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타지키스탄 카라쿨의 아이들

파미르고원 Day 2 : 키질아르트 패스를 넘어 타지키스탄으로!

by MUSSMUSS


나는 한국에서 꼬맹이 놈들을 아주 싫어했다...
시끄럽고, 말안듣고, 개싸가지...솔직히 그냥 싫었다가 맞는 듯 하다.
그런데, 이 곳 파미르 아이들은 이런 나를...

파미르고원에서의 첫 트레킹 'Traveler's pass'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물론, 중간에 힘들어 죽을뻔 했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감동을 주었기에, 등산과 트레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 역시도 여기는 꼭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500ml 생수 한병만 들고 낄낄거리며 출발했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 온 나를 보고 무함마드는 힘든 척 하지 말라며 웃는다. 이틀 뒤 트레킹은 훨씬 힘든데 어쩔려고 그러냐며...(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놈은 트레킹과 등산을 지극히 싫어하는, 심지어 가는 사람마저 이해 못하는 타직인이었다^^)

언젠가 다시 올 Traveler's pass...기둘려라...




풀을 다 뜯어 먹고 나서, 초원에서 빈둥빈둥 잡담하고 있는 양들을 집으로 모는 양치기처럼, 무함마드는 우리에게 빨리 짐 들고 차에 타라고 한다. 우리가 '그 쉬운' Traveler's pass에 시간을 너무 썼다며...이러면 해가 지고 나서야 오늘의 목적지인 '카라쿨 호수 (Karakul lake)'에 도착한다며 우리를 우리로 몰았다.


카라쿨 호수를 가기 위해서는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키질아르트 패스(Kyzylart Pass, 해발 4,300m)를 넘어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타지키스탄 검문소에서는 어디선가 계속 나오는, 그러나 결코 서로 가족같지 않은 귀여운 개들이 우리를 반긴다. 누렁이, 검둥이...모두 평화롭게 거닌다. 눈에 띄는 점은, 초소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양국 대통령이 다양한 포즈로 악수하는 벽화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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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아, 너의 국적은 어디냐? 키르기냐 타직이냐? 여튼, 양국 평화의 상징이 되거라...


사실, 이 두 나라는 수십 년간 지속된 국경 분쟁과 그에 따른 충돌이 있었다. 특히, 2021년과 22년에는 대규모 사상자가 생긴 심각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2021년에는 수자원 통제권을 두고, 양국 국경 수비대와 주민 간 충돌이 발생해 사상자가 생기고 마을이 파괴되었으며, 22년에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충돌이 일어났다. 탱크, 장갑차, 심지어 드론까지 동원된, 사실상 국지전으로 100명 넘는 사망자와 수만 명의 주민이 대피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얼마나 관계가 심각했는지 알 만하다.


그런데...이런 충돌의 근본적 원인은...정작 두 민족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구소련이 행정에 편하도록, 즉 민족 분포나 역사/지리적 이슈, 문화적 현실을 모두 무시한 채 국경을 마구 그으면서 야기된 것이다. (물론, 지 맘대로 남의 나라 국경을, 그것도 자를 대고 직선으로 쭈욱 긋는 것은 썩을 영국놈들이 세계 최고지만...)


심지어 이렇게 만들어진 국경이, 구소련 시절에 제대로 확정되지 않아, 독립 후 양국은 거칠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지도를 들이밀며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특히 이 지역 국경 문제는 토지 뿐만 아니라, (건조한 지역의 특성상) 수자원 통제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물은 그들의 삶과 직결된다. 특히 강 상류 지역을 가진 키르기스스탄이 수로를 막거나 수자원 통제권을 주장하면서 분쟁이 더 격화되었다. 다행히, 2022년 심각한 충돌 이후, 양국은 분쟁 종식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가속화했고, 2024년 말부터 25년 초에 걸쳐 국경 전체(약 970km)에 대한 최종 경계를 합의했고, 국경 재개방에 대한 양국 대통령의 서명도 이루어 졌다. 이 곳 검문소에서처럼, 파미르 고원의 국경을 넘을 때면, 두 나라 대통령이 악수를 하거나 서명을 하는 벽화를 자주 볼 수 있는데...사실 이것이 오래되지 않은, 2025년에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이렇게 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자, 너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타지키스탄이다"라고 말하듯, 파미르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봤던 파미르는 초원도 보이고 푸릇푸릇한 '여성적인 느낌'이었다면, 타지키스탄 쪽 파미르는 매우 메마르고, 광활한 사막과 같은 '남성적인 느낌'이 훨씬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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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해 보이는 타지키스탄 파미르...남성미가 넘친다...


