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예습러는 늙음 예습 중.
복습을 잘해야 공부를 잘한다는 데, 저는 '예습'을 좋아합니다.
학생 때도 수업 전 책을 읽어가고, 궁금한 것을 메모하는 예습법을 좋아했어요.
그럼에도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니 예습은 단지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저에게 '예습'은 불안을 통제하려는 기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습하는 습관은 실수를 줄이게 해 주고, 준비된 상태로 상황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예습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은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40대가 된 후, 전 노년의 생활을 예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 마음 한켠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길을 가다가도 멋진 노인들을 보면 "저렇게 늙고 싶다." 생각합니다.
잘 관리된 중년을 보면 자기 관리가 쉽지 않음에 홀로 존경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책을 읽을 때는 잘 늙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제목에 끌립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 뭐야>, <50, 우아한 근육>,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한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인생의 중간쯤 왔다면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이토록 멋진 오십이라면> 먼저 살아낸 인생 선배들에게 귀 기울이게 한 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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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유아교육으로 바꾸고 보니 동기들이 다섯 살 아래였어요.
그렇게 5년 늦게 시작된 공부와 이어진 교사 생활은 저의 정서적 나이를 바꾸어 놓았죠.
늘 다섯 살 아래의 동기와 그에 준하는 동료들과 지내다 보니 저도 그냥 다섯 살 아래의 삶을 살게 되었어요.
게다가 유치원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이다 보니
그 아이들의 건강한 에너지가 제가 나이 들고 있음을 못 느끼게 한 것 같아요.
몇 년 전 정수리에 흰머리가 생겼을 때,
오랜 친구의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시 저의 물리적 나이가 현실 자각 되었지만, 찰나의 자각은 지나쳐 버리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우리 애가 글쎄 자기 반 선생님이 할머니라고 막 우는 거야…..”
제가 이제 막 서른이 되어 정서적 스물다섯으로 살고 있을 때였으니 늙음은 나와는 상관없을 때였죠.
자연 속의 학교라고 다들 찾아가는 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지인이 딸의 유치원을 옮겼는데 병설 유치원 선생님 머리가 희끗희끗하셨던 모양이에요.
사립유치원의 젊은 선생님들만 보았던 아이의 눈에는 할머니 선생님이 좋지만은 않았을 테지요.
나라면 경험 많고, 교육력 좋은 나이 많은 선생님도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니 알 수 없는 조급함이 생기더라고요.
마스크 너머의 얼굴에도 나이를 짐작하는 순수한 아이들의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고요.
‘할머니 선생님이 돼도 나를 좋아해 줄까?’한 번도 해보지 않는 고민도 들었어요.
물론 저는 아직 40대이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감사한 말도 종종 들어요.
하지만 물리적 나이는 진실인 것이고 계속 그렇게 정서적 나이로 살 순 없죠.
늙음은 건강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사랑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고민은 그래서 계속됩니다.
나이 듦에 있어서 제게 고려되는 인간관계는 가족, 동료, 그리고 친구입니다.
물론 지금도 소중한 관계들이지요.
나이가 들어감에 있어 바뀌는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생각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작아지는 남편에게는 그를 측은하게 생각해 주는 사랑이 생긴다고요.
세상으로 떠날 우리 아이에게는 나이에 따라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가끔씩 쉬어가는 둥지의 존재로 있어줘야 할 것 같고요.
동료들은 4년 주기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겠지요.
집이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계를 하는,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제 곁에 남을 것 같아요.
친구들은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시간과 돈을 잘 배분하여 오래오래 서로 곁에 있을 수 있도록 만나고, 힘이 되어 주어야겠어요.
나이가 들면, 특히나 은퇴를 하면 많이 외로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적 지위도, 생활공간도 달라지니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요.
달라짐을 받아들이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계에 사랑과 시간을 쏟아야 할 것 같네요.
늙음에 대한 예습 일단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