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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18. 2024

갑상선은 좀 우울하고 좀 행복해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1년의 휴직이 끝났지만 갑상선 수치는 불안했다. 처방받은  갑상선 호르몬제의 용량도 0.75mg으로 똑같았다. 전에 잠깐 회복된 에너지는 오후가 되면 반드시 이 감기고 무거워진 다리를 뻗어 눕고 싶었다.

아무래도 약을 끊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사는 내직하는 일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휴직을 더 하거나 업무 강도를 줄일 수 있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며 위로하는 말을 했다.

  복직을 하면 주 5일 종일 근무에 야근도 감당해야 하고 출장도 나가야 했다. 수시로 쉬면서 근무를 할 수 있는 특권은 어디에도 없으니. 출근하면 며칠 만에 또 병원을 찾을 것 같았다. 완전한 회복이 아닌 이상 아픈 몸은 또다시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나를 곤란하게 했다. 건강을 잃으니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원인도 모를 병에 걸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안정된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자꾸만 꺼지는 촛불처럼 바람을 막아줄 유일한 방법은 호르몬약뿐이었는데, 매일 먹고 있지만 일시적이었다.

아무도 날 흔들지 않 가만히 서있는 일조차 자주  힘이 부쳤다.


의사는 안정된 호르몬 수치를 유지하기 시작하면 호르몬 용량을 줄여 보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6개월이라는 회복의 기회도 내겐 예외였다. 당당하게 회복해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휴직을 연장하다는 것도 지키지 못할 약속일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렵고 겁이 났다. 처럼 목에 혹이 튀어나올까 봐. 완전히 졸아 있었다.    



 사를 그만두는 결정은 오래 걸렸지만 회사는 그다지 망설이지 않았다. 퇴직 처리를 위해 1년 만에 회사를 찾았다. 내 자리 다른 이름이 쓰여 있었고, 내가 쓰던 노트북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내가 있던 흔적 없었다. 나마 내 이름이 적힌 노란 박스 하나를 창고에서 찾았다. 기억도 나지 않은 박스를 열었더니, 수첩, 필기구,  다른 물건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땐 집으로 가지오고 싶지 않았다. 그만둔 회사에서 내가 가지고 나올 것은 없어 보였다. 사원증을 제외하고는 회사에 있는 휴지통에 쳐 넣고 빈 상자마저 버리고 나왔다.  사는 어려웠지만 사를 그만두는 일은 정말 놀랄 만큼 쉬웠다.


난생처음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유운 시간라니... 서두를 필요 없이 느긋하게 갑상선 치료 매달리면 다. 일도 못하는 쓸모없는 몸이 되었다고 슬퍼했다가 출근하지 않 쉬어도 된다니 삶이 거저 살아지는 건가 싶었다. 감쪽같이 나아서 돌아가고 싶었던 건 거짓말 같았다.


살림만 하는 여자가 되는 건가?

시간이 많은 엄마가 되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 까지 나는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픈  갑상선이 내 곁에 온 것도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쓸쓸한 일이었다.

한 번도 일을 그만두는 이유가 아픈 몸이 될 거라는 건 상상해보지 못했니까 말이다. 답답한 장벽이 사라진 것 같았는데, 마음속에 미로가 건설되었다. 보이지 않은 두려움은 매일 밤 악몽을 불러왔다. 어두운 숲을 헤매는 꿈, 낯선 길 위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을 수없이 꾸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전철을 반대로 타거나 먼 외곽까지 갔다가 막차시간이 지나는 꿈도 꾸었다. 어떤 날은 아무리 기다려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이 오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 비밀이 나를 이렇게 만든 기분도 들었다. 하늘이 내린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은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숲을 한 번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웃고 있었지만 때때로 우울했다. 몸은 회복되길 바라면서도 마음은 다른 이유로 아파왔다.  


그런 증상이 '우울증'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나의 갑상선 항체지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갑상선을 괴롭히는 건 바로 나라는 건데, 약을 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병이 왜 찾아온 건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갑상선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로는 명쾌하지 않다. 십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견해가 통용되고 있으니 의학계에선 크게 발견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문제다. 분명한 원인이 있으면 병을 막을 수도 있고 고치는 것도 쉬울 텐데 말이다. 갑상선 염증달래주고 배고프면 약을 먹여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냥 두면 사정없이 몸을 녹초로 만들어 버리는 이 갑상선 염증(골칫덩어리)은 복잡하고 어려운 녀석이다. 거의 매일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백기를 든다. 골칫덩어리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 재우면 자고, 피곤하면 앉아서 쉬었다.


 갑상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오전 내내 누워있었는데도 점심을 먹다가 졸음이 쏟아졌다. 깨어보니 내 손에 젓가락이 들려 있었다. 식탁엔 음식이 그대로였고,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불도 덮지 않고 그냥 잠들었는데, 속이 뒤틀리고 아팠다. 먹은 것도 없는데, 이불도 없이 잠든 찬 바닥이 문제였다.

그 뒤로 졸음이 쏟아질 것 같으면 거두절미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잠시 졸도 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목격자도 없그날이 내겐 아직도 미스터리다.