이런 풍경을 따라 이동을 하면 어느 순간 만년설에 덮인 설산들이 보이고, 카라쿨 호수가 나온다. 카라(Kara)는 '검은(Black)', 쿨(Kul / Kol)은 '호수(Lake)'란 뜻이므로, 카라쿨은 '검은 호수'라는 뜻이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기도 해서, 떨어지는 태양의 역광에 비친 호수가 이름과 같이 매우 검게 보였다.


이 호수는 특이하게도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며 생겼다. 이 충돌로 거대한 크레이터(Crater)가 생겼고, 여기에 물이 고여 형성된 호수이다 보니 강이나 바다로 흘러나가는 출구가 없는 내륙호가 되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정말 물고기로 가득차 있을 듯한...이 바다같이 큰 호수에 물고기가 없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말로는, 출구없이 물만 증발하다보니, 미네랄 농도가 올라가며 염분이 강해졌기 때문이란다. 내가 “바다는 염분이 높은데도 수많은 물고기가 있는데, 왜 여기는 물고기가 전혀 없냐?”고 묻자, 나의 Bro 무함마드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봤지만, 어차피 여기에 물고기가 없다라는 사실은 안변한다”라는 정치꾼들같은 답을 한다. (참고 : 며칠 후 파미르를 내려와 찾아보니, 카라쿨에는 진짜로 매우 작은 희귀종 물고기인 Triplophysa Lacusnigri 외에는 어떤 물고기도 없다고 한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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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하이웨이를 따라가면,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고...카라쿨이 나온다.




이 호수의 고도는 해발 3,960m로, 남미 티티카카 호수(약 3,812m)보다도 높다. 고대에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일부여서, 수많은 대상들이 험준한 파미르고원을 넘기 전 쉬어가던 중요한 경유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미르 하이웨이(M41)도 이 호수를 따라 가는데, 지금은 이 도로가 카라쿨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카라쿨에 도착한 우리는 떨어지는 태양을 보며 사진을 찍고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뿔싸...우리에게는 입수에 미친 Canadian이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간과했다. 그는 오전 트레킹 때도 개울에 몸을 담구며 말했다. "난 여행 중 물을 보면 무조건 입수다"라고. 마치 오래전 내가 유럽 배낭여행에서, 분수나 호수, 강 할 것 없이 물만 보면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우리의 Daniel은 물만 보면 입수를 한단다. 그러나 이곳은...1년 중 절반 이상(10월 말부터 5월까지) 얼어 붙는 해발 4,000m의 호수인데...


이미 다니엘은 옷을 다 벗었다. 이 신성한 카라쿨 호수에 입수하기 위해...한국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좋아할 타입이긴 한데, 같은 서양 애들도 기겁을 한다. 그래서, Canadian과 German은 안된다며...ㅋㅋ...한편으론 어이없기도 했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는 Daniel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아주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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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000m 카라쿨에 입수하는 미친 Canadian과 옆에서 태양의 정기를 받는 나...




카라쿨 숙소는 유르트가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였다. 화장실도 실내에 있었고, 변기 두 개중에 하나는 좌변식이었다. 물론, 아래는 그냥 똥통인 좌변식이었지만. 방에 들어가니 러브 버그와 같은 벌레가 한 200마리 정도 하얀 벽에 붙어 있었기에...난 방을 나와 산책을 했고...카라쿨의 아이들을 만난다.


남자애는 큰 물건를 가지고 놀고 있었고, 누나로 보이는 여자애는 그 주위를 뱅뱅 돌면서 신나게 뛰어 다녔다. 가까이 가보니, 그 남자애는 어른들이 쓰는 진짜 망치와 드라이버 등으로 버려진 스피커를 분해하고(=부수고) 있었고, 이미 날카로운 드라이버에 손과 심지어 얼굴도 많이 긁혀 있었다.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는 마치 약속 시간에 늦은 아르바이트 학생을 보듯 나를 보더니, 말없이 드라이버 하나를 준다.


