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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발효 중

묵힐수록 좋은 생각, 느릴수록 좋은 글

by 겨자풀 식탁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걸 그렇다고 착각하며 부러워하는 시선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누리고 있지도 않은 걸 이유로 내 지금 모습이 로망이라며 자신의 갈망을 투영하는 시선을 받을 때면, 마음이 짠-하면서도 향방 잃은 억울함이 치고 올라오기도 한다.


특히,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유해한 학대자라는 걸 말할 수 없는 관계의 경우 더하다.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사진들만 보고 '아이들이랑 너무 행복해 보여요, 부러워요'라고 한다든가, '저는 너무 결혼하고 싶은데 00 씨는 이미 결혼해서 가정도 있고 너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최대한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는 편이다.


나도 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그럼에도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굳이 나와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나로서는 참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나름 애써서 티를 내는 나의 소소한 시그널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신의 갈망에 눈먼 상대방의 '눈치 없음'의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벽은 종종 나를 숨 막히게 만든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상당 수준의 '기아 상태'라고 믿는 편이다. 나 스스로도 부러움을 심하게 느꼈던 순간들이 많기에, 그 경험을 근거로 내린 결론이다. 너무 허기진 나머지 다 상해버린 음식이어도 음식이니까 먹고 싶고, 너무 갈망하는 나머지 헛껍데기 포장지라도 끌어안고 누리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품는 것이 무슨 문제랴. 한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거대한 사회 구조에 속한 하나의 점으로서 느끼는 감정일 때가 많음을 안다. 그럼에도 '오해' 혹은 '아직 이해에 이르지 못함'에서 기인한 그런 시선들은 아주 가끔 경험하는 '버거움 위의 버거움'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나는 개인 소셜미디어 본 계정에서 일상 속 내 '생각'을 길어 올리고 내 멋대로 적어 내려간다. 종종 아이들 사진과 시시콜콜한 일화들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어쨌거나 소셜 미디어 안에서 보이는 모습은 내 일상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삶의 극히 일부에, 적당한 필터를 입혀 공유할 뿐이다.


누구라도 조금은 그렇지 않겠나. 정도의 차이, 종류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가식덩어리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누군가 부러운 마음이 있다면, 그건 '나의 갈망'이지 내가 부러워하는 그 대상이 실제로 누리고 있는 무언가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 갈망의 표현을 홀로 잘 길어 올려 표현해 내는 것도 한 인간이 성숙해 가는 방식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부러울 때 글을 쓴다. 무언가 미치도록 갈망할 때도 글을 쓴다. 어디론가 절박하게 도망가고 싶을 때도 글을 쓴다. "부럽다, 갖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라는 1차원 언어로 표현하고 증발시키는 대신, 그 이면 너머에 있는 나를 알아가는 도구로 삼기 위해 쓰고 또 쓴다.


나의 갈망, 사회의 구조,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현재 내가 당면한 과제를 끌어안고 고민하는 나만의 무언가,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꿈틀거림. 그 몸부림을 홀로 외로이 오래오래 담아내고 숙성시키고 향이 나도록 발효시키려 한다.


우리 모두 고유의 향을 머금은 마음으로 발효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깊은 향을 내지 않을까(이미지 출처:DepositPhotos)


그 몸부림의 시간을 보내고 적어 내려 가는 내 끄적임은 나만의 산미와 단맛, 쓴맛을 고루 지닌 하나의 글이 된다 믿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서 빨리 털어내고 싶어 증발시킨 언어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로 내려앉아 그를 짓누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들여 발효시킨 언어는 100년이 가도, 200년이 가도, 누군가 마음에 입에 오래 머금고 음미하고 싶은 향이 될지도 모른다.


증발의 언어 말고 발효의 언어가 더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내 안에, 그리고 내가 마주 잡는 마음들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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