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엄마의 시간

기다림을 기다리며

by 무쌍

엄마가 되면 기다림에 완전히 숙달이 된다.

냄비 안의 만두가 잘 익기를, 아이들이 일찍 잠들기를, 남편이 돈을 입금해주기를, 특히 마트 배송을 수시로 기다린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맥주를 맘껏 마시는 날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아이들이 어서어서 학년이 올라가기를 기다린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에서 페터 빅셀은 '기다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이다.


...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건 없기 때문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 입학 기다리기, 졸업 기다리기, 은퇴 기다리기, 그리고 어쩌면 기다림 조차 기다리기, 이 기다림이 끝나면 또 기다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림의 기다림을 기다리기."



그가 말한 대로 나도 기다리는 것을 글로 쓰자면 밤새서 써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가 기다리는 것이 익숙했다. 게다가 친구들과 약속은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 기준이 되는 시간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선 항상 기다리는 역할을 했다. 다행히도 인생 짝꿍을 만났으니 남자를 더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기다림의 고통은 더 많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번의 출산은 어마어마한 기다림 세트였다. 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였고, 둘째는 첫째를 돌보면서 였다. 임신을 하기 전 산전 검사, 임신이 맞는지 진단검사, 아이가 생기면 주수에 맞춰 정기적인 산부인과 진료를 했다. 두 아이 모두 입덧이 말도 못 하게 심해서 다이어트를 강제로 했다. 배가 나와도 몸무게는 계속 빠졌다. 만삭이 되기까지도 입덧의 위력은 대단했다. 서 출산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뿐이었다. 9개월 후에 찾아 올 아이를 기다리는 것과 내 몸이 홀몸으로 돌아가기를 말이다. 나는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기다림을 위한 버티기가 엄마를 만든다는 것이다.

출산 전날은 소풍 전날 같은 하룻밤 설레는 기분은 아니었다. 출산은 내 몸에서 내가 빠져나오며, 내가 둘이 되는 것이었다. 기다림은 내 것과 내 아이 것 까지 곱절이 되었다. 젖이 돌기를 기다리고, 아이가 배부르기를 기다리고, 산후조리가 끝나기를, 아이가 걷기를 기다렸다. 6살 유치원 입학을 기다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기다렸다. 모든 시간은 서로 맞물려 있어서 무엇을 먼저 기다렸는지 헷갈렸다. 나와 아이의 시간은 여전히 섞여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도 섞여있다.

사철나무 열매가 열리길 기다렸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아이들과 약속을 할 때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정해놓지만 '이제 10분 전이야, 5분 전이야'라며 시간을 카운트해줘야 한다. 엄마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다는 예고를 해주어야 한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유쾌하게 끝나지 않는다. 하루는 작심하고 두 아이에게 진짜 끝까지 놀아 봐라 하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놀이터로 나갔다. 내가 마실 커피와 책을 가지고 나갔고, 이따금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3시간이 넘어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컴컴해져 놀이터에 전등이 켜지자 아이들이 집으로 가자는 소리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등교시간을 기다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기다린다. 또다시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린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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