  갑상선은 내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 날 조정하 것처럼 완전히 나를 굴복시킨다. 그래서 이 골칫덩이는 타협도 없고 전혀 설득이 되지 않다. 와 상의도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다.


 시댁에서 졸음이 쏟아져 잠들었는데, 반나절을 자버렸다.

그 병이 그렇게 피곤하게 하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평소에도 십 분만 자고 일어나자 싶었는데,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미인은 잠꾸러기라지만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부스스하고 거친 피부는 유분기가 하나도 없다.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남편은 퇴근하고 오면 똑같은 말을 했다. 


"약 챙겨 먹었어?"

"약 먹어도 그래?"

쳐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미안했지만 감출 수는 없었다.

갑상선 염증과 지내는 일이 익숙해지는 건 시간 꽤 흐른 뒤였다.



 갑상선 염증 이해하기 어렵다.

장염증을 일으키는 식습관으로 인한 문제라는 견해도 있고, 자가면역을 방해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배제할 수 없으며, 생애 주기에 따른 갱년기 증후나 임신 출산 후 찾아올 수 있는 큰 신체 변화로 인한 경우라는 견해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환경이라면 더 취약해질 거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경 호르몬이 문제라고도 하고 음식으로 섭취하는 성분들도 갑상선에 영향을 준다고 지만 뚜렷한 발병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정기적 혈액 검사를 통해서 갑상선 자극 호르몬(THS)과 갑상선 호르몬(Free T4, T3)을 측정한다. 갑상선 자가항체 지수도 검사하는데, 내 경우는 적정지수를 아주 크게 넘는 항체 지수를 가지고 있다. 보통은 이렇게 높은 자가 항체를 있는 경우 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분류된다. 안타깝게도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자가면역질환 중에도 완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 정도 더 많이 발견된다하니 여성의 경우 갑상선 기능저하증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출산을 하지 않지 않더라도 여성은 발병확률이 높은데, 임신출산을 경험해야 하는 여성들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니 주의해한다.

 

갑상선 호르몬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조절하는데,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는 저하증은 호르몬의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렇게 시간 동안 잔잔하게 나를 흔들며 들러붙은 우울한 감정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사람처럼 좌절감은 너무 오래 내 곁에 있었다.   

 아무리 북돋아도 내 몸은 공허했다. 그럴수록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잠깐 화창한 날처럼 가벼워졌다가 우울해지면 푹하고 꺼져버렸다. 정말 훌쩍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수시로 찾아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 많았다. 그러다 식욕이 돋고 에너지가 샘솟기도 했다. 오락가락 좋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갑상선은 날 우울하게도 하고
  날 행복하게도 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던 그녀를 책에서 만났다. 미국에 사는 그녀는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산후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병원을 찾 녀에게 의사는 당신의 우울증은  '갑상선 기능저하증 증상'이라면서 별다른 설명도 없이 달랑 갑상선호르몬제를 처방했다 한다. 자신이 의사면서도 우울증이라고만 생각하고 갑상선이 문제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다.


  병을 고치는 의사였고,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의학적인 지식도 월등한 그녀였지만,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도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의사인 그녀는 적당한 휴식도 없이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입에 달고 사는 건 빨리 먹을 수 있는 에너지바와 초콜릿, 카페인음료, 시리얼, 물론 햄버거도 빠질 수 없었다. 응급실 의사가 직업인 그녀는 잠을 충분히 자지도 못했고, 체력이 건장한 남자 의사들과 경쟁해야 했다. 출산하고 3개월 후 복직을 했지만 산후조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 전처럼  엄청난 강도로 일을 했. 그녀는 일하다 자주 울었고, 우울한 기분을 강하게 느꼈다고 했다. 정신적인 문제인 줄 만 알고 있던 그녀 갑상선 호르몬제를 처방받고 나서야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었다. 7년 만에 완치하고 우울증도 사라졌으니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녀처럼 나도 나아질 수 있을까?


나를 돌보지 않았던  때문에, 갑상선에 염증이 생겼고, 염증은 나를 일어서지 못하게 했고, 화사를 그만두게 했다. 월급통장을 포기했고, 사회적인 성취도 없어졌다.

잠깐 일 줄 알았던 휴식은 약을 먹은 지 7년 차가 되던 해에 안정적인 갑상선 수치를 유지하게 되었고, 그 뒤로 나는 최소 용량인 0.025mg을 먹고 있다.


 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서 더는 포기할 게 없을 줄 알았지만 포기할 것은 더 있었다. 하루에너지 용량을 초과할 수 없으니 남들처럼 지낼 수 없었고, 사람들과 멀어졌다. 나만 튕겨져 나온 낙오자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삶이 흘러갈 줄 알았지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삶 전체가 무너진듯해서 두 번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내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걸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대신 포기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나와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행동반경은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 보내기엔 충분했다. 밖에서의 역할을 그만두고 나니 홀로 된 마주할 기회생겼다. 루를 아끼면서 꼭 필요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과 멀어졌다.

그것이  내 갑상선이  좀 우울하고 좀 행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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