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세...이제 태닝이 뭔지 아는 나이...
여행에 있어서 제대로 된 계획이란...그렇다, 성공적인 여행의 절반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장거리 여행을 한 아이의 컨디션을 위해 너무 일찍도 늦게도 아닌, 오전 10시에 계획적으로 호텔을 나온 우리...마치 매우 잘 짜인 각본처럼...태양의 도시 떼오띠우아칸에 정확히 정오에 도착한다...허걱...!!!
1편에서 말했듯이, 태양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긴 했으나, 그 태양을 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내 머리통을 직빵으로 내려쬐는 햇빛은, 정녕 내가 원하던 그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한 건 아니지만, 일 년 내내 추위를 타는 나는 항상 가벼운 카디건을 가지고 다니기에, 이런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피부암을 예방할 수 있었으나, 딸과 아이프는 민소매 뿐이어서...나는 그저 "오늘은 너희들이 태닝하기 매우 좋은 날" 정도의 꽤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달리 만 1세 우리딸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여하간, 이곳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양을 피할 곳은 전혀 없다...우리의 비, 정지훈이 와서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립싱크가 아닌 라이브로 부른다고 해도, 태양의 신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물며 정오에는, 태양이 그대로 정수리로 파고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건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곳 태양빛은 다른 곳에 비해 더 뜨겁다는 이야기도 있고, 특히나 태양의 피라미드 위에서 맞는 태양은 우리에게 무언가 아주 큰 에너지를 준다고 말하곤 한다. (이건 사실인 것 같다, 정말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 다후는...
약 20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지라, 뭔가 계단 비슷한 것만 보이면 무조건 자기 힘으로 오르려는 의지를 보이던 때였다. 에스컬레이터를 보면 무한 루프처럼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원했고, 공항에서도 케리어를 위한 비탈길보다는 무조건 계단을 이용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런던의 O2 센터 건물 1층에 들어서면, 곧바로 3층까지 어떤 계단을 통해 갈 까를 생각하는 아이였다.
이런 다후의 행동을 보면, 나는 항상 "왜 이 아기가 폴란드 소금광산에서는 하필 자고 있었을까?", "정말 자고는 있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폴란드 3편 소금광산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이다)
떼오띠우아칸 행 버스에서, 아저씨가 들려주는 볼레로를 자장가 삼아 계속 잠만 자던 이 아이는 무언가 투박하기는 하지만, 계단 비슷한 것이 온 사방에 널려져 있는 떼오띠우아칸에 단박에 매료된다. 그리고, 복원이 된 약 2.5km에 이르는 망자의 길 (죽은 자의 길)을 따라갈 때에는 귀신같이 유모차 탑승을 고집하다가, 막상 자신의 뒤에 바로 그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이자, 개구리가 알에서 깨어 뛰쳐나오듯 유모차를 팽개치고 비상했다.
그렇다...그것은...
"나는 내 힘으로 저 위를 오르리라" 라는...하나의 상징과 같은 몸짓이었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태양의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피라미드이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피라미드 보유 세계 1위 국가는 이집트가 아니고, 바로 이 멕시코이다. 이집트 기자 지구에 있는 피라미드가 크기로는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멕시코 피라미드도 무시할 수는 절대 없다는 뜻이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65m, 밑변이 각각 약 225m가 되고, 정상까지는 248 계단이다. 이러한 사실을 비행기 안에서 읽은 나는, 다시금 폴란드 소금광산에서의 800계단 악몽이 되살아났으나, 이제 왕복 500계단 정도는 과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약 1kg 정도 늘어난 다후라도 문제없이 들고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 일찌감치 벌떡 일어난 다후는 정말 자신의 도시락 가방을 챙겨 들고 우리보다 앞서 태양의 피라미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부분은 계단도 크고 가파르지 않아서 인지, 다후는 우리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직진 직진만을 했다. 우리가 뒤에서 바쳐주려 해도, 엉덩이에 붙은 파리를 떼기 위해 힘껏 엉덩이를 흔드는 소처럼 우리 손을 밀쳐낸 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피라미드 중간부까지 올라가서야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점점 가팔라지는 계단에서는 오히려 엄마를 앞에서 이끌어 가며 계단을 올라갔으며, 정말 쉴 새 없이 248 계단을 혼자 올라갔다. 사람들, 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안 믿는 이것은 전설과 같은 사실이다...
아니, 정녕 이 아이의 체력의 끝은 어디란 말이더냐...
어른도 힘든 25층 건물 오르기를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끝내버리다니...그리고,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더 높은 곳은 없느냐는 듯한 시크한 표정을 짓는 만 1세라니...
