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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04. 2024

매일 아침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는다

치료를 위한 휴직

  진료실 문을 나서자 참고 있던 감정이 쏟아졌다.

 진단서에는 진단명이 적혀있었고, 치료를 위한 요양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었다. 아직 회사에 제출도 하기 전인데,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통지서를 받 것 처럼 겁이 났다. 출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였는데, 갑작스러운 휴직 결정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쉬면 좋아질까... 복잡한 심정을 분석하기엔 기운 없는 몸이 거들어주지 못했다.  


 나의 진단명은 하시모토 갑상선염증으로 인한 기능 저하증이었다. 종종 환자들이 처음에 저하증이었다가 항진증으로 바뀌기도 하고 다시 저하증으로도 오갈 수 있으니 검사를 통한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제든 체중 변화가 있고 피로감이 계속 느껴지면 진료일이 아니어도 방문하라고 덧붙였다.


 병원 진료가 끝이 났는데도 나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것처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목에 난 혹은 그대로였고, 지친 몸은 예상하지 못한 하루에 더 녹초였지만, 이유가 있는 기운 없는 몸은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다. 차라리 입원 치료를 받는 거라면,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었다면 아프다는 걸 받아들이기 쉬었을까. 싹둑 잘린 감정을 추스를 기운도 없이, 졸린 눈이 먼저 감겼다. 


 무기력함은 오래 질척이며
 마음에서 떨쳐내기 어려웠다.

 

  한 알은 낙오자라고 느껴지는 감정엔 효과가 없었지만, 몸은 빠르게 반응했다. 그렇게 빨리 체중이 줄어든 경험은 처음이었다. 3일째 되던 날 2kg이 줄었다. 턱과 목 주변에 부기는 절반 정도 작아졌다. 4일째 되는 아침,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했다.

 의사가 말한 대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수월해지니 다행이었다. 루가 다르게 몸의 부기가 사라지면서 몸무게는 좀 더 줄었다. 날씬해진 몸은 예전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여전히 기운 없는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꾸만 주저 앉게 했다.


 아직 초음파 검사 결과가 남아 있었다. 호르몬제를 먹고 나니 목에 난 혹은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부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막상 혹이 보이지 않으니 별일 없을 것 같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너무 당황한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갑상선 결절은 발견되지 않았다.  소견 없었다. 일주일 뒤 만난 의사는 호르몬 복용량을 0.025mg을 줄인 약으로 처방했다. 씬지록신 0.05mg 하나와 반 쪽인 0.025mg을 먹기 시작했다.  0.075mg을 복용했다.

다음 진료는 한 달 뒤였다. 약을 먹고 나선 컨디션이 유지 되긴 했지만, 2-3일에 한 번씩은 다시 바람 빠지듯 푹 가라앉았다. 그렇게 체력은 오르락 내리락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잠이 쏟아졌다.

그동안 자지 못한 시간을 한꺼번에 충전하듯 대부분 시간을 누워 지냈다. 한번 누우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5분 정도 쪽잠을 잔 듯 느껴졌다.


 갑상선 호르몬을 약으로 보충해 주긴 하지만, 나는 충분한 휴식이 정말 필요했다. 그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시간이 훨씬 더 간절했다. 


 갑상선이 제 기능을 할지는 적어도 6개월을 지켜봐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이후에 약을 끊을 수도 있지만, 20%의 환자는 평생 호르몬 약을 먹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20%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의사는 그다지 낙관하지 않았다.


 갑상선이 망가지는 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회복은 평생 걸려도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3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1년간 휴직을 하기로 했다. 그 안에 몸을 되돌릴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아니 찾아서 다시 돌아갈 거라 믿었다.



 

 흠결 없는 삶은 아니었지만, 나는 가능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내가? 나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걸까?

흔한 비타민도 먹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몸을 혹사했을 거라 예상 못했다. 그럭저럭 건강한 편이라고 믿었다. 트를 주 듯 조짐은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그것을 무시했으니 원인은 당연한 결과로 나타났다.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다.


결혼한 지 2년,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줄 알았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피가 좀 나고 멍이 들었나 싶었지만, 상처가 아물면서 치료가 되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내 갑상선엔 뿌옇게 염증으로 뒤덮고 있다.


촘촘하게 무늬처럼 보이는 염증들이 커지고 뭉쳐지면 결절이 된다는데,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암 진단을 받지 않았으니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땐 분노에 차 있었다. 화가 난 나를 다독일 것들이 필요했다.


일 호르몬제를 약으로 보충해주어야 할 몸이라는 것이 슬펐지만, 의사가 말한 6개월 후엔 기적처럼 모든 것이 예전으로 -  완전히 병에서 벗어나 직장을 다니던 나로 - 돌아가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길 좋아했던 나는 밖에서 멀어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해진 나는 뭔가 시도하려고 해도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쪼그라들었다. 스스로 감옥에서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라푼젤처럼 성에 갇힌 상상에 빠졌다. 밖으로 나가면 무서운 일이 더 생길 것 같았고, 막상 밖으로 나가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후회할 것 같았다. 높은 탑 위에서 긴 생머리를 늘어뜨려 나에게 찾아올 미래를 기다려 보려고 했지만, 점점 다른 생각들이 자리 잡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우울함과 손을 잡았다.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나는 망설이는 성격이 더 강력해졌다. 오늘 하루를 쓰게 될 에너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몸으로 자각할 수 있다. 아주 가뿐한 날은 평소대로 지내고, 약간 피곤한 듯싶으면 그날은 오전에만 움직이고 오후엔 쉬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방법이었다. 판단도 지시도 내가 내렸고, 그에 따른 결과는 내가 책임졌다. 안에 있을 땐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지만,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던 어떤 기질들이 살아나길 바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새롭게 준비해야 해 보자는 열정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시간을 대부분 망설이는데 쓰는 중이다.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놓쳐버린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싫었지만 후회하는 쪽이 참을 만했다. 몸이 더 나빠질까 봐 두려웠던 나는 무리하지 않는 성격으로 고치는 방법에 더 집중하게 했다.

 백만 평도 넓었던 오지랖을 줄이고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했다. 건강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타고난 기질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다. 


그래서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외출을 모두 끊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그들도 나를 찾지 않았다.

 푸석한 얼굴에 느려진 말투 생기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지만,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는 아니었다. 남편이 곁에 있어서 인지 외로움은 크게 느끼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병이 내린 강제적인 쉼표였고, 나는 철저하게 약에 의존해야 했다.    

사람들과는 멀어졌지만 대신 매일 아침 갑상선호르몬제를 먹는 일은 빠뜨리지 않다. 그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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