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날들이었음을 깨달으며
행복 총량의 법칙.
어디선가 힘들고 우울한 사람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지금 힘든 일이 있어도 곧 그만큼 행복한 일도 일어날거라고. 그러니까 걱정말고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를 담은 그 말이 어쩐지 나에게는 위로가 아니었다. 결국 행복함의 총량은 정해져있으니 걱정마 라는 말은 지금 행복한 나에게 곧 그만큼 어려운 일이 생길거라는 예고편과 같았다. 그래서 무서웠고 불안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밖에도 수많은 좋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아니 얼마나 안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지?' 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 생각은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당장에 주어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내 노력으로 얻어낸 결실조차 의심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 코 앞에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행복을 행복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걷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인 마인드가 그런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잘해도 잘한 줄 모르며 내가 잘할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나는 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6년동안 못해도 100번은 받았을 그 작고 동그란 도장이 뭐가 그리 무거웠는지. 나는 나에게 그 도장을 찍어주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도장은 스스로 지워내고 내 도장이 아니라고 부정했으며, 남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도장을 찍어주었다. 작은 도장은 내게 무거웠고 부담이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다음 번 춤을 잘 추지 못했을 때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의 고래는 그랬다. 나는 칭찬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는 고래였다. 바보같은 고래.
내가 무언가를 잘 한다고 여기지 않아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에게 오는 행복을, 성공을, 사랑을 거절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데 이런걸 하면 안돼. 이건 내 것이 아니야" 분명 내 노력으로 따낸 열매임에도 내려놓곤 했다. 분명 나보다 노력한 사람이 있겠지 싶었다. 진짜 바보같은 생각이다. 인생의 목표는 대부분 행복이다.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이러한 것들이 보통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나 역시 내 인생의 목표를 최종적으로는 행복으로 잡고 있다. 이런 내가 행복을 내 손으로 쳐내왔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행복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애썼다. 사실 지금도 "나 열심히 했어" 라고 말 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분명 나의 일부분을 포기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제는 내 행복을 정면으로 바라봐도 되는걸까. 내가 행복하지 않으려 애썼음을 알게 된 지금도 당당하게 나에게 칭찬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음에 의문이 생긴다. 비교라는 과정 없이 오로지 '나'만을 두고 판단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보다 정면으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그 때는 나에게 웃으며 '잘했다' 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했고, 아직 나를 인정하는 내가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바보같은 행동들을 안하기로 결심했으니 한 걸음 성장한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의 발전은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내가 되어 행복을 안아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 날의 나를 웃으며 기다려본다.
2019.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