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눈사람의 시간

하루

by 무쌍

소복한 눈은 어디든 손을 뻗으면 눈사람을 만들 만큼 충분했다. 눈사람 전시를 구경하듯 동네 산책을 했다.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러 나가자고 하지 않아서 몸은 홀가분했지만 어색했다.


작년엔 분명히 두 아이가 모두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올 해는 쓱하니 창밖을 내다보고는 각자 하는 일에 바쁘다.



지난달부터 집안 정리를 했다. 청소라기보다는 쓰지 않은 물건은 골라내는 일이다. 작아진 옷들이 가장 먼저 수거함에 들어가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도 제법 있었다.

낡아서 그런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쓰지 않게 되는 물건이다. 이젠 쓰임새가 없어진 것들.

물건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그 물건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소유한 것과 소유하고 싶은 것이 줄어들어가니 삶은 단조로워 더 만족스러워진다. 그런데 늘 아쉬운 건 시간이다. 모두가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일분일초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지만, 점점 멀어지는 육아의 시간도 아쉽다. 눈사람의 시간이 왔지만, 아이들과 집안에서 내리는 눈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눈사람의 시간은 벌써 새해 첫날처럼 과거가 된다.

분명 사진을 찍을 때는 막 만들어져서 금방 녹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시간은 막을 수가 없다. 눈사람 장식이 떨어지고 새하얗게 뭉쳐진 눈덩이가 얼룩진 얼음덩이가 되어간다.


첫날의 새로움은 1이란 숫자가 주는 것이지만, 내일도 새로운 날이다. 오늘이란 하루는 내게 한 번인데도 자꾸만 내일을 기다렸다. 버리고 정리하기엔 지난해가 아쉽고, 새롭게 시작하기엔 새해가 부담스럽다. 시간을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바뀌었다.


눈사람을 보내며 갑진년 초봄에 필 야생화들을 그리워한다.

대지가 수분이 충분히 채워졌으니 올봄엔 집 앞에 느티나무가 더 우람해질 것이다. 또 비교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비교하는 마음만 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만개한 꽃들을 맞춰서 찾아가지도 못하면서 늘 더 많이 피었기를 바랐다. 늦게 발견한 것을 꽃이 시들었다고 투덜거렸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올봄 꽃들에게 다정한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금방 사라지는 눈사람의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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