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떨어져 낙엽이 된다

1112

by 무쌍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는 3번째 발행한 편지글이었다.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남편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무도 모르게 시작한 일이었으니 누구도 몰랐으면 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을 해석해보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처를 눈으로 확인할 길은 글쓰기 밖에 없다고 믿었다. 누구의 권유도 아니었고, 진짜 치유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빙글빙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들을 노트에만 적어 두면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았다. 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검색해서 나란히 적어보았다. 행복한 기쁨, 슬프고 싫은 것들을 표현한 단어를 보니 내가 전혀 쓰지 않는 단어들이 보였다. 행복한 감정이나 싫은 감정 모두 잘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걸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닫게 된 것이다.



편지를 쓰고 싶은데 받을 사람이 없었다. 날마다 어디론가 걸었지만 목적지는 다시 집이었다. 공허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텅 빈 노트를 채우고 있었던 것 같다. 일주일에 하나 겨우 편지를 써서 브런치 북 하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리운 누군가에게 꾸러미로 묶어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승이 아닌 저승에 사는 사람에게 쓴 글이어서 인지 납작하게 말라버린 낙엽들처럼 소리는 부서지고, 할 말은 바람이 데려가 버렸다.

브런치 북/ 나에게는 정원이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야.
오늘도 이곳을 지나며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에 더는 살지 않는 사람들이지. 그래도 머릿속으로 불러 잠시 대화를 나누어본다. 도서관 가는 길에 버릇처럼 아버지를 불렀단다.
완전히 물들지 않은 플라타너스 잎 하나가 걸어가는 내 앞에 떨어져 있구나. 떨어진 낙엽을 보며 현실로 돌아와 버렸어. 아쉽지만 그 시간은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거든. 매일 작고 큰 일들이 나의 일상에서 만들지고 있다. 봉화산을 따라 도서관 가는 길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자라고 있었지. 삼십 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키를 가진 당당한 모습이었어. 우리 이름으로 양버즘나무라고 하는 이유가 나무껍질이 벗겨지며 버즘처럼 보여서라는데 나는 그 모습 더 좋단다. 벗겨진 회색 나무껍질 뒤로 보이는 연둣빛 속살은 정말 매력적이었거든. 올해는 너를 볼 수가 없구나. 보도블록 공사를 하더니 줄지어 서있던 너희들도 사라졌으니까 말이야.

대신에 이팝나무가 심어졌어. 봄이면 몽글몽글 하얀 꽂다말처럼 이는 나무가 있어서 눈을 떼지 못했단다. 찾아보니 이팝나무가 하얀 밥 같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작은 구름처럼 보이기도 했어. 너는 없지만 새로 심어진 작은 이팝나무가 첫 꽃을 피웠어. 별일이 없다면 다음 봄에도 하얗게 피면 바람에 흩날리겠지. 새로 온 나무와도 친해져야겠지만 도서관 가는 길에 네가 없다는 것은 좀 더 오래 기억해두고 싶구나.

요즘 나는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는 기분이야.
시간을 갖는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내 몸을 만들고 글을 쓰고 있단다. 자꾸 창밖을 내다보며 나갈 생각이 들어 조바심이 나지만 기다려야겠지? 너희가 서 있는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밝으며 도서관을 오갔던 일이 그리워서 어느새 별은 떨어져 낙엽이 되었구나.

뚝 끊어진 전화, 굴이 붉어지며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온 말 대신 러나오는 정을 닦아내야 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참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연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1월이었으니, 아버지의 기일 때문이었을 거란 짐작뿐이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일상의 언어에 숨기고는 담담하게 가을 낙엽 이야기로 둔갑시켰다. 리고 이미 사라진 그리고 변해가는 풍경을 아쉬워했다. 로운 풍경도 좋아해야지 다짐했지만 여전히 편지를 쓰던 그날을 그리워했다.


발아래 별처럼 반짝반짝 거리는 낙엽들이 비에 젖어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그림을 그려 넣은 듯 말이다.

붉은 단풍잎과 플라타너스 낙엽이 뒤섞인 바닥은 밟고 서있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해본 적 있나요?" 스님이 물으셨다.

이승과 저승이 다른 이별이니 연습을 해도 늘 슬픈 것이 맞거늘. 낙엽 한장 뒤에 숨어 있던 옛일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아낌없이 사랑했다고 믿기로 했다.

그땐 지글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나는 변해버렸다.

그리워하기엔 지금이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인 듯싶다.



가을 나무들은 발아래 무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모양도 색도 크기도 다른 조각들이 지난날을 담고 있는 무덤이었다.

나도 나무가 되어 얼룩진 낙엽들 틈에 금이 간 가지를 툭 하고 부러뜨리고, 덩굴손이 칭칭 감고 있던 아픈 가지도 잘라버렸다. 나만 보이는 무덤엔 흙 대신 반짝반짝 예쁜 단풍으로 덮어두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는 나를 앞세우고 싶어졌다. 낙엽무덤은 반짝이며 나를 돋보이게 하고 웅장한 겨울바람은 등뒤에서 단단한 각오를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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