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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Feb 26. 2024

갑상선이 보내는 신호

목에 난 혹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겨우 일어나는 날이 많아졌다.

평소 이른 아침 알람 없이도 잠을 깼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잠을 잤지만 잔 것 같지 않고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엔 문제없을 것이라고 모른 채하며 내일 또 내일 기다렸다.


  잠이 쏟아지는 것만 문제는 아니었다. 얼굴에 부기가 빠지지 않나 싶었지만 실은 체중이 4kg 가까이 늘었다.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서 늦은 저녁을 먹어 그런가 싶었지만 살이 찔 정도로 과식을 한 것도 아니었다. 사를 거른 날도  몸은 더 찌뿌둥했, 이 쪄서 그런가 싶었다.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졌다. 교육 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마케팅 팀으로 옮기고 나선 외부 출장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일하는 것보다는 활동적인 업무가 좋았다. 업무량은 늘었지만 운 좋게 승진하고, 나름대로 내 자리를 잡은 듯 순조롭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분명 뭔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상처 투성이었다. 손은 작은 상처가 만든 흉터로 알록달록하고,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작은 상처가 수두룩 했다. 서류를 만지다 그런 듯 긁히고 스친 듯했지만, 언제 상처가 난 건몰랐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거칠어졌다. 커피를 마셔도 정신이 흐릿하고 혼자 남겨질 때마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갑상선이 보내는 신호는 몸 여기저기에서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몰랐다. 휴대폰에 배터리 잔량 부족 알림처럼 경고가 계속 울지만, 몸이 방전될 때까지 일상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 일과가 끝이 나면 고단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다. 내 가족이 그랬다면, 주변사람이 그런 내색을 했다면, 나는 분명 병원에 가보라고 했을 텐데,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가 뭔지도
 모르는 바보에 가까웠다.


 외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 입구를 내려가야 하는데 까마득한 계단 아래를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택시 안에서 잠들었고, 기사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지만 잠깐 눈을 감았다 뜬 듯 몽롱했다. 집에 왔지만 방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방 기억하지 못했다. 며칠 밤을 새운 것처럼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화장대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루아침에 생긴 목에 난 혹


 분명히 어제까지는 없었다. 한가운데 테니스 공 만한 혹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마른침을 삼켰지만 아프거나 따갑지 않았다. 목에 난 혹은 뭔가 물컹거리며 묵직한 듯 거북했다. '어제저녁에 뭘 잘 못 먹은 거지? 에 뭐가 걸린 건가?'


 거울을 보니 아까보다 더 커진 듯 양 옆 두드러져 보였다. 혹이 계속 커지는 것 같았다. 침을 삼키며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만져보기도 겁이 났다. 어디에 부딧친 도 없었고, 피부가 간지럽거나 상처가 난 것아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었다.




    회사로 가는 대신 이비인후과로 다. 의사는 목을 보더니 채혈검사가 우선이라고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잠들어 버렸다. 병원에서 온 전화소리에 눈을 떴지만 이미 부재중 전화가 여러 차례 온 후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괜찮으세요?
당장 상급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오전에 만났던 때 와는 다르게 의사는 나를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엠뷸런스를 불러서 보호자와 함께 병원으로 갈 것을 당부했다. 급병원 응급 진료는 늦은 오후지만 일사철리로 서류 접수가 되었고, 진료과는 내분비 내과였다. 종이 위에 쓰인 글자라면 뭐든 내 시선을 끌지만, 병원에서 준 검사 결과와 진료 의뢰서에 쓰인 단어들은 읽고 싶지 않았다.


  응급실을 통해서 혈액검사를 하고 만난 의사의 첫마디는

"힘드시죠? 앉 계실 수 있으세요?"였다.

지금 내 갑상선은 호르몬 분비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도 호르몬 수치면 실신 상태로 실려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행이라고 말했다.


목이 부은 증상에 대한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의사도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약을 먹으면 목의 혹은 가라앉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갑상선에 결절이 있을 경우 수술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갑상선 결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 일주일 후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의사는 앞으로의 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일주일은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2개월, 아니 최소 3개월은 쉬셔야 해요. 더 길어질 수 도 있지만 당장 쉬어야 하는 병이에요. 일주일 뒤 초음사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뵐게요. "


  진료실에서 의사가 직접 준 작은 지퍼팩엔 7개의 알약이 들어 있었다. 지로이드 정 0.1mg 노란색 작은 단추 만한 약을 매일 아침 공복에 먹으면 된다고 했다. 먹고 1시간 뒤에 식사를 하고 푹 쉴 것을 당부했다. 약을 먹고 2-3일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증상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했다.

 료실에서 선생님이 건네는 약을 먹은 것 같기도 한데, 선명하지는 않다. 졸음이 쏟아지도 했지만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다.  


 아픈 증상에 비하면 약은 너무 가볍고 작았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서른, 막 신혼을 시작했고, 날개를 단 듯 내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월급 받는 생활이 즐거웠다. 진정한 행복이란 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짝이는 곳만 쳐다보며 등 뒤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몸이 지쳐 버린 걸 알지 못했다. 밤이 되면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고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냥 과로 때문이겠지. 쉬면 나아지겠지.


체중계가 알려주는 신호를 무시했다. 모든 일상이 달라질 것이란 것도 말이다. 나는 사실 피곤함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다니 쉬면서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줄 알았다. 내색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아픈 몸을 들키지 않고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는 최소 3개월 이상의 휴직을 권했지만, 나는 더 빨리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입은 보이지 않는 환자복을 지금도 나는 벗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겼다. 초라해 보리는 것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모두가 쳐다보는 곳이 아니라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이었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존재조차 모르는 것들이었다. 문틈 뒤에 숨어 있는 머리카락이나 먼지, 화분 아래 말라 떨어진 나뭇잎이나 꽃잎, 어쩌면 수명을 다해서 이제 사라지는 시간들에 대해서 그전엔 몰랐던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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