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지친 기색도 없다

배롱나무꽃

by 무쌍

간밤에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오셨는데, 어떤 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빠와 단둘이 할머니 집에 자주 갔었다. 잠시 툇마루에 서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데, 할머니가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컵을 들고 오셨다. 군살이 전혀 없는 할머니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기 좋게 건네주셨다. 처음 맡아보는 고소한 냄새가 먹어보고 싶게 했다. 미숫가루인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곡물로 만든 차였는데, 달콤한 율무가 들어가고 조각난 땅콩이 씹였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씹을수록 더 많은 향내가 풍기는 차였다.

아빠와 나 둘 다 똑같은 머그잔에 주셨는데,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도톰한 두께에 크림색 머그잔은 가운데가 살짝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무 무늬도 없는 백자 같은 머그잔은 할머니 흰 얼굴색 같았다. 무거운 듯했지만 양손으로 들고 마시긴 버거운 무게가 아니었다.


비가 내려 흙이 깔린 할머니 초가집 마당은 금세 물이 고였다. 물이 잘 빠지는 곳은 채소가 심어진 우엉 팟뿐이었다. 빗소리만 나는 툇마루에 올라가 앉아서 '후후' 소리를 내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 반쯤 남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는 차를 다시 저어주셨는데, 스푼이 머그잔 바닥을 긁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으셨다.


잠깐 내려놓을 때마다 "따뜻할 때 마셔야 해."라고 웃기만 하셨다. 세 살 어린아이가 된 듯 할머니 시선을 듬뿍 받으며 그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없는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입을 다문채 금방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시골집 대문이 삐그덕 열리며 마당으로 들어가는 일은 내방 안에 발을 넣듯 망설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따라 부엌을 들어갔는데, 살림살이는 늘 깨끗하고 정해진 자리에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아궁이 옆에 놓인 비는 닿을 만큼 달아 신발만 해 보였다. 음식 냄새도 나지 않는 부엌에서 뭘 해 드시는지 궁금해졌다. 큰 소리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또박또박 말소리는 내 귀에 잘 들렸다.


은비녀를 꽂은 할머니 머리는 반은 회색빛이었지만 검은 머리도 섞여있었다. 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자식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아빠에게는 또 한 분의 어머니셨다. 몇 해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작은할아버지의 제사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몇 년 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왔는데, 전혀 다른 할머니 모습이었다. 백발이 된 머리는 더 휑하게 빠졌고, 눈동자는 힘을 잃었다. 새 하얗게 고았던 할머니의 손은 계속 무언가가 지워지지 않고 손톱마다 까맣게 묻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치매라는 증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예전처럼 미소도 짓지 않고 절대 웃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집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할머니를 경험했고, 지막 기억엔 변해버린 할머니 모습만 남았었나 보다, 꿈을 꾸고 나니 건강했던 예전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집엔 아빠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아빠와 오토바이를 타고 자주 귤밭으로 갔다. 그리고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을 달려 과수원 가는 길이 생각났다. 무덤가에 핀 배롱나무꽃이 내 손에 잡힐 듯 말 듯 까닥거리며 나를 애태웠던 날이 말이다. 매번 시도했지만 배롱나무꽃이 다 지도록 손에 닿기만 하고 꽃잎을 따지 못했다.

집 근처 화단에 분홍 배롱나무꽃이 만발하다. 아래로 늘어진 꽃가지를 사진으로 찍을 때도 몰랐다. 이맘때 나는 아빠와 과수원길을 달려갔었나 보다.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십 년 전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꽃은 다시 피어 내게로 왔다. 매년 다시 피는 꽃들은 내게 소중한 것을 일깨워 준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가족들과의 계절의 변화를 함께하고 있는다는 기쁨이다.


배롱나무는 주에선 무덤가에 심는 꽃나무지만 서울은 조경이 잘된 화단이나 공원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고향과 멀어진 만큼 꽃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졌나 보다.


신기한 눈으로만 세상을 보던 그때와 지금의 내가 같은 꽃이라는 걸 알아본 것 만으로 과거와 화해를 한 것일까? 꽃들은 겹겹이 쌓여서 슬픔과 기쁨, 아픔과 희열을 오간다.

나는 배롱나무가 서있던 그 무덤을 지날 때면 고개 돌려 쳐다보았다. 죽음의 풍경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고운 분홍빛이 피어났다.

작은 비석은 세월의 얼룩을 하고, 무덤에 쌓아 올린 흙 위에 까슬하게 덮인 초록의 야생초는 이불같이 뒤덮다. 차곡차곡 쌓은 산담(제주에 있는 무덤을 변을 둘러쌓아 올린 돌담)에 기댄 듯 휘어진 배롱나무가 지키는 무덤었다. 주엔 어디서든 무덤이 있고, 그 자리는 배롱나무가 지킨다.


어린 나이에 내가 본 죽음이란 자연 풍경의 일부였다. 자손들은 조상의 무덤가에 꽃이 필 때면 깊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족묘지에는 롱나무가 없다. 머니와 아빠 무덤엔 고사리가 꽃처럼 피었을 텐데, 예전에 그 무덤엔 배롱나무 꽃이 얼마나 피었을까.

내가 있는 곳에 핀 배롱나무 꽃은 지친 기색도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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