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꽃이 부른 사람들

미국부용

by 무쌍

필요했다.

특히 길가의 꽃이면 더 좋았다. 수렵을 하러 나가듯 때가 되면 꽃이 피던 자리를 찾게 된다. 꽃사진을 찍으면서 생긴 재능이지만 쓸데없이 가동되면 우울해지기도 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꽃이 어느새 시멘트가 발린 도로가 된다든가, 인공적인 조형물이 세워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꽃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리워졌다.



덥다는 핑계로 일을 하나 줄였다.

브런치에서 글쓰기 알람이 울리자 왠지 변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글쓰기 근육이 말랑해져서 사라질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공허함도 글쓰기 없이도 견딜만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북적거리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2023.07.20(미국부용)

지난여름에 보았던 접시만 한 꽃을 보러 가고 싶었다.


장마가 막 끝난 여름이었다.

중랑천 수변공원 같은 자리에 성인 키만 하고, 커다란 꽃잎을 판 미국부용이 피었다. 얼핏 보면 무궁화 같기도 하고, 접시꽃 같기도 하지만, 만개한 꽃송이는 대단했다.


리운 꽃을 보기 위해 새벽 산책을 나섰다.

같은 시간 예전 같으면 다른 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인데, 헐렁한 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손수건 한 장 주머니에 넣고 중랑천으로 향했다.


꽃을 나 혼자 독차지할 생각이었다. 여름 새벽은 꽃사진을 찍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눈부신 태양은 없고, 어스름한 빛이 깔린 공기는 꽃을 더 선명하게 담기 좋았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고, 쳐다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피할 수 있으니 맘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부끄럼 많은 내겐 안성맞춤인 샘이다.

선선한 바람도 시끄러운 소리도 없는 고즈넉한 중랑천을 기대하고 나섰다.


꽃밭 근처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봐도 큰 꽃송이가 보였고, 조금씩 다른 꽃 분홍색으로 만발해져 있었다. 해는 더 많은 꽃송이가 나를 기다려주었다.


나만 그 꽃이 탐나는 가 싶었는데, 꽃밭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나타났다.

새벽 5시 30분 산책로는 텅 비었는데, 미국부용꽃밭에 홀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모였다.


키가 큰 꽃은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처럼 꽃을 찍는 사람들은 숨었다 나타났다 했다. 한동안 우리는 미국부용 앞에서 찰칵거리는 소리만 냈다. 꽃을 금방 떠나지 못하는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 독차지하지 못했지만, 배가 부르게 식사를 마친 듯 좀 걷고 싶었다.


장 늦게 도착했지만 가장 먼저 꽃밭을 나왔다.


꽃밭에 남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작년에도 또 그 전년에도 나보다도 먼저 꽃에게 부름을 받은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왔다가 꽃밭으로 빨려가듯 사라지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홀로 새벽에 꽃을 보러 나온 동지들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바로 글쓰기가 필요한 시간, 미국부용이 피고 나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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