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파란 하늘 아래 조각달과 덥수룩해진 느티나무를 만났다. 사진으로 담아보려 했지만 내 지친 눈 때문인지 사진도 흐릿하게 찍였다. 바람이 부는 하늘은 나뭇가지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래도 다음날 휴일을 만끽하는 마음은 들떠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 늦잠을 자보려 했지만,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는 위층에 인테리어 공사 안내가 붙었다. 소음이 가장 심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던가.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느티나무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이미 바닥엔 잘린 가지가 수북해서 여러 사람의 손으로 치우고 또 치우고 있었다.
잠시 사다리차에 올라 나뭇가지를 자르는 조경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느티나무는 눈을 마주 볼 정도였는데, 어느새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봐야 할 정도 싹둑 잘려나갔다. 세상은 훤해졌는데, 더운 공기가 곧바로 느껴지는 듯 나무 그늘이 벌써 그리워졌다.
집 앞 나무 그늘은 사라져 버렸다. 누가 나무 그늘을 가져가 버린 건지 책임질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무를 아주 베어간 것도 아닌데 왜 신경이 쓰였을까.
보통 때라면 아무런 일도 없는 평범한 날일 텐데, 나의 휴식을 방해라도 하는 듯 소음이 시끄러운 밖으로 떠미는 듯했다.
쉴 공간을 잃어버린 나는 밖으로 나서야 했다.
집 앞에서 나무 작업을 끝낸 톱소리는 또 다른 나무를 뱅뱅 돌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잘린 가지가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지치기를 하던 초봄의 귤밭이 떠올랐다.
가지치기는 귤밭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귤을 수확하고 비료를 든든히 넣어둔 귤나무는 한겨울을 나고 새봄이 오면 가지가 새로 돋아 났다. 아빠는 한 달 내내 가지치기를 하셨는데, 나는 잘린 가지를 모아가는 일을 했었다. 꼬박 스무 해 남짓, 한해도 거른 적이 없이 하는 주말 일과였다.
빨리 서둘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달리다가 다치기도 했지만 아빠에게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아빠는 혼자 귤밭의 가지치기를 끝내고 나면 전정가위를 잡은 손가락 군살이 단단해져 도려내시곤 했다. 큰 가지는 아빠가 날라 주시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나뭇가지를 끌어다 놓는 일은 지루했다.
귤나무 냄새는 진동하고 멀쩡한 가지들은 소각되었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인 귤나무는 쉽게 잘리지도 않지만 잎사귀는 더 질겼다. 귤 수확을 결정짓는 건 초봄에 하는 가지치기였다.
나무는 매년 커가지만 귤나무에 달리는 귤은 적당한 크기로 맛이 유지되어야 하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하셨던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지지치가 끝나면 귤나무엔 꽃이 핀다.
오월에 피는 어떤 꽃도 귤꽃의 향기에 비할 수 없었다. 엉겅퀴꽃처럼 진하고 아카시꽃처럼 향기롭다.
꿀향이 달콤하고 오렌지 향도 섞여서 과수원을 진동하게 했다.
가지치기가 잘되면 꽃을 따주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손으로 꽃을 따줘야 했다. 그런데 아빠의 가지 치는 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꽃이 알맞게 피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지치기를 많이 하셨다.
그땐 모르고 지금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잘 지내기 위해서 버려야 했고, 포기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말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을 땐 주변 정리부터 하게 되었다. 대청소를 하고 나면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보이기도 했다.
잠시 나무를 자르는 톱소리가 아빠의 전정가위소리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키가 작은 나는 귤나무 속에 있으면 나무보다 작아서 아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직 아빠가 내는 가위소리가 나는 곳으로 잘린 가지를 주으러 가던 나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귤밭이야기가 글이 될 줄은 몰랐던 나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귤밭의 아빠를 만난다.
글이 완성되면 일 년 내내 초록색 귤나무가 귤밭을 지켜주듯, 귤나무 숲 그늘이 날 숨겨줄지 모르겠다.
나무 그늘이 사라져서 집안은 환해졌지만, 태양이 그대로 내리쬐는 베란다를 여름동안 누가 막아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