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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스트잇 MUST IT Mar 15. 2018

패션계의 교황

너는 그냥 모델이고, 나는 안나 윈투어야



칼 같은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단지 앉아서 박수를 치거나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그녀의 작은 몸짓에 불과한 행동들에 의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뀌고, 2달 동안 몇 십 명이 밤새워서 제작한 옷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고작 박수 한 번에.


신흥종교? 아니다. 그들의 종교는 나도 모른다.


그럼 잔존해 있는 독재정권인가? 아니다. 지극히 민주주의 사회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흔히 말하는 패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녀의 박수를 받은 디자이너는 전 세계 매거진과 SNS 피드를 장식하며 극찬을 받고, 그녀가 ‘모피가 유행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 모든 브랜드가 모피를 만든다.


말이 안 되지만, 그녀 앞에서는 말이 된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미국 VOGUE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 이다.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출처 : Evening Standard>




1. 당신은 못됐습니까?




미국의 방송에서 ‘안나 윈투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못됐습니까?”


그에 대한 안나 윈투어의 답변은 이러했다.


“나는 VOGUE에서 20년 동안 일했고, 많은 사람들이 20년 동안 나와 같이했다. 내가 만약 정말 못됐다면, 그들은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다.”


맞는 말이다. 20년 동안 그녀의 밑에서 충성을 다하며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으며, 칼 라거펠트, 존 갈리아노와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철의 여인, 얼음 공주, 패션계의 교황과 같은 수식어가 늘 붙어있다.



안나 윈투어와 칼라거펠트는 절친한 관계로 유명하다    <출처 :guestofaguest >



그도 그럴 것이 24시간 동안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고, 무표정과 딱딱한 행동들로 상대방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가볍게 박수만 쳤는데도 사람들이 기뻐할까.


이런 일화도 있다. 프라다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안나 윈투어에게 컬렉션을 먼저 선보였었는데, 안나 윈투어는 ‘무겁다’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그 후, 프라다 컬렉션 의상의 소재가 전부 교체되었다.


얼음 공주라는 수식어가 붙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하는데 있어서 무뚝뚝하고 무섭게 냉정하다. 자신의 감각에 확신이 차있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거침이 없다. 또한 자신의 의사를 주변에 정확히 전달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정이 넘쳐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열정을 자신의 부하 직원들에게도 요구하여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또한 그녀는 철저히 규칙적이고, 자기 관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서 7시에 샵에 들려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출근한다. 심지어 정해진 스케줄을 지키기 위해서 초대된 파티에 최대 10분 이상 머무르지 않으며, 밤 10시에는 무조건 잠든다고 한다. 스케줄을 위해 출산 일정까지 조정하는 철의 여인이다.



테니스를 좋아하여, 테니스 대회에도 자주 모습을 보인다.     <출처 : Laver Cup >




2. 너는 그냥 모델이고, 나는 안나 윈투어라고!




안나 윈투어는 30년 동안 VOGUE에서 근무하며 패션계를 자기 입맛대로 바꿔놓았다. 자기 입맛에 맞게 모두를 길들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녀 때문에 패션위크 순서가 바뀌었으니까.


세계 4대 패션위크는 파리-밀라노-런던-뉴욕 순이었다. 안나 윈투어는 자신이 근무하는 미국이 패션위크의 마지막인 것이 맘에 안 들어서 패션위크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한 마디에 뉴욕 패션위크가 제일 먼저 진행되는 것으로 순서가 바뀌었다. 또한 안나 윈투어가 참석하기로 되어있던 패션쇼에 스케줄로 인해 참석을 못할 것이라고 밝히자, 패션 업계 스케줄 전체를 조정하여 참석하도록 만들었다.


정말로 패션계의 교황 다운 면모이다.


패션쇼에 참석한 안나 윈투어    <출처 : News.lt>




그녀의 행동을 보면 패션이라는 종교가 섬기는 ‘교황’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전용기가 있으며, 모든 행사와 패션쇼에 그녀만을 위한 입구가 있고 지정석이 있다. 그녀가 패션쇼 장에 도착하지 않으면 무대의 조명조차 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외모지상주의가 강하여 자신의 직원들의 복장을 정하고 비만을 규제하며 이런 말을 남겼었다.


“비만은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걸 명심해”


심지어 오프라 원프리에게 VOGUE 잡지 커버에 나오려면 살을 빼라고 요구했고, 오프라 원프리는 다이어트를 했다. 정말 몰라볼 정도로.




