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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이 Mar 02. 2021

6. 자궁경 수술(2)

난임일기

"주차장이야 올라갈게"


엄마의 전화를 끊자마자 새벽 다섯 시를 알리는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마취'라는 무의식이 주는 공포 때문인지 잠을 깊게 들 수 없던 지난밤이었다. 그나저나 엄마는 언제부터 주차장에 있었던 걸까... 정말이지 엄마의 부지런함은 알아줘야 한다. 남편에게 엄마를 부탁하고 간단히 세수와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수면부족으로 약간 푸석해 보였지만 덤덤한 표정이 작아진 속내를 감춰주는 것 같아 썩 맘에 들었다. 


오늘 나의 보호자는 엄마이다. 자궁이라는 장기가 주는 고통을... 남편은 당연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실질적인 공감에 도달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라면 임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나의 울컥이면서도 희망에 찬 복잡한 감정을 공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쿵쿵 울리는 그 통증을 엄마는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잘 다녀오라는 남편을 뒤로하고 동이 트기 전의 서늘하고 한적한 도로를 내달렸다. 주차를 하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발열체크와 코로나와 관련한 문답 표를 작성하고 당일입월실로 올라오니 5시 45분이었다. 6시 정각이 되면 문이 열린다고 써져있는 안내문처럼 당일입원실의 문은 6시 정각에 열렸다.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 당일입원실 A로 향했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혹시 모를 임신 가능성에 대비해 소변 검사를 했다. 침상을 배정받고 두 장의 안내문에 따라 환자복을 갖춰 입었다. 사실 환자복은 갖춰 입었다기보다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걸쳐 입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긴 했다. 


"무리하게 움직이면 하늘이 튀어나올 수도 있어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길고 두꺼운 마취 바늘을 손등에 달고 나니 남은 것은 기다림 뿐이었다. 괜히 바늘이 튀어나올까 오금이 저릿저릿해 핸드폰도 못하고 멍하니 누웠다. 화장실이나 가볼까 일어나던 찰나 간호사 선생님이 다급히 수술방의 연락을 전했다.


“선생님이 빨리 하자고 하시네요. 곧 모시러 올 거예요”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미 이동침대는 도착해 있는 상황. 엄마와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했다. 여러 개의 형광등을 지나자 "로봇수술"이라고 쓰인 방에 다 달았다. 




"수술 잘 받으세요"


나를 수술실까지 이동시켜준 분이 떠나고 