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의 점심은 느긋했고, 우리 부부는 급박했다...
기온 45도, 체감온도 50도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러나, 더위보다 무서운 것은 달걀이었다...
유럽이지만 아프리카 같고, 기독교 땅이지만 이슬람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흔적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땅...
과연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의문이 드는 이 곳은...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
찌는 듯한 더위를 식혀주는 씨에스타, 낮잠 시간에 응급차 싸이렌이 울린다...
내 딸은 머나먼 이국, 스페인 남부 지방에서 첫 생일...즉, 돌을 맞이 한다...
물론, 그녀의 의지는 단 1도 없었다...One of 짐짝이 되어 이 곳에 끌려 왔을 뿐...
그렇다. 기계과를 나왔으나, 기계를 모르고,
회사에서 IT/DT 분야를 담당하면서도 너무 디지털이 싫어, 별명 마저 "멀리-어답터"인...
그러나, 역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나...
이것이 바로 내 딸이 첫 생일을 그라나다에서 맞는 유일한 이유이다...
난 왜 디지털을 싫어하고, 아날로그를 좋아할까?, 왜, 역사랑 미술, 음악을 좋아할까?
공대생처럼 추리해 본다...
우리 어머니는 역사책을 끼고 사신다. 이유는 모른다.
뭐...내가 역사를 왜 좋아하는지도 이제야 추리하는 상황에, 어머니의 이유까지 찾긴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공대를 나오셨는데, 형광등이나 리모콘 밧데리까지 엄마가 다 가는걸 보면...참...
여튼, 철학책, 미학책...이런 것만 보신다...가끔, 종교책은 욕하면서 보신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경주 같은 고도보다는...전국 클럽을 엄청 다닌 역사학과 졸업생이다.
그냥 "피"가 답인 것 같다...
그런 부모님 중, 어머니가 영국을 오신다. 사학과 누나도.
어머니는 항상...태어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러나 유럽 분유를 잘먹는 첫 손녀 딸을 항상 어엿비 여기셨다.
그래서, 손녀의 첫 생일이라도 챙겨 주고 싶어하셨고,
반대로 나는 또, 이렇게 온 김에 우리집 역사학자 두 명에게 어울리는 여행을 고민한다.
영국과 가까우면서도 역사 느낌이 팍팍나는 곳으로...일단 스페인과 터키를 골랐다.
그러나, 7박8일 일정으로 가기에 터키는 너무 컸고, 결국 안달루시아 지역을 선택하게 된다.
예약은 4월이었지만, 우리는 실제 6월에 가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채...
역시나 안달루시아 지방은 대단했다...알함브라가 있는 그라나다는 물론이고,
피카소의 말라가...네루하, 특히 나는 "세비야"에 푸욱 빠지게 된다.
구도시의 좁은 골목들, 중심부 궁전과 광장, 그리고 스페인 남부 집시들의 정열이 뭉쳐진 플라멩고 춤까지...
단 하나......6월의 안달루시아는 가혹했다. 하필 그 해, Heat-Wave까지 우리 가족을 덮쳤다.
실제 온도 43~45도, 도시 내 체감온도 50도...
난 딸 머리에 찜질방 양머리 스타일로 수건을 두르고, 무려 2유로나 하는 얼음물을 사서 걍 부었다.
그리고, 그곳을 겁나 빠르게 부채질하여...기계과에서 배운 증발효과를 노렸다.
결과는 성공...
살이 타들어가는 한 여름 낮, 첫 생일을 맞이한 딸 머리에 물을 마구 뿌려대며, 알함브라를 전부 돌 수 있었다.
모두가 뿌듯하다. 딸도...아무말은 안 했지만......못 했지만...음...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여러 문명과 종교의 스토리는...분명 더위 이상의 감동이었다.
그리고, 준비한 만찬...작은 골목길 사이의 스페인 식당에서 우리의 음식이 기다린다.
타파스, 빠에야와 하몽, 그리고 이제 막 분유에서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딸을 위한 파스타까지...
너무 행복했다...음식 나온 후 10분까지는...
딸의 얼굴이 스페인 남부 태양처럼 빨개지기 시작한다...
얼굴과 몸에는 반점이 생기고, 점점 그 크기와 두께가 커진다...
이제 겨우 더위를 피했나 했는데, 몸은 다시 땀범벅이 되고, 반점은 등 뒤까지 퍼진다...
웃음으로 우리 가족을 대하던 종원원들도 당황하고, 쉐프까지 나와...당황하며 응급차를 부른다.
아...대참사...식중독인가...?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응급차를 기다리며...다시금 수건에 얼음물을 적셔 몸을 마사지했다. 그러길 약 15분...
싸이렌 소리와 함께 다행히 열이 내리며, 반점도 수그러든다. 아...진짜...
결론은...알러지 였다...날달걀 알러지...
까르보나라 파스타에 든 덜 익은 달걀이 문제였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이후, 달걀도 먹긴 했겠지만, 알러지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알아보니, 날달걀 알러지는 매우 일반적이고, 많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지만,
보통 4~5살이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고 한다...
우리 부부를 위해, 진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프지 않았던 우리 딸이...영국도 아니고,
심지어 스페인에서 첫 아픔에 응급차까지 오게 하다니...그것도 엄빠의 무지로...
너무 미안했고...금방 회복해서 고맙기도 했다.
우리 딸...
이래서 밖에서 먹는 건 항상 조심해야 한다...아빠의 엄마, 니 할머니도 항상 그런 얘기를 하셨어.
길에서 뭐 주워 먹지 말라고...
음...미안하다...
P.S.
스페인 형들...씨에스타 끝물에 시끄럽게 싸이렌 울려대서 미안해...걱정말고 푸욱 자...
그리고, 이제 밥 쫌만 빨리 먹어...일도 해야지...성가족성당은 완공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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