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치며 곧장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눈 부신 강아지풀도 나와 처지가 비슷해 보였다. 여름 태양은 아직도 매미 소리를 더 길게 듣고 싶은지 뜨겁고 나무아래 그늘은 반갑기만 했다.
여전히 길가에서 마주치는 야생초들이 반갑다. 어디를 둘러봐도 강아지풀 숲이 보였다.
손을 보지 않은 화단에도길가의 가로수 아래 혹은 흙이 덮은 작은 틈은 몰려다니는 강아지들처럼 어수선했다. 꼬리털을 살랑거리는 강아지 풀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야생초 중 하나다.어린아이가 한 손으로 당겨도 쏙 빠지는 줄기는 옅은 초록색 향긋한 풀냄새를 풍기며 가을이 담긴 계절까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녀석이다. 보드라운 결을 따라 쓰다듬듯 손을 내밀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은 강아지풀을 사랑한다.
민들레 갓털만큼은 아니지만 강아풀을 들고 다니면서 간지럼 타는 재미를 쉽게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꽃이라고 하기엔 열매라고 하기에도 꼬리풀의 자태는 섬세하고 무척 귀여운 구석이 있다.있는 그대로 찰랑거리는 모습을 좀처럼 마다할 수 없다. 손에 잡고 간지럼 태우고 싶은 마음은 손바닥으로 쓰윽 건드려보고 나서야 한결 누그러지곤 했다.
강아지풀도 건들거리며 나를 한번 만져보라는 듯 보송보송 태양이 눈부시게 비추는 대로 함께 반짝거렸다.
강아지풀이 꽃을 드리우는 동안 나도 부지런히 끄적이긴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꽃이삭이 갈색빛으로 익어가는 동안 나는 무얼 했나 자꾸만 고개숙이게 했다.
도시의 야생화는 이런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안부를 묻듯 '왜?무슨 일이 있니?'
답을 하지 못했다.
나 홀로 산책을 나섰다.
보도블록 틈에 작은 점으로 겨우 핀 주름잎꽃을 보며 흐뭇했지만 넘실거리며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치는 강아지풀을 보니 작년에 보았던 코스모스 꽃밭이 그리웠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잊게 하고, 매일같이 찾아가도 질리지 않는 중랑천으로 향했다. 이미 오래전에 바다가 싫어 살던 섬을 떠나왔지만 목마름처럼 물가를 찾게 되었다. 생명을 얻은 고향을 잊지 말라는 듯, 내 몸 한가운데 탯줄이 만든 자리에서 허기를 부른다.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지치고 허기진 몸을 억지로 끌고 나섰다. 한동안 찾지 않았더니 중랑천 꽃밭이 영 딴판이었다.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안개초도 어느새 계절 뒤로 떠나고, 강아지풀이 꽉 찬 곳에 막 피어난 코스모스 꽃이 보였다. 진한 초록잎에 연한 분홍색과 자줏빛을 한 코스모스가 초가을 들판처럼 한들 거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꽃은 없었지만, 새 꽃을 보니 좋았다.
중랑천엔 코스모스가 늦봄에 하나둘 피기 시작해서 한여름 태양에 녹아 사라졌다가 늦여름 다시 피기 시작한다. 대부분 작년에 남은 씨앗들로 피는 듯싶었다. 꽃은 가는 줄기를 올리고 바람에 떠있는 듯 가벼운 몸짓으로 그 곁을 걷는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른거리며 핀 꽃을 찍다가 잎을 보니 바다에 떠다니는 해초 같아 만지고 싶어 졌다.
제주바다에 사는 톳처럼 통통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장마가 길던 짧던 중랑천 수변공원은 꽃밭이 온전하게 버티지 못한다. 장마가 아니더라도 곧 뜨거운 태양에 녹아 버릴 꽃들이었다. 꽃 한 송이 한송이를 들여다보며 작별인사를 오래도록 하고 싶었다. 곧 찾아올 소란스러운 소나기도 자연은 버텨낼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풍경을 다시 보는 건 기약할 수 없었다.
강아지풀과 코스모스가 핀 수변공원을 천천히 오가며 바다에 풍덩 빠진 듯 동화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 향기를 느끼며 곱다고 해주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사람,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을도 아닌데 피었다며, 꽃을 핀잔했다. 코스모스는 가만히 있어도 구설수에 오르내리나 보다. 어디 코스모스 꽃 신세만 그러한가,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래도 고운 꽃은 마음도 고와서 나를 부드럽게 품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중랑천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고 있었다. 사람들도 돌아가고 지는 해도 사라졌다.
중랑천은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는 완전히 물에 잠겼고, 투명하게 빛나던 물줄기는 풀색 물감처럼 진한 색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바뀐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큰 비에 별일 없었는지 자연을 살피는 일이 눅눅해진 이부자리를 손보는 것만큼 중요해졌다. 한고비 넘기듯 내 감정도 이제 문턱을 넘었다.
더는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계절은 반복해서 찾아오지만 지난 과거처럼 반복하며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지 못했다.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시선을 가리는 듯하더니
눈앞에 가을이 보였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나도 느리지만 달라졌다. 모습은 달라졌지만 있는 그대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