자신의 커버 앞에서 안나 윈투어와 함께 사진을 찍은 오프라 원프리   <출처 : NY Daily News>




그녀는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외모지상주의 못지않게 엘리트주의가 강한 그녀는 히피 풍 성격의 그런지 패션을 정말 싫어하였고, 디자이너들에게 그런지 요소가 들어가면 VOGUE에 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런지 패션 요소가 패션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지목하고, 지원하는 디자이너들은 거물급의 스타 디자이너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마크 제이콥스와 존 갈리아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안나 윈투어가 신인 때부터 그들을 알아보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어서 스타급 디자이너로 성장하였다. 그 밖에도 알렉산더 왕, 프로앤자슐러, 필립림, 제이슨우, 타군 등의 그녀가 지목했던 디자이너들은 패션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디자이너들로 성장하였다.



마크 제이콥스와 안나 윈투어     <출처 : Huffington Post>



존 갈리아노와 안나 윈투어    <출처 : dariasdiaries>



교황이 지원해준다고 패션계에 소문이 났는데안 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3. 비공식 뉴욕 시장, 안나 윈투어




뛰어난 감각으로 타고난 에디터인 윈투어는 처음부터 에디터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녀는 1949년에 ‘이브닝 스탠다드’의 편집국장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교복을 증오할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시스턴트 활동을 하면서도 로스쿨을 가고 싶어 했으나, 결국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영국 ‘Harper’s BAZAAR’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에디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잡지사를 거치며 실력을 쌓았고, 1983년에 미국 VOGU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다. 그러나 그녀는 발탁되자마자 문제를 일으킨다.



안나 윈투어의 어린시절   <출처 : homeofthe20s>



출근 첫날, 그녀는 기존에 일하던 스태프들을 해고시켰다. 이유는 단지 뜻이 안 맞아서.


자기 입맛에 맞게 스태프를 다시 채용한 뒤, 두 번째로 한 일은 발간하기 위해서 촬영됐던 사진을 전부 폐기시켰다. 표지까지 통째로 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사진을 폐기 후, 그녀는 1만 달러 짜리 수공예비즈 티셔츠를 입힌 일반인 모델에 싸구려 50달러짜리 청바지를 코디하여 VOGUE 커버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때 당시 잡지사들은 비싼 모델과 옷만을 활용하여 커버를 제작했었는데, 청바지와 같이 대중적인 옷은 커버 사진 주변을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VOGUE가 그렇게 제작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VOGUE 커버를 인쇄했던 인쇄업자는 VOGUE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서 이번 달 표지가 맞냐고 계속 되물었다고 한다.  


안나 윈투어는 명품과 빈티지의 조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를 원했고, 잡지를 받아보는 대중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안나 윈투어 이전의 VOGUE는 잘못된 방향성과 ELLE US라는 경쟁사가 등장하면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이 사건 이후 단번에 미국 1위 패션잡지의 자리를 탈환했다.




안나 윈투어의 첫 VOGUE 커버    <출처 : nytimes>



VOGUE를 1위로 올려놓은 것뿐만 아니라 칼 같은 단발머리와 24시간 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그녀의 감각이 지금의 안나 윈투어를 만들었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 성공을 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 그리고 남들과 다른 눈으로 읽어내는 트렌드로 모두를 안나 윈투어에게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유명인들의 이미지 메이커로도 활동했는데, 그중 한 명인 시리아 대통령 부인인 ‘아스마 알아사드’를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신선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만들었다. 만들어준 이미지와 달리 시리아에서는 인권유린 사태가 일어났지만 말이다.



VOGUE에 실린 아스마 알 아사드     <출처 : Gawker>


안나 윈투어를 거쳐간 남자는 두 손으로 다 세지 못 할 정도로 많은데, 모두들 하나같이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남자들은 그녀를 ‘숲에서 길을 잃은 작은 암사슴’이라고 불렀었고, 이 말을 들은 직장 동료들은 이렇게 답변한다고 한다.


“암사슴의 가면을 쓴 고질라!”




<출처 : NEWS >



얼음 공주, 철의 여인 등 그녀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많다. 그러나 그 별명들은 타고난 재능과 넘치는 열정과 노력이 만들었다. 그리고 VOGUE에서 30년째 일하고 있는 교황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너무 교황같이 행동하는 거 아니냐고?

별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그녀를 동경하고 찬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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