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된 딸과 4개 대륙 20개국을 여행한 이상한부부 이야기
스페인에서의 섭씨 50도 혹서기 훈련은 끝났다...
이제 동유럽에서의 혹한기 훈련이 시작된다...
실제온도 영하 19도, 체감온도 영하 25도...
속된 말로 싸대기를 강타하는, 강한 눈보라로 인해 앞으로 전진하기조차 힘든 날씨에 우리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걷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반인류적이며, 극단적인 인간성의 말살을 볼 수 있다는 이 곳 아우슈비츠에
우리 3명의 가족...그렇다, 사십이 다 되가는 우리 부부와 바로 만 한 살의 우리 첫 째 딸 다후가 있다.
정확히 만 1살, 딱 365일을 푸른 지구에서 지낸 다후는, 2012년 여름 스페인 세비야에서 지옥의 더위 (당시, 폭염이 지나간 유럽, 특히 스페인 남부 세비야 온도는 45도를 기록했고, 열 폭풍이 진행된 시내 도로 위의 온도계는 5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를 겪었던 우리 첫 째딸 다후는...
오늘 바로 이자리, 아우슈비츠에서
체감온도 77도 차이의 벽을 이겨내고, 인간과 세상이 얼마나 차갑게 변할 수 있는 지를 경험하고 있다.
잠시..참고로, 이 이야기 (폴란드 1편과 2편)는 한국식 교육에 시달린 박지호군과 심현주양에게 바친다.
즉, 이들은 내가 얼마 전 이 곳 브런치에 올린 "폴란드 3편"을 보고 바로 답글을 통해,
"왜 1편과 2편은 없냐?"라고 따진 이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건 없는게 맞고, 3편부터 쓴 건 그냥 내 맘이며,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한 짓이다...ㅋㅋ
나를 잘 아는 사람은 금방 이해할 상황인데, 안지 수십년된 절친 지호가 그런 질문을 해서 무척이나 실망했다 . (물론 친하니까 3편은 폴란드 3일차라는 뜻이라고, 대강 그러나 마치 계획한 것처럼 대답을 해주긴 했다)
여기서 다시금...한국식 교육의 문제를 되짚어본다.
한국식 강압 교육으로는 1과와 2과를 마쳐야만 3과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외국도 커리큘럼에 따라 교육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단 뜻이다. 즉, 우리 교육상으로는 미분과 적분을 마치지 않으면, 주사위 던져서 1이 나올 확률이 1/6이라는 그 쉬운 "확률과 통계"를 못 배운다는 뜻이다. 다른 예로,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은 영어 "To 부정사"에 매우 강하다. 웬만한 질문의 답은 다 To부정사로 찍기도 한다. 분사니 뭐니 하는 문장은 우리들에겐 쓰면 안되는 천박한 영어인 것이다.
그 이유는 성문 기본영어와 종합영어의 1장이 동사 & 부정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으로 익혀야되는 전치사 등은 항상 그놈의 15장 이후에 있어서, 우리는 그 감을 15개월 후에야 익히게 되었다...뭐 이런 이야기이다.
그러나, 역시 우정은 우정...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1-2편도 뭐 별 내용은 없지만 쓴다.
1. 슬픈 이야기의 시작
이 슬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때마침 방학이라 심심해 죽겠던 나에게 폴란드에서 일하는 후배가 새해맞이 전화를 하면서 시작된다. 그 동안 체코와 헝가리 등 동유럽에 대해 좋은 추억들만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내게, 나만큼이나 심심했던 그 후배가 전화를 했고, 우리는 예상대로 시덥지않은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정말이지 할 말이 다 떨어지자, 그 놈이 대뜸 무리수를 두었다. “형, 너무한 거 아냐? 그렇게 여행 많이 다니면서 바로 옆 동네인……폴란드는 정말 안 올 거야?”라는, 누가 봐도 영혼 없는 초대 요청을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조만간 한번 보고, 소주나 한잔하자” 정도의 인사치레였으리라...
웬만하면 대꾸조차 안 했을 이 쓸데없는 소리에, 정말이지 따분했던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대답을 하게 된다. “너 정말 우리 가족 가면 잘해 줄 거야?” 라는...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은, 척박한 동구권 생활에 지친 그 후배에게, 기다림이란 단어가 이미 뇌에서 삭제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백 명에 한 명 꼴로 걸릴법한 자신의 허술한 거미줄에 걸린 내가, 자신마저도 의심스럽다는 말투로..."오케이, 그럼 약속했어" 라는 화답을 0.1초도 걸리지 않고 던져왔다.
내가 언제 간다고 했는가? 난 그저 “가족들이 가면 잘 해 줄 거지”라는……그 누구도 “아니, 잘 해 줄 수는 없을 거 같은데”라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의문문을 한 것뿐 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사냥개와 같이, 자신의 허술한 보이스피싱에 걸린 나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이렇게 나는, 지금도 그리운 1월의 겨울비가 내리던 런던에서의 어느 날, 폴란드 행을 결심하도록 강요된다.
그로부터 불과 하루 후, 철저하기로 소문난 나는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다시금 전화로 마지막 확인을 시도한다. 아참, 원래 본 책에서는 실명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으나, 이 바보 후배만은 실명을 쓰려 한다.
“근호야, (니가 정말 안 바쁘다는) 3월의 폴란드는 안 춥냐? 그래도, 동유럽이고, 내륙 지방인데 춥지 않아?” 라는...굳이 물어보지 않고도 내가 인터넷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보이스피싱에 이미 한 차례 성공한 미친개 근호는 “아, 형...유럽 하루 이틀 산 사람도 아니고, 촌스럽게 왜 그래? 나 좀 창피해 지려고 하네...” 라는 남자의 자존심에 무한 난도질을 하는 듯한 발언과 함께, “형, 여기도 3월이면 개나리 펴. 형, 알지 개나리? 그 왜 노란 거 있잖아” 라는 말로써 나의 천부적인 구글링 날씨 검색 능력마저 사전차단 하고야 말았다. 결국 나는, 그날 바로 나의 전용기나 다름없는 Ryanair를 이용하여, London-Budapest, Budapest- Warsaw, Krakow-London으로 이어지는 다구간 비행기 표를 불과 200 파운드에 예약하고야 만다. 즉, 우리 세 가족 모두 하여, 2개국 3개 도시 경유 비행기표를 한화 약 34만원, 인당 11만원에 예약 성공한다. 이렇게 하여, 폴란드 여행의 막이 오른다.
참고로, 여행 직전에 내 와이프가 “오빠, 폴란드 추운 나라 아냐?”라는 매우 무식한 질문, 어려운 말로 우문을 던졌고,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너 유럽에 2년째 살면서 정말...폴란드에도 3월이면 개나리 피거덩...
그 왜 돌려서 던지면 헬리콥터처럼 떨어지는 그 꽃...
나 지금 너한테 좀 실망하려고 해"
라는 매우 세련된 현답으로 아내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지옥의 폴란드 여행은...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