늘 사적인 일보다 우선이었기에 그런 업무 문자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일인데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일이 어렵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부탁에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항상 수락 버튼을 누르던 나였다.
대응을 하다가 문득 내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독촉을 받는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나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예고도 없이 후루룩 던지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물론 모두 업무 관련이고, 협의했던 사항이지만 나는 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는데, 시간을 좀 두고 대답을 해도 될 것을 후회했다. 바로 피드백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대답하다 보니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나 자신에게 불쾌해져 버린 것이다.
산책 길엔 플라타너스 열매도, 메타세쿼이아 나뭇잎도 있었다. 높이 매달려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가을 물이 못한 채 떨어진 청단풍잎도 보였다.
바닥에 놓여있는 것들이 아침 소동에 느꼈던 감정들인 듯 하나씩 되살아났다. 이미 썩은 가지처럼 내색하지 않았던 불만, 결실로 영글 것 같았지만 막연한 기대, 잡동사니처럼 아무렇게나 쌓아둔 일들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지난밤 숲 속에 나무들처럼 말이다.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일들을 잘 넘기는 방법을 나무들이 알려준 듯싶었다.
나무는 자신의 창조물 중에 건강하지 않은 것, 필요 없는 것들을 태풍이 오는 날 버린 듯했다.
어쩌면 나는 핑계를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를 도와줄 태풍 같은 사건 말이다. 긴가 민가 하던 감정을 정리해 줄 싸한 말을 떨어진 나뭇잎처럼 발견했다.
타인이 나를 무조건 배려할 것이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었다. 받아줄수록 오히려 일이 많아진 듯했다. 내가 수용하는 만큼 상대도 알아줄 것이라는 착오였다.
아직도 나는 나보다 타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 같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나무가 휘청거리며 떨어뜨린 건 태풍에 휘둘린 것이 아니었다. 기회를 노리고 기다렸던 나무의 자기 관리 시간이었다. 더 단단한 나무가 되기 위한 셀프 가지치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누구' 때문에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선을 넘나드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참았던 것이 내가 문제였다.
나무는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로 모아야 하는지 잘 아는 듯했다. 가지치기가 된 나무는 에너지가 온전히 건강한 가지들로 뻗어나가 더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얼핏 보기엔 태풍이란 시련을 겪었지만, 떨구어낸 것들은 흙으로 돌아가 나무의 거름이 될 테니, 마무리까지 나무 스스로 의도한 듯 보였다.
태풍이 지나간 숲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꾸지람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의기소침해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네가 맞아. 어차피 부러지고 떨어질 가지였어. 자꾸 불쾌함을 주는 관계라면 정리해. 새 봄에는 더 튼튼한 가지를 뻗어 낼 수 있으니까.
태풍이 찾아오듯 나에게 실망할 일이 또 생기겠지만 그때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나무의 비법을 따라 해 볼 참이다. 꺾인 가지는 버려져도 나무는 단단하게 더 높이 가지를 뻗어 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