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의 의미예요

베르네부인의 장미정원

by 무쌍


네가 알앙 잘 살라


아버지가 내게 남긴 작별 인사였다.

나는 제주어가 몸에 밴 사람이다. 못 알아듣는 사투리가 없는데 나는 이 작별인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도록 해석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면서 그 앞에도 그 뒤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 말을 해석하려고 하면 자꾸만 8살 전 할머니의 집 안에 신을 벗어두고 부엌으로 안방으로 할머니를 부르며 찾던 아이가 보인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 집과 집을 오가며 지냈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할머니 집은 교복을 입은 채로 신부름을 자주 갔었다. 지금도 할머니 집 이불 냄새가 기억난다. 이상하지만 난 그 냄새가 나의 탄생의 시작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치 배냇저고리가 그 이불천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버지가 떠나시고 얼마 뒤 할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네가 알앙 잘 살라." 이 말이 무슨 뜻이야?

할머니는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내게 정말 몰라서 묻느냐며 웃으셨다.


"잘 살고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하던 대로 살라는 말이야."


그렇게 할머니가 해석을 해주셨지만 난 그 말이 오랫동안 섭섭했다. 그땐 긴 말이 아니어도 내게 해 줄 말이 더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이십 대는 연기처럼 사라진 아버지와 고향의 귤밭을 모른척하려다 보니 뇌가 오작동을 한 듯 싶다. 제대로 애도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정반대로 잊어버릴 까봐 비밀상자처럼 가두어 놓았다.


나는 아버지의 귤밭은 물려받지 못했다. 그 해 겨울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아버지의 농장을 그대로 물려받은 프랑스 장미원예사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장미 품종을 개발하며 장미농장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그녀처럼 귤밭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귤나무들과 살았던 시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처음부터 알 수 없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갔다.



영화 속 장미농장

영화 원제: 프랑스( La fine fleur)

영어 제목(The Rose Maker)

우리말 제목: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주인공 베르네 부인은 최고의 장미 품종을 개발하는 원예 가면서 기울어져 가는 농장을 되살리려는 농장 주인이다. 아버지가 하시던 장미 농장을 물려받았지만 겨우 대형 원예상들의 틈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배경이 꽃을 키우는 꽃 농장이라고 해서 영화가 참 낭만적일 줄 알았는데, 사실 꽃도 물건처럼 상품을 생산해서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래도 장미 정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라서 알록달록 화려한 장미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게다가 베르네 부인의 집안엔 벽에 걸린 그림과 꽂혀있는 책 그리고 소품까지 모두 아름다운 꽃을 키우는 원예가의 모습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했다.


미가 그려진 짙은 민트색 벽지, 장미그림, 장미꽃과 원예에 관련한 책이 쌓여 있는 집안엔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물건들처럼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장미 신품종 개발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과거의 유산과 늘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 앞에서도 그녀만의 장미를 만들 궁리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손에는 늘 펜과 노트가 들려 있었다.


영화 속에선 서로 다른 장미꽃을 접목으로 새로운 장미 품종을 개발하는 원예가의 모습이 자세히 나온다.

원예가인 그녀의 손은 능수능란했다. 장미힙(열매)을 칼로 도리고 씨앗을 받아 모종판에 하나씩 정성껏 싹이 나오길 기다린다 .영화에서도 설명이 나오는데, 두 부모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작은 종자로 태어난다. 장미의 품종 개발도 아이의 탄생처럼 씨앗으로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분재 화분을 만들 때도 씨앗을 받아 나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연에서 종자를 얻어 처음부터 키워내는 일이 어쩌면 원예의 기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 속 원예가들은 익숙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기다림이다.

싹이 나길 기다림

나무가 되길 기다림

꽃이 피길 기다림

새로운 품종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다림

사람들에게 팔리길 기다림


영화 속 장미 온실

원예가는 새 품종을 만들기까지 서두르거나 늦출 수도 없었다. 오직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오직 기다림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부모의 좋은 점만 닮은 아이가 태어나 잘 자라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장미나무를 교배를 하는 과정과 키워서 꽃이 피기까지 과정은 긴 시간이지만 그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그렇게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지만 인정받아 특허권을 받지 못하면 또 다음 해에 다른 품종을 선보일 준비를 했다. 그녀는 실패도 금방 인정했고, 또 다음 기회도 놓치지 않고 준비했다.


그래서일까?

한 남자아이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 주고 기회를 준다. 너무 스포가 될까 봐 긴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남자아이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자신이 장미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서, 베르네 부인의 장미 정원에서 배운 것을 설명한다.


제가 하는 일은 꽃을 피울 때까지 돌보는 거예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 얼굴로 귀찮은 듯 바라보는 부모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건넨다. 활짝 핀 장미 묶음은 포장지나 리본장식도 없이 단단하게 묶인 탐스러운 장미꽃다발이었다.


작별 인사의 의미예요.


긴 말도 없었고, 울먹이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처럼 작별인사였다. 그는 장미꽃처럼 자신이 자란 것을 알려준 것일까? 그런데 오래 곱씹고 싶지 않았다.

참 슬픈 장면인데 장미꽃도 그 남자아이의 대사도 너무 아름다웠다. 자신을 왜 버렸는지 왜 만나주지 않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듯 자신의 겪은 과거를 향기 나는 꽃으로 바꾸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베르네 부인의 장미 농장을 떠난다.


서로 다른 장미를 접목해서 교배하듯 베르네 부인을 만난 장미농장과 알지 못했던 자신이 접목되어 새롭게 뿌리를 내린 듯 그는 단단해져 있었다.


원예가답게 베르네 부인은 꽃말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영화 속 주인공 처럼 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셨다면 귤밭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잠시 과거 감상에 빠져있던 나는 이제서야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자유를 주셨고, 나는 내가 찾은 길로 걸어 나왔으니 말이다.




장미꽃을 실컷 볼 생각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 보고 나니 오랫동안 풀지 못한 조각을 이해했다.

더 바랄 것이 없고, 원망이 없는 작별인사는 말 그대로 작별의 의미였다. 소설의 마지막처럼 모든 설명은 과거에 있었고, 마지막 문장에 찍힌 "끝" 이란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완벽한 작별 인사를 하셨다. 나와 했던 시간들도 좋았다는 것이고, 앞으도'아빠는 네가 알아서 잘 지낼 거란 거 안단다.'라고 말이다.


지난 봄 동네 장미덩굴은 눈이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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