이렇게 우리 가족 모두는 너무나도 즐겁게, 아무런 불평 없이 즐거워하며 태양의 피라미드에 올랐고, 정상에서 정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서기 7세기까지 전성기를 맞은 이 곳 떼오띠우아칸 20만 명의 사람들도 이 곳 정상에서 이러한 강한 기를 받았을 것이다.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내려올 때도 다후는 행복했다. 내려오나 올라가나, 그녀에게는 그냥 다 계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팔라서 조금 위험한 내리막 구간에서는 내가 잠시 잡아줘야 했지만, 다후는 혼자 힘으로 500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고, 다 내려와서는 런던에서 했던 그대로 "아빠, 다시 올라가자"는...다 큰 어른이 했으면 몇 대 맞고, 미친놈 소리 들을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태양의 피라미드를 거쳐, 다시 죽은 자의 길을 따라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달의 피라미드는 높이 46m로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작지만, 실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세계를 지속하기 위해 인간의 심장과 피를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가 행해진 곳이기 때문이다. 고대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던 인신공희는 대부분 동물의 피로 대체되었으나, 이곳은 유독 이러한 의식이 지속되었고, 이 때문에 이 곳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우리에게도 어는 정도 알려진 영화 apocalypto는 사실상 마야 문명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찌 되었던 사람의 머리와 심장을 바치는 장면이나, 그 외의 영화 장면 장면들을 통해 달의 피라미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유추할 수 있겠다. 갑자기 영화와 역사 이야기로 빠져서 그렇지만, 일단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러한 의식이 절대 야만적이거나 무식한 행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종교나 민족의 의식을 "다르다"가 아니라, "맞다 틀리다"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과는 다르게 지금의 달의 피라미드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시원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특히, 떼오띠우아칸의 전체 광경을 보기에는 이 곳 달의 피라미드 위가 최적이다. 태양의 피라미드가 높고 크기는 하지만, 죽은 자의 길의 중간쯤에, 그것도 길에서 약간 빠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난 여행을 참 좋아한다...좋아하는 장소도 다양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떼오띠우아칸과 같은 장소를 최고의 여행 장소롤 꼽는다. 이와 같은 곳의 또 다른 예가 뭐냐고? 음...앙코르와트나 룩소르 신전 정도?
그 이유는...복잡하기는 한데...
일단, 사람이 했다기에는 말도 안 되는 무언가가 실제로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을 누가, 어떤 이유로 했는 지도 잘 밝혀지지 않아, 그 의문에 대해 내가 심각하게 궁금해하고, 그로 인해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책을 사던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해서라도 이에 대해 알기 위해 더 파고들고, 또 이런 연유로 인해 이 곳에 대한 기억과 의문은 여행 후에도 오래오래 남기 때문이다. 아...이 글을 쓰다 보니, 시공사 시리즈 (잉카, 아즈텍, 마야)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서양식 해석이긴 하지만...
다시 우리 가족 여행으로 돌아와 보자...
이번 여행의 목적부터 되짚어보면, 비가 안오고, 태양이 있는 곳에 가서 (수영도 하며) 따뜻함을 느끼고, 선조의 지혜를 배우자는 것이었는데, 떼오띠우아칸에서 우리는 수영 이외의 모든 것을 얻게 된다.
정말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의 햇빛은 최고였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첫 째딸 다후는...
선조들의 지혜인 자연에 맞서지 말고, 순응하라는 말을 깨닫게 된다. 자연을 이기려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자연을 이기려는 기질은 아마도 엄마를 닮았다란 느낌이 든다. 내 와이프는 항상 캐리비언베이의 파도풀에 가면, 꼭 파도가 나오는 역방향으로, 즉 파도에 대항하며 물을 뚫고 앞으로 수영을 한다. 이렇게 자연을 역행하여 이기려하면 안되는데, 꼭 그러다 물을 먹곤한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항상 자연, 즉 파도를 이용해 앞으로 가는 게 좋다...이게 바로 자연과의 아름다운 상생이 아니겠는가?
여튼 오늘 만 1세 우리 딸 다후는 민소매만을 입고서 태양의 도시에서, 뜨거운 태양에 맞섰으나,
아래 그림처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어린 나이에 등껍질이 벗겨지는 참사를 당하고 만다...원래 우리 부부와 여행을 가면, 너무 피곤해서 밤에 잠은 잘 자기 마련인데, 이 날 다후는 등이 벗겨지며 너무 간지러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게 된다. 휴양지에 간것도 아닌데, 온 몸은 다 탔고...
너에게 자연과의 조화를 미리 얘기 못해줘서 미안하다...우리 이쁜 다후야...
만 1세인 너가 46도 불볕 더위와 -25도 미친 추위에 이어
거의 세계 최소 나이에 등이 벗겨지는 참사 3연타를 당하게 되다니...
이건 정말 우리 부모가 너를 Care하지 못해서이다...그러나, 우리 여행목적인 선조의 지혜 습득과 오늘의 교훈, 즉 자연에 역행하지 말라는 말은 커서도 꼭 기억하도록 하여라.
눈물의 다후...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