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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이 Feb 19. 2021

4. 난임 병원

난임일기


이상기후. 초등학교 때인가... 스콜은 동남아 지역의 특징적인 기후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가을에 쏟아지는 스콜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그러나 변해가는 기후를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약간의 죄책감은 여전했다. 우산의 능력을 벗어난 강수량으로 인해 외투는 점점 젖어갔고 아스팔트도 그 능력을 다 했는지 여기저기 움푹 파여있었다. 조금이라도 덜 젖어볼까 웅덩이를 요리저리 피해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도로와 인도를 나누는 도로경계석 옆으로는 하수도의 능력을 초과한 빗물이 작은 천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저 천을 뛰어넘기 위해선 멀리뛰기 선수나 돼야 발을 담그지 않은 채 넘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이미 많이 젖었지만 혹시나 조심성 없는 차가 구정물을 튀길까 싶어 횡단보도에서 멀찍이 서 신호를 기다렸다. 횡단보도 가까이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 있었다. '저러다가 물 튈 텐데' 생각하던 찰나 하얀색 SUV 차량이 천을 가로지르며 큰 파도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구정물을 뒤집어썼고 내 생각 회로는 정지했다. 


"깔깔깔 야! 너! 깔깔깔"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일순 터져버렸다. 웃음소리는 다른 학생들을 불러 모아 큰 군중을 이루었다. 마치 워터파크에서 큰 파도가 한번 더 오기를 바라는 것처럼 학생들은 횡단보도 앞에 모여들었다. 녹색 등이 들어오고 학생들을 헤치고 길을 건너며 이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정녕 엄마가 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척이는 신발이 참으로 찝찝했던 하루였다.




난임 병원 첫 방문

토요일이 되자 먹구름이 개이고 하늘은 가을의 높고 푸르름을 되찾았다. 나들이 가기에 딱 좋은 날씨를 뒤로한 채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난임 병원으로 향했다. 여유 있게 출발했지만 주차장을 헤매느라 정각이 다돼서야 도착했다. 난임 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분주했다.


일반적으로 난임 병원은 생리 시작 이틀이나 3일째 방문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한다. 첫 방문에 상담과 호르몬 검사를 동시에 진행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남편도 함께 방문할 예정이라면 사전 예약을 통해 남성 난임 검사도 같은 날 진행할 수 있다. 남성 난임 검사의 경우 당일 아침에 예약해 검사받을 수 있는 곳도 있는데 내가 방문한 병원은 후자였기에 우리는 3주 전에 예약을 마치고 기다렸다.


사실 예약을 결심하고 돌아오는 생리 시작 예정일이 금요일인 것을 확인했을 때 이것은 하늘의 뜻인가 싶었다. 한 달에 한번 정도만 휴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총알을 아껴 쓰고 싶었는데 첫 예약부터 몸이 도와준다 싶었다. 생리주기만큼은 정말 정확했기에 나는 확신에 차 예약을 했다. 그러나 첫 진료에 몸이 긴장을 했는지 병원에 가는 그날까지 생리는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접수를 하자마자 남편은 곧장 어디론가 보내지고 나는 로비에 남아 문진표를 작성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키, 체중, 혈압을 측정하고 간단한 상담을 진행했다. 나의 늦어진 생리주기에 선생님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는지 물었다.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에 해봤지만 정확히 한 줄이었다(속마음: 두줄이었으면 안 왔을 거예요)고 답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 남편이 돌아왔고 남편도 내가 했던 예진을 동일하게 받았다. 남편은 남성 난임 검사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것을 꺼렸는데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방에 들어가서 다행이었어"라는 말로 후기를 대신했다.


약간의 대기 후 만난 의사 선생님은 따뜻한 분이셨다. 대기실의 분주함과 다르게 진료실에는 여유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우선 생리가 시작되면 호르몬 검사를 하고 다다음주에 초음파와 자궁난관 조영술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율하고는 차차 결과를 보며 진행해가자고 말씀하셨다.


자, 이제 시작이다.




여성 난임 검사


첫 방문 후 며칠 지나 생리가 시작되었다. 정확히 이틀 뒤 난임 병원을 다시 방문해 호르몬 검사를 했다. 호르몬 검사를 통해 비타민D, 갑상선 호르몬 등 임신과 관련된 수치들이 정상 범위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검사를 통해 중요한 난소 나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검사과정은 그저 피 몇 통 뽑는 것이 다이다. 순식간에 끝난다.


이와 반대로 자궁난관 조영 초음파는 준비할 것이 많았다. 우선 균 검사를 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검사가 가능하다. 만약 균 검사에서 자궁난관 조영 초음파를 진행할 수 없는 균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치료 후에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문제가 없어 호르몬 검사를 한 다음 주 검사 예약을 했다. 검사 전후 5일간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고 당일에는 정해진 시간에 진통제를 복용한다. 자궁난관 조영 초음파는 자궁과 나팔관을 연결하는 얇은 관이 막혔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문제가 없을 경우 초음파를 통해 하얀 조영제가 퍼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 검사는 아프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나는 다행히도 아무런 고통이 없이 검사가 금방 종료되었다.




대망의 검사 결과

자궁난관 조영 초음파 결과는 검사 직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초음파로 확인한 것처럼 난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자궁근종의 크기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보다 커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위치나 크기를 고려할 때 수술 과정에서 수혈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 하셨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막막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의사 선생님께서 방문 가능한 일자를 물으시더니 직접 예약을 잡아주시겠다 하셨다. 밖에 나가 잠시 기다리자 의사 선생님께서 외래 진료 예약 날자와 시간을 알려주셨다. "잘 받고 오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이 참 따뜻했다.


호르몬 검사와 남성 난임 검사 결과는 남편과 함께 방문해 결과를 들었는데 나는 다행히도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였다. 비타민D와 코큐텐을 챙겨 먹은 게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걱정했던 난소 나이도 20대 후반 수준이어서 자궁근종만 제거하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남편은 정상 정자 비율이 평균 미달이고 다른 수치들도 평균에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나이를 고려하면 평균에 간당간당한 수치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운동을 오랜 시간 꾸준히 해왔던 터라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몇 개월 스스로 노력(운동, 영양제 복용 등)을 해보고 수치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각각의 숙제를 해내는데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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