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진 머리카락이 한 움큼 나오고, 푸석해진 머릿결은끊어지고 윤기가 나지 않았다. 탈모에 좋다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머리 감기가무서워졌다.
진료일 의사가 별일 없었냐는 물음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했다가 더 놀랐다.내가 하는 말에 의사는 알고 있었다는 듯내 갑상선 때문이라고 했다.이유를 몰랐던 탈모가 갑상선 기능 저하 증상이라니...
'아니 갑상선 너는 정말 어디까지니.'눈앞에 아득해지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의사 선생님 이러다 머리카락 다 빠지면 어쩌죠?"
나를 보며 의사는 일시적일 거란 말로 위로했다.호르몬을 복용하고는 갑상선이 정상수치 이내 유지하는 것 같다면서, 탈모 증상은 곧 좋아질 테니마음을편안하게 먹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그러면서 탈모 전문 제품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도 말했다.
나는 원래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워낙 가늘기도 하지만 반곱슬이 여서 헤어숍에 가도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펌이나 시술을 해도 금방 풀렸기 때문에 머리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미용사도, 나도 보람이 없었다. 평소에도 헤어스타일엔 자신이 없었는데, 갑상선 때문에 탈모까지 생길 줄을 몰랐다.
긴 생머리를짧게 잘랐다. 커트를 하니 살짝 곱슬거리며 볼륨감을주는 것도 같았다. 휑해진 이마의 빈 곳을가리려고 앞머리도 내렸다.정수리 부분이 휑해 보이긴 했지만, 빠지던 긴 머리카락은 짧게 자른 덕에 빠진 머리카락의 양은 확실히 줄었다. 여전히 탈모는 지속되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기가 무서워서 머리 감는 일이 곤혹스러웠다. 이러다 눈썹도 다 뽑히는 건 아닌지.
어느 쪽으로 가르마를 하던 숭숭 빈자리가 보였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증상은 점차 좋아졌지만, 이미 줄어든 머리숱은 한숨이 나왔다. 짧은 단발을 몇 년 동안 하다가 다시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도 다 좋아진 갑상선 덕분이다.머리숱이 적은 것이 갑상선 때문인지, 두 번의 출산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지금은 모르겠다.
갑상선 때문이 아니라도 탈모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러니 갑상선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탈모가 되지 않게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단점이 참 많지만 두 가지가 가장 취약한 듯싶다.온기와 속도다.몸은 항상 서늘하고 작동이 안 되는 기계처럼 자꾸 주저앉게 만든다.
몸전체가 꺼진 난로 같다.
갑상선 호르몬을 복용하면 난로를 다시 켜서 온기를 돌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온몸이나무늘보처럼 아주 느리다.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배출하는 것도 저속이 된다. 호르몬 용량은 하루치, 난로처럼 연료가 떨어지면 서서히 꺼져간다. 온기는 사라지고 추위를 못 견딜 정도다. 완전히 연소되면 작동을 멈춘다. 다시 연료를 넣고 난로를 켠다. 매일 이 '난로 켜기'를 반복하기 위해 아침마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보충하는 것이다. 호르몬 수치를 잘 유지하면 난로는 이틀 동안도 꺼지지 않을 때도 있고, 그 이상도 가기도 한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여러 가지로 몸을 취약하게 만든다.
탈모를 겪는 것 말고도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건 푸석푸석 메마르고 거칠다. 마른 낙엽처럼 생기 없이 부서지고, 온기가 없어 으스스거렸다. 식욕이 없고 소화 불량에 변비까지 신체처리 속도 초초초 저속이었다. 말도 느려지고 멍해지니 종종 뇌의 처리능력도 믿지 못하게 된다. 모두 갑상선이 재 기능을 못한 이유라니 저품질이 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너무 깜깜해 보였다.
뭘 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 갑상선은 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게 했다. 갑상선 호르몬은 도대체 뭘까? 목덜미에 있는 갑상선, 대답도 못하는 갑상선의 멱살을 잡아 물을 수도 없으니 참 답답했다.
갑상선 호르몬은 단백질 생성을 도우면서 만들어지고 세포에 산소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인체에 화학적인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갑상선 호르몬은 심박수, 열량 소비, 피부결 유지, 체온 유지, 소화능력,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그래서 갑상선 기능이 문제가 되면 앞서 나열된 항목들이 모두 문제가 된다는 뜻이었다.
가장 심한 것은 피로감이지만, 살이 잘 찌고 쉽게 빠지지 않아서 체중 조절이 어려워진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날씬해졌다가 나쁜 날은 부기 때문에 퉁퉁해졌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체중이었다. 체중이 줄면 혈색이 돌아오고 온몸이 생기가 돌았다. 얼굴색이 돌아오니 눈밑도 밝아지고 화장품도 잘 발리듯 매끄러워졌다, 옷도 잘 맞고가뿐해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진다.그런 날이 매일 반복되면 약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하게 된다.
가장 낮은 호르몬 복용량을 처방받을 때가 되자 눈에 띄기 달라진 것이 바로 손톱 상태였다. 손톱도 부서져서 일부러 네일을 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있는 그대로 단단하고 피부색으로 반짝인다.
실제로 갑상선 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갑상선이 툭 튀어 났을 때 처음 내 갑상선을 보았다.목뼈를 관통한 완벽하게 대칭된 모양을 잊을 수가 없다. 대칭을 한 나비 모양이라고 하지만 나는 테니스공이 목에 걸려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갑상선이 비대해져 생긴 혹은 치료하면서 사라졌으니 이젠 갑상선은 초음파 검사를 해야 볼 수 있다.
평소에 내 갑상선을 보는 방법은 혈액검사다.
특히 갑상선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는 나는 항체 수치까지 혈액 검사로 확인한다. 언제나 병원 진료는 혈액검사가 기본이고, 때때로 초음파 검사도 한다. 초음파 검사가 함께 없다면 일주일 전 검사 예약을 할 필요는 없지만, 검사 결과를 산출하는데 2시간이 걸리니 늘 반나절은 병원에서 보낸다.
채혈하는 것이 귀찮은 일도 아니지만, 꼭 피를 뽑아서 하는 검사 말고, 혈압계나 체중계처럼 기계가 안전하고 안 아프게 해 줄 순 없을까? 바늘이 들어가지는도 모르게 뽑기도 하지만 혈관이 꼭꼭 숨었다고 작은 바늘까지 꽂아서 채혈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혼자 병원을 찾는 일은 외로움이 함께 따라다녔다. 종종 남편이 같이 가주기도 하지만 나 혼자서 우울한 기분을 만끽한다.집으로 돌아갈 때는 혼자가 아니니까. 바로 남편만큼이나 가까운 일 년치 호르몬제와 함께 돌아간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진다.
아침에 약을 먹을 때마다 치료 중이라는 환자복을 입은 나를 확인한다. 그래서일까. 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간혹 푸석하고 힘 없이 쳐진 얼굴을 했던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은 타인을 만날 때가 있다.
"혹시 갑상선 약 드세요?"라고 묻고 싶다가도 그냥 "피곤하신가 봐요.?" 그럼 절반은 나와 같은 경우였다. 서로 놀라기도 했지만 동지애도 생겼다. 쓱하고 머리숱도 살피게 되는데 서로 알아보는 눈은 빙그레 웃게했다.
동병상련, 같은 단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유 없이 전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내가 그런 지지를 받고 싶은 것만큼 상대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싹텄다.
단점을 인정하고 나니 원망과는 멀어졌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때론 약만큼이나 강력한 효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