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안 보이던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집 안 한 구석에서 주인 없이 지내다가 밖으로 쫓겨 나온 것처럼 허술했다.
화분마다 흙이 쏟아지고 뒤 엉겨 대충 가져다 둔 모습이 영 안쓰러웠다.
숯으로 만든 장식품 앞엔 청자 난화분과 푸른 도기화분이 비어 있었다. 소나무는 가지가 정돈되지 않은 채 한쪽으로 자란 가지를 하고 그 뒤엔 산세베리아가 쏟아지듯 화분밖으로 꺾인 모습이었다. 백자화분엔 줄기가 앙상한 난줄기 하나가 젓가락처럼 꽂혀있다. 화분엔 바둑돌처럼 새하얀 장식돌이 아직 윤기가 나고 있지만 식물을 살아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항아리처럼 깊고 동그란 갈색 도기화분엔 익숙한 나무가 보였다.
"호랑가시나무?"
나무를 들여야 보려는 데 내가 아는 그 호랑가시나무 같지 않았다. 아니 잘 모르겠어서 사진을 찍어보려고 가까이 갔다. 작고 흰 꽃이 대롱대롱 피어있었다.
어느새 날아온 등에가 꽃송이에 붙어서 꿀맛을 보는 듯하더니 사진을 찍는 사이에 다른 등에도 찾아왔다. 꽃송이가 제법 많이 달린 꽃가지를 보면서 주인은 이 꽃이 핀 것을 알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꽃나무를 검색해 보니 나처럼 호랑가시나무라고 착각들을 더러 하는 모양이다. 더러 은목서라고 팔리기도 하지만 나무는 구골나무였다.
구골나무는 개 뼈다귀라는 뜻으로 물푸레나무과 목서 속에 속하는 상록활엽관목이라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랑 잎이 비슷해서 사람들이 착각하기도 한다. 꽃은 황백색이고 잎겨드랑이에서 가을에 핀다. 호랑가시나무 대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구골나무(2023.12.06)
내가 본 작은 꽃은 가을에 핀 꽃이었나 보다. 아니 가을에 피었을 꽃이 아직 남은 꽃술들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꽃이 하도 고와서 그 앞을 갈 때마다 들여다보지만 차가운 바람에도 멀쩡해 보였다.종종 가을꽃나무들을 만나는데 그 향기가 너무 아쉽다. 여름 꽃향기는 뜨끈한 공기가 오래 기억하게 해 주는데 말이다. 구골나무 꽃 향기를 맡으려는데 찬바람 아래에서 인지 아무래도 향기가 나지 않았다. 잎은 호랑가시나무처럼 뾰족 난 것이 대부분이지만, 새로 돋은 잎은 끝이 매끈해 목서잎 같이 보였다.
꽃을 피운 나무가 사랑을 듬북 받을 만한 날들인데도, 주인은 없는 듯싶었다. 이 겨울에 밖으로 쫓겨 나왔으니 말이다. 마당에 있던 호랑가시나무가 생각났다.
서양에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빨간 열매를 단 호랑가시나무 잎을 쓴다. 타샤튜더 할머니도 그랬고, 작은 아씨들에서도 본 듯싶다. 아가사크리스티의 마플시리즈에서도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잘라 장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손카드를 만들 때도 호랑가시나무 잎을 그려 넣고 작은 종을 그리는 것이 크리스마스 장식이었는데 말이다.
올 해는 이상하게도 성탄절 선물을 받고 싶다. 가족들에게 요청해서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 말이다.
잎이 뾰족한 모양이 호랑가시나무인 줄 알았지만 또 다른 나무를 알게 되었다.
호랑가시나무였다면 지금 쯤 꽃이 아니라 열매가 달려야 맞겠다. 아님 새들이 벌써 열매들을 가지고 갔을 지도 말이다. 열매가 독성이 있으니 아빠가 늘 건들지 못하게 하셨지만 항상 잊어버리고 열매를 따려고 했었다. 빨간 열매를 따려고 손을 넣었다가 호랑가시나무에 손이 찔리면 눈물이 나오기도 전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손을 데기가 망설여졌다. 구골나무 화분 위에 빈 화분과 물받이 접시가 올려져 있었지만 그냥 두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그러신다.
"저 소나무는 땅에 심어주면 좋긴 하겠는데, 금방 죽을 것 같네."
나도 할머니와 다를 것이 없었다. 호기심에 들여다보고 꽃이 핀 모습에 놀랐지만 그 자리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지만 구골나무에는 여전히 눈처럼 하얀 꽃이 피어있다. 이 작은 꽃나무를 누가 내다 버렸을까...
나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연말이 더 기다려진다. 이 작고 귀여운 나무를 잠시 내 것처럼 지켜보았다. 호랑가시나무는 아니지만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장식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