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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Jan 13. 2023

다양한 믿음, 다양한 사람

나의 믿음은 뿌리를 내려 옳은 방향으로 향하기를

밀리의 서재 구독을 시작했다. 첫 전자책이자 2023 첫 책으로 이 책을 선택했고 막힘없는 문장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종이책을 살 때, 볼 때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목차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한다. 내 취향에 맞지 않은 책을 고르게 될 까봐 슬쩍 열어 안의 내용을 조금 읽기도 하고 ”나의 책”이 되기까지 몇 번의 고민을 거듭한다. 반면 이 책은 그저 제목 하나만 읽고 바로 읽어보고 싶어 졌다. 책 표지에 어깨동무한 남자 옆으로 팔이 하나 더 나와있다는 것도 책을 다 읽은 지금 알게 되었다. 지금 보니 표지도 어쩜 책과 꼭 맞다. 어떤 내용일지 모르고 읽어보니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놀랍고 신기했다. 이 책에는 총 4개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도 모르고 읽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될 때 ‘뭐야 벌써 끝났어’ 하고 놀라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 첫 번째 이야기의 인물들이 이어서 나올 때 ‘아 이어지는 이야기야?’ 하곤 놀랐다. 동성애를 눈치챘을 때에는 살짝 더 놀라기도 했다. 이렇듯 이 책은 나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매번 똑같은 퇴근길에 조금은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서론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던 책 리뷰를 이제는 시작해야겠다.




결말이 후련하지는 않은 책이다. 오히려 책장을 덮은 지금, 더 많은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철우와 한영은 앞으로도 함께일 수 있을까? 남준은 솔직하게 찬호에게 본인의 실수를 털어놓을까? 은채는 결혼을 선택하게 될까? 그 밖에도 한영이 승진을 하는 건지, 나나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지. 모든 인물들의 그다음이 궁금해진다. 분량은 적어도 마음이 가지 않는 인물이 단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다. 배서정의 지금, 은채의 지금, 남준의 지금을 더 그려달라며 작가님을 재촉하고 싶어질 정도로. 후련한 결말로 “와 진짜 재밌다”를 유발하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책이 참 좋다. 일상의 고민은 잠시 잊고 머릿속을 온통 이 책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인물들의 미래를 이리저리 상상하다 만족스러운 결말을 만났을 때에는 “거의 작가네 나도 책 쓸 듯” 하며 괜스레 퇴사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코로나를 반영한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인물들이 어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괜히 리모컨을 들면 남준이 나오는 채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유튜브엔 은채가 만든 영상이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지금 하는 일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언젠가 나도 철우와 포토 작업을 하는 날도 올 것만 같다. 물어볼 순 없겠지만 그래서 지금은 누구와 믿음을 쌓아가고 있는지, 이번 믿음은 조금 더 단단하고 강한 것 같은지 궁금해서 일에 집중은 못할 듯하다.



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읽는 내내 철우의 엄마 이야기가 마음을 자꾸 찌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요 근래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을 단체로 표현된 철우의 엄마는 누구보다 약했고 믿음을 쌓을 상대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어차피 나는 스포 없이 리뷰 못한다) 코시국에 본인의 종교가 사이비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아들과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열심히 기도를 하는 철우의 엄마는 사실 누구보다 믿음이 필요해 보였다. 이 책은 상대가 누구든, 옳지 못하더라도 사람은 결국 누군가와는 믿음을 쌓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방 무너지는 믿음도 믿음이며 잘못된 믿음도 믿음이니까. 어쩌면 관계의 시작은 크고 작은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철우는 믿음을 부정하고 결국 망가질 믿음이라는 눈으로 한영을 바라본다. 하지만 한영의 믿음을 거부하거나 밀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믿음을 통해 불안한 자신을 붙잡고 싶어 보였다. 철우는 자기 자신과의 믿음이 부러진 사람 같았다. 다른 어딘가로 믿음을 뻗기 위해서는 내 안의 믿음이 먼저 단단해야 한다. 지탱할 땅이 되어 버텨주어야 하니까. 철우는 그 땅이 없었다. 지금 한영과 행복해도 마음속 땅이 흔들릴 때마다 불안했다. 그 전의 사랑이 허상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진심이라고 생각한 사랑이 순식간에 옮겨붙어서일까. Y와 자신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믿음”은 소용없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한다. 불쌍하지만 나쁜 철우. 한영이 행복하길 바라며 철우는 건강하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주인공 넷 중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꼽자면 남준이다. 사실 상암 86 아이디를 보는 순간 괜히 머리 저 끝에서 설마 남준은 아니겠지 세상이 그렇게 좁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우가 남준을 떠올릴 때 ‘아이고 찬호야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맞았구나’ 싶었다. 이해를 절대 못하고 책을 또 읽어도 괜스레 남준의 이름이 나오면 인상을 쓰고 마저 읽겠지만, 그런 남준마저도 참 마음이 가고 애정하게 된다. 작가님이 도대체 얼마나 글을 부드럽게 쓰시는지, 책을 멈출 수도 끊을 수도 없었다. 네 명 모두 똑같이 아끼고 보고 싶어 지는 책이었다. 아 은채도.



성격은 운명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며 까먹을 때쯤 다시 이 책이 그렇게 말한다. “성격이 운명이야” 가끔 소설은 자기 계발서보다도 나를 더 반성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한다. 내 믿음은 올바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나? 내 성격대로 흘러간다면 내 미래는 괜찮을까? 온갖 생각에 잠시 주인공 4명을 뒤로 미뤄두기도 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내 인생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성격대로 사는 게 맞다. 그러니까 나는 잘 살고 말 거다. 성격 좀 바꾸지 뭐.



이 책을 읽으며 사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부분은 작가의 말이었다.


나는 희망에 취약한 사람이라, 아직도 연약한 믿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왜 사람을 잘 믿는지, 믿음을 쉽게 시작하는지, 믿음에 대해 집착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희망에 취약해서 그랬다. 그리고 이 책 속 모두가 나처럼, 이 책의 저자처럼 희망에 취약한 것 같았다.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내가 희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희망에 취약한 거라니. (아무도 주지 않았지만 살짝 상처받았다.) 그래도 연약한 믿음이 결국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마무리가 마음에 든다. 연약한 믿음이 쌓이고 쌓여 두껍고 단단한 믿음이 되리라. 사람에게, 공간에게 혹은 마음에게. 믿음이 향하는 곳마다 마음이 가고야 만다. 이 책을 통해 박상영 작가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 “박상영”이라는 이름이 쓰여있는 책이라면 망설임 없이 ‘재미있겠지’ 라며 어느새 책을 사고 있을 내가 그려진다. 사소한 믿음이 나에게 언젠가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줄 것이다. 믿음에 대하여, 당분간 모든 믿음을 의식할 때마다 내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 얼마나 단단하고 견고한지 살펴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그 고민을 끝내는 날까지 계속 읽고 있는 거나 다름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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