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보러 와주겠지

8월의 산책

by 무쌍


여름 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꿈쩍 안고 서 있는 가로수처럼 계절 색이 드리워진 야생을 찾아왔다 싶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랑천엔 지난여름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매일 오가던 산책로가 낯설고 애인을 떠나보낸 사람처럼 혼자가 외로웠다.


집에서 왕복 3시간 도시의 정원 식물들을 돌보느라 그만 꽃이 많은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시급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니 무료 봉사는 아니었다. 여름이 끝나면 그 일도 끝이날 테니 더위가 사그라지듯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엔 어색했던 정원의 나무들과도 작별인사를 앞두고 있지만, 원래 내 자리였던 산책로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봄 제비꽃이 피기 시작할 때였다. 투고 메일을 출판사로 보내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을 것처럼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이 싫어진 것은 아닌데, 동네 저렴한 커피가 아니라 북촌의 유명한 카페 음료가 더 먹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보러 와주겠지.
그런 기분을 시든 꽃송이처럼 놓아 버리고 싶었다. 글쓰기가 멈춘 노트는 약속 시간과 할 일이 적힌 업무용 다이어리가 되어 버렸다.


봄꽃 구경은 커녕 6월의 꽃행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의 첫 꽃을 발견하는 재미도 모두 뒤로 한채 시작한 일이었다. 신데렐라처럼 평소와는 다른 차림으로 사람들을 만났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글을 쓰지 않고 꽃을 보러 다니지 않은 시간은 돈으로 입금되었다.


글쓰기가 그러했듯 글쓰기 아닌 일도 만만하지 않았다, 분량의 글자를 채워가듯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것도 차츰 익숙해졌지만, 꽃밭이 그립고 꽃송이처럼 탐스럽게 피어나던 나의 단어들을 다시 찾고 싶었다.



마음이 바뀐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늘 걸어 다니던 야생꽃밭이 아니라 공원 관리소에서 나온 정원관리사들이 잡초를 뽑고 새 모종을 심고 가꾸는 꽃밭이 되었다.


야생꽃밭 자리는 새로운 화단이 생겼다.

정원 안에 들어서자 꽃들의 불평소리가 들렸다. 수국이 바닥에 누운 패랭이꽃들이 하는 이야기에 참견하고 있었다.

꼬리풀꽃은 꽃잎이 듬성듬성 나온다며 상심했다. 뒷 줄에 핀 꼬리풀꽃은 뚱뚱해진 사초 덤불 때문에 머리를 자꾸 건드린다고 짜증을 냈고, 맨 줄에 핀 꼬리풀꽃은 건너편 있는 목수국의 풍성한 꽃잎을 부러워했다.


동안 내게 있던 일을 좀 털어놓고 싶었는데, 나의 구시렁 거리는 불평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내 사연은 꽃밭의 소란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혼자가 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산책로를 좀 더 걸었다.



새로 만든 화단이 끊어진 자리, 아직 야생이 남은 곳엔 환삼덩굴이 먼저 나와 었다. 반가운 초록덤불을 보니 야생꽃밭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달맞이꽃은 아직 잠들지 못했는지 여전히 달빛으로 피어있었고, 토끼풀꽃 두 송이는 킁킁 데는 개를 쫓아낼 방법을 궁리 중이고, 키가 크게 자란 부들레아는 나비들이 영 찾아오지 않는다고 초초해했다. 팔꽃 덩굴은 기다랗게 뻗은 손이 자꾸 물가에 닿아서 꽃들이 추울까 봐 걱정이었다.


가장 애를 쓰는 건 에키네시아였다. 그루터기였던 몸에서 전 보다 절반크기의 작은 꽃송이를 만드느라 기운을 다 소진한 듯했다. 심지어 땅에 붙은 패랭이꽃처럼 납작 엎드렸다. 긴 목을 내놓지 않는 건 키가 비슷한 달맞이꽃보다 패랭이꽃과 말이 잘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별 말이 없는 꽃이 있었다. 메꽃이었다. 지난봄부터 딱 그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제초하는 손길을 용케 피한 메꽃 덩굴은 살아있는 것 만으로 행복해 보였다.

메꽃은 걱정하지 않았다며 큰 소리로 시시덕거리고 있다. 아무렇게나 자란 야생초 덤불을 덥고 고약한 야생을 견디는 법을 자랑하는 듯 말이다.


나도 알고 싶었다. 그 매서운 야생, 그곳에서 견디는 법을 말이다. 꽃들의 수다를 더 듣고 싶었지만 물가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새들이 물을 차란 거리며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다. 물가에 닿을 듯 말 듯 날다가 휙 날아올랐다가 다시 물가로 내려오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내내 물고기를 입에 문 새는 없었다. 곧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새의 사냥도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새들도 떠나고, 발아래 핀 메꽃과 나만 남았다. 그래서일까? 메꽃이 불평이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란히 세 송이가 똑같이 활짝 피었다. 누구 하나 모자라지 않고 딱 알맞게 예쁘다. 이렇게 곱게 핀 메꽃도 시들어 떠날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지금 나는 무엇을 무서워하는 걸까?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이라면 꽃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할 듯했다.


꽃들도 떠날 것을 알겠지만 그 끝은 예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야생의 꽃들은 온전히 겨울을 맞을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잘려갈지, 폭우에 쓸려갈지, 가능한 모든 경우를 곱씹으며 계산하지 않을 텐데...


누구도 내일을 미리 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쓰지 않으면 지금은 사라져버릴테니, 부끄러운 나의 8월의 산책은 글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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