"왜 이제 왔냐? 너도 부지런히 부셔라" (눈빛으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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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같이 놀게 되었다. 내가 깊이 박혀있는 나사를 하나 빼자, 아이는 그제서야 나를 믿는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시킨다. 누나로 보이는 여자애도, 알바생에게 뭔가를 시키려는 듯 다가 온다. 그녀의 지령은 술래잡기였고, 나는 가위바위보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술래가 되어 여자애를 쫓기 시작했다. 말은 전혀 안 통했지만, 우리는 마당을 뛰어 다니며 놀았다. 그러다 애들이 나를 창고로 데려간다. 그 곳은 진짜 농기구와 건축 자재 등이 마구 쌓여있는 위험해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치 그곳이 자신들의 전용 놀이터인 것처럼, 농기구나 자재 위를 뛰어다니며 너무나도 신나게 놀았다. 까르르르...쉴 새 없는 웃음소리. 내가 애들 있는 곳을 많이 안가서 그런지...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해맑은 웃음을 지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따라 웃음이 나온다. 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어봤지...?


아이들은 나를 자신들의 또다른 놀이터 곳곳으로 데려갔는데, 그곳은 폐기물 창고, 병 모양의 쓰레기통이 있는 벌판, 집 뒤에 있는 우물 등이었다. 버려진 스피커와 창고, 심지어 쓰레기가 차 있는 쓰레기통을 타고 노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걱정도 되었지만, 반대로 이렇게 아무 것도 할게 없을 것 같은 고원에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장난감 삼아 놀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까르르르 웃는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한국에서 가끔 아파트 놀이터를 가보면, 한 살에서 세 살 정도의 아이가 엄마랑 같이 있는 경우는 좀 봤지만, 이렇게 초등학교 전후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것은 많이 못 본 듯하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스포츠 센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공부하느라 학원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같이 있는 오랜 시간 내내 정말 신이 나서, 쉴새없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그러다보니, 나 역시도 어린 아이가 되어 정말 신나게 웃으며 놀 고 있었다. 이런 모습, 이런 웃음소리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뭔가 많은 생각이 머리에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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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 놀이터지만...그래도 행복한 파미르의 아이들...너무 고마웠어, 얘들아...


얘들아, 너희들 덕분에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어.
무엇보다 건강하고, 커서도 지금처럼 웃는 날만 가득하길 빌게...

그리고, 아저씨 웃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생각해보니......아저씨도 이렇게 웃은 건 오랜만이네...


p.s. 몇 개월이 지난 지금...아직도 이 남매가 그립고...다시 보고 싶다...




[ 부록 : 투어 Day 2 ]


툴파르콜 호수(Tulparkol Lake) - Traveler's pass 하이킹 – 타지키스탄 국경 통과 – 카라쿨 호수(Karakul Lake)


아침 일찍 여행자 고개 (Traveler’s Pass, 해발 4,130m)로 하이킹을 한다. 첫 날, 툴파르콜 호수(Tulparkol Lake)에 일찍 도착하면, 바로 하이킹으 ㄹ하기도 한다. 약 5시간의 하이킹/트레킹에서는 레닌봉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의 장관도 감상할 수 있다.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키질아르트 고개(해발 4,300m)를 넘어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과한다. 즉, 툴파르콜 호수에서 보르도보(Bordobo) 검문소를 거쳐 타지키스탄의 카라쿨 호수로 이동한다. 정말 희안하게도, (지형에 따라 국경이 나뉜 것도 아닌데) 국경을 넘으면 파미르 고원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며, 타지키스탄의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다. 키르키스스탄의 파미르가 여성스럽다면, 타지키스탄의 파미르는 매우 강한 남성의 이미지이다. 카라쿨 호수는 파미르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로, 빙하에 의해 형성되었다. 도착 후 호숫가 산책을 즐기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 식사 및 숙박을 한다.


이동 거리/시간: 150km / 약 4시간

고도: 4,000m

인터넷: 무르갑까지 없음 (카라쿨에서 Megafon 2G 한정 가능하다고 되어있으나, 개 뻥임. 실제로는 안됨)

전기: 저녁 식사 이후 이용 가능 (보조 배터리 지참 권장)

숙소: 게스트하우스, 공동 샤워실 및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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