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지작 거린 흔적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주저함이 희미해져 쌓아 둔 노트처럼 수북해지니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해졌다. 은밀한 사연들은 숨겨 두었지만 언제든 들킬 수 있는 장소에 있었다. 바로 나였다.
입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멈추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오히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소명의식을 갖게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꼭 써야 했다.
사연은 쓰고 싶지 않으니, 소설로 써 놓고 공공연한 사실로 만들어 버릴 기회라고 믿었다.
불평을 늘어놓지 않아도 감정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날씨를 묘사하듯 쓸 수 있다면, 오늘의 날씨처럼 말이다.
그럼 오늘은 겨울의 찬바람을 잊어버릴 만큼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지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같은 날이라고 써 놓아야지. 산책을 나섰다.
밖을 나오니 산책로에 고인 물은 모두 얼음장이 되었다. 산책로에 앞서가던 사람들이 휘청 넘어질 듯 종종걸음을 보며, 가능하면 눈이 덜 쌓인 곳으로 걸으며 가능한 태양이 내리쬐는 곳을 향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거리지만 티끌 없이 파란 하늘이 열어둔 대기를 통과한 태양이 부드럽게 온기를 감싸고 있었다.
잘린 지 오래된 그루터기, 덩굴손이 있던 자리는 가는 선과 점이 그려놓은 벽화를 남겨두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잊지 못하는 나에게 찾아온 과거의 흔적이었다.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오늘 태양에게 얻은 듯했다. 역시 생각만으로는 정확하지 않다, 단어를 써 내려가야 마지막 문장을 무엇으로 쓰게 될지 알게 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 작가, 자전적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진 아니 애르노를 닮고 싶었나 보다. 아니 그녀가 한 말을 이제야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 아빠가 살아온 지난날을 글로 쓰고 싶구나.'
생전에 하셨던 말이 선명하게 눈앞에 보였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처럼 아버지의 자리를 쓰고 싶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서, 나만을 위한 마법이 필요했다. 방법은 달리 없었다.
살면서 배운다. 살아내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힘들지만 배워야 한다.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늘 마시던 커피원두 대신 녹차잎을 샀다. 검게 그을린 원두가 여과지를 뚫고 나온 쓴 커피 대신 어린 초록 잎이 풀어놓은 전부를 마시고 싶었다.
뜨거운 물에 녹차 잎이 내뱉는 과거는 깊고 향긋한 이야기였다. 녹차를 다 마시고 뜨거운 물을 또 부어 마시고 나서 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몇 번이고 찻잎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싶었다. 찻물을 우려내는 걸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지난날도 녹차처럼 첫 번째 내린 찻물보다 두 번째 혹은 세 번째가 되어서야 깊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