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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이 Feb 26. 2021

5. 자궁경 수술(1)

난임일기

우리 부부의 일요일은 청소하는 날이다. 우리는 열외 없이 철저한 분업을 통해 최고의 생산성을 달성한다. 철저한 분업이란 역량을 고려한 적재적소의 배치라기보다는 살아온 기간만큼 현명하게 해야 할 일이 나뉘어 있다는 개념인데 서로 '노터치'하는 것이 중요 포인트이다. 그나마 잘하는 순으로 집안일을 나눠갖았으니 '내가 하면 절대 저만큼 하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서로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빨래를 제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개어내는 재주를 지녔는데 요리는 먹을만하게 해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주방 청소, 빨래(개기 금지), 요리를 주로 담당한다. 빨래 개기와 정리정돈은 나보다 잘하는 남편의 몫이다. 더욱이 일주일 동안 묵은 때를 몇 시간 안에 처리하기 위해선 남의 일에 간섭할 시간이 없다.


늦은 아침을 먹고 누군가 신나는 노동요를 틀면 우리는 각자 임무에 매진한다. 나는 세탁기가 빨래를 하는 사이 부지런히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꺼내 주방 이곳저곳을 닦아낸다. 언제 튀었는지 모르는 얼룩과 먼지를 닦아내며 한 발씩 옆으로 이동한다. 어느새 잡동사니 산으로 변해버린 식탁 위에는 일주일치의 먼지도 함께 쌓여있다. 하나 둘 물건이 제 자리를 찾으니 식탁 위로 지난달 병원에서 받아온 사이토텍 2알이 보였다. 



점막 하 자궁근종
  [출처] [난임 라헬] 여성의 자궁 건강을 위협하는 자궁근종|작성자 서울라헬여성의원


자궁근종은 발생 위치에 따라 근층 내 자궁근종, 장막 하 자궁근종, 점막 하 자궁근종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2cm 점막 하 자궁근종을 가지고 있다. 5년 전쯤 갑자기 생리량과 생리통이 심해져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자궁근종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막 하 자궁근종의 발병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나 가장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자궁내막 가까이에 위치하여 착상을 방해하고 임신 후에도 자연유산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임 병원에서 검사를 모두 마치고 나에게 권유한 유일한 치료가 바로 자궁근종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2cm의 작은 혹이 나의 임신에 미치는 영향은 그 크기를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기 상 수술 과정에서 수혈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난임 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궁경 수술로 진행할 수 있어 당일 입원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자궁경 수술은 실제 30분 정도 걸리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관계로 총 소요시간은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수술 전 외래


난임 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예약해주신 대학병원의 외래진료일이 다가왔다. 예약된 대학 병원은 집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가며 자주 지나쳤지만 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연차를 냈지만 예약이 이른 시간에 되어있어 출근길 인파를 피하지 못하고 병원에 도착하였다.


대학병원에 도착해 처음으로 놀란 것은 사람이 하던 일을 키오스크가 상당 부분 대체했다는 것이었다. 진료카드를 받은 이후에는 키오스크를 통해 도착을 알리고, 가야 할 곳을 확인하며, 영상 자료를 등록해야 했다. 그리고 키와 몸무게도 진료카드만 태그 하면 자동으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키오스크를 통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의사 선생님과 예진을 한다. 앱으로 등록한 문진표를 다시 묻는 수준이었고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대학병원에서 놀란 두 번째는 검사와 진료를 진행하기 전 건건히 수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젊은 나도 간혹 헷갈리는 경우가 있어 연령이 높으신 분들은 필히 가족과 동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를 찍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임 병원에서 찍은 초음파 영상을 가지고와 키오스크에 등록을 하면 따로 검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나는 그걸 몰라서 9만 원을 내고 초음파를 새로 찍었다.


초음파를 찍고 진료실로 이동해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자궁경 수술을 위해 외래 예약을 했던 터라 진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술을 왜 하려 하는지 물으셨고, 수술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처음 뵙는 의사 선생님이었지만 난임 병원 주치의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시다고 해서 그랬는지 전혀 낯설지 않았다.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진료 후에는 수술 코디네이터분을 만나 수술일자를 조율했다. 생리가 시작되고 10일 이내에 받는 것이 좋다고 해 생리 예정일을 고려하여 다음 달 중 수술 날짜를 잡았다. 만약 생리주기가 틀어지면 해당 코디네이터분께 연락을 해 수술일자를 조정하면 된다. 


당일에 혹시 모르니 공복으로 방문하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센스로 나는 당일에 수술 전 검사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수술 전 검사는 마치 게임 캐릭터가 되어 지도를 보며 퀘스트를 하러 다니는 기분으로 심전도, X-ray, 채혈 등을 포함한다. 해당 검사를 통해 내 몸이 전신마취를 해도 무리가 없는지 체크한다. 마취 교육도 당일에 진행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기도 삽입 관을 꽉 깨물어 이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가 약한 분들은 전신마취 전에 치아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대기, 검사, 수납의 무한 반복을 마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두렵지만 기대되기도 해


식탁 위의 사이토텍 앞에 놓여있는 달력에는 다음 주 주말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수술 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이틀이 지나면 사이토텍을 먹어야 하고, 그다음 날에는 수술이다.


미련이란 게 참 그렇다. 이번 달에도 혹시나 기적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까 헛된 희망을 가졌었다. 그래도 지난 몇 달 동안 노력했으니까 혹시 임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주기에 맞춰 생리는 시작되었고 나는 예정대로 수술을 할 것이다.


2년 전인가 동네 산부인과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러 갔을 때 작은 폴립이 있다고 해서 제거 시술을 했었다. 자궁근종이 있는데 대체 왜 폴립만 제거하라는 건지 이상했다.

 

“자궁근종이 있는데 폴립만 제거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폴립 제거하면 자궁도 깨끗해져서 임신도 잘 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참 큰 용기 내서 시술을 받았는데,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대학병원에 가 자궁경 수술을 받을걸 후회된다. 


수술을 앞두고 차라리 수술을 빨리 하고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과, 무서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갈팡질팡 거린다. 두렵지만 기대되기도 하는 이상한 기분이랄까. 그래도 작은 유리구슬 크기의 이 근종이 떠나야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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