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반딧불처럼 비추는 목소리들

by 겨자풀 식탁

얼마 전 김주하 앵커의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아주 오래전, 뉴스로 소식을 대강 접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토크쇼 <데이 앤 나잇>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는 모습이 생경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할 것이다. 김주하 앵커의 지나간 이야기를 들으며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겪어본 사람은 알지만, 전형적인 '학대 관계'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거짓말, 배우자 비하와 비난, 가스라이팅, 재정적 통제와 무책임, 언어적이고 심리적인 폭력, 그리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그 긴 세월 동안 모든 것을 견디고 버티고 끝내 자기와 아이들을 지킨 김주하 앵커님의 모습이 단단하고 대단하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어떤 건지 아니까.


<오은영의 버킷리스트>


최근 오은영 선생님의 채널에 나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눈 영상을 보았다.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서 낸 것에 대해 오은영 선생님은 말한다. 그렇게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아프지만, 그러면서 회복이 시작되는 거라고.


'내가 그런 일을 겪었지' 혹은 '그때 그랬었지' 하고 잠시 회상하는 것과 그 모든 일들을 다시 '기록'으로 되돌아보며 책으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더 아팠을 테고, 더 후회도 되었을 테고, 모든 세월이 더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겠지, 아마도.




책을 집필한 이유에 관해 묻자 김주하 앵커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했다.


첫째는 위탁 시설에서 지내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시설을 나와야 하는 청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함이고, 둘째는 자신이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도 그들의 아픔을 내놓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오은영의 버킷리스트>


'가정 폭력' 혹은 '가정 학대'라는 현실 속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던 별거 혹은 이혼임에도 그저 '이혼녀'라는 수식어 하나로 판단하는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김주하 앵커의 그 말에 너무 공감이 되었다.


내가 이분처럼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내 이갸기를 하나씩 기록하고 여기에 적어 내려가면서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흉이라고 왜 피해자가 더 말을 못 하지? 이건 아니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폭력을 멈추라고 하는 대신, 학대 가정에 관해 커밍아웃하는 이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현실 앞에 작은 반딧불만한 목소리라도 내고 싶었다.


컴컴한 어두움 속에서 누군가 그 반딧불을 보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듣는 이 없는 것 같아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이유가 충분하다 여겼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 본다. 반딧불이어라. 그저 작은 몸짓이라도, 어두운 길에 다정한 동행이 되는 반딧불이어라.


#겨자풀식탁이야기

#기록중독자의일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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