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체감온도 -25도, 여기는 아우슈비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 곳에서...이번엔 코가 얼다...

by MUSSMUSS


분명 개나리가 이미 만개했다고 들었다...

실온 -15도, 눈폭풍으로 체감온도 -25도의 폴란드 크라쿠프...


속된 말이 아니라...실제로 싸대기를 강타하는 눈폭풍이 치는 이 곳은 바로 아우슈비츠...

세상에서 가장 반인류적이며, 극단적인 인간성의 말살을 볼 수 있는 현장이다...


불과 반년 전이다...체감온도 50도의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을 통해,

세상 그 어떤 더위와 그 어떤 알러지도 이길 수 있게 된 내 딸...

그러나, 지금...실온 -15도, 체감온도 -25도...체감온도 70도 차이의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보아라, 내 딸아...인간과 세상이 얼마나 차갑게 변할 수 있는지...




사실은 중부 유럽이지만, 흔히들 동유럽으로 알고 있는 체코, 헝가리...난 이런 나라들이 좋다.

기대치 못한 경험들...길을 잃고 방황하다 인파에 휩쓸려 우연히 본 "빈에서의 왈츠 공연",

프라하에서 갑자기 한 "스카이 다이빙" 등은, 동유럽의 아름다운 성들과 함께 내 머리 깊숙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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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폴란드는 가보지 못했다...퀴리 부인과 코페르니쿠스가 유명한 나라.

하지만, 나는 이 나라 그 누구보다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할아버지가 너무 좋다.

그 인자하신 얼굴이 여전히 보고싶다. 돌아가실 때까지의 삶은...고귀하다는 표현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문제는...그런 고귀한 분이 계셨던 폴란드에, 미친 개 근호도 있다는 점이다. (본인도 실명을 허락)

"2월에 이미 자기 집 앞 뜰엔 개나리가 만개했다"고 개뻥친 인물이자,

"지옥의 800 계단 소금광산 + 눈폭풍 아우슈비츠행" 기차표를 쥐어 준 인물이다.




개 근호와 술을 너무 마셨다. 폴란드 맥주 Zywiec (즈비에취) 원샷을 수차례, 결정적으로 70도짜리 폴란드 보드카 Slivovitz(슬리보비체)를 깡으로 들이키고, 마지막 와인까지...아이 옆에서 밤새 오바이트를 했다.


다음날 나는 한 살 딸의 이유식을 먹었다. 대신 아이는 엄마랑 일식집 우동을 먹어야 했다...

근호는 오바이트하는 나에게 크라쿠프행 기차표를 꼬옥 쥐어 준다...

내 자리는 콤파트먼트 6좌석 중, 개 옆자리 였다. 아래 사진 저 뒤에 보이는 "크은 개"...

DSC03756.JPG 표있는 개와 표없는 딸


나는 한 살인 내 딸 기차표를 사지 않았다. 그러나, 저 큰 개의 여주인은 "개 자리" 티켓을 샀다.

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집시같아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 : "개 몇 살이예요?, 나이가 좀 있어보이네요..."

집시녀 : "한 살요"

나 : "아씨..."


하필 딸과 동갑...미안하다...딸아, 개도 있는 표가 너는 없구나...

우리 가족 모두 개를 사랑하고, 난 오바이트도 더 할겸, 우리는 크라쿠프행 기차의 복도를 차지한다.




지옥의 800계단이 있는 소금광산에서 사경을 해맨 이야기는, 주인공이 우리 부부이기에...

아우슈비츠로 이야기를 옮긴다.

어릴 때 본 영화 "새벽의 7인"이나, "쉰들러 리스트", 혹은 볼 때마다 더 슬퍼지는 "인생은 아름다워"...

실제는 세 영화 모두 다른 장소가 배경이지만, 공통점은...

세계대전을 그린 좋은 영화란 점, 그리고 우리에게 뭔가 돌아보게 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그날은 정말 추웠다...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 바람이 더 사납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체감온도 -20도 이하의 온도에도 많은 사람이 아우슈비츠를 찾았다. 물론, 그래도 최연소는 내 딸이지만...

가이드 투어를 했다...슬펐다. 주인 못 찾는 소지품과 신발들...마굿간 이하의 침실...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곳에 온 많은 사람들은 일할 기회조차 없이 가스실로 향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일은, 삶은 연장하는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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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는 진심 아름다운 도시였다. 프라하, 부다페스트에 절대 뒤지지 않는...

아우슈비츠에서의 바람은 계속 불었지만, 그 곳을 벗어나 시내로 오자 내 딸도 웬지 모르게 힘을 낸다...

어둠이 깔린 크라쿠프의 시내를 달린다, 시장을 둘러보고, 춤도 추고...


그러다 코가 얼었다...

모자랑 코 색이 같다...집에가 보니, 코가 계속 딱딱하다...동상에 걸린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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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

스페인 혹서기 훈련과,

폴란드 혹한기 훈련을 마친 나의 딸아...


이제 너는 남극이나 적도에서 표류하지만 않으면...어디서든 살 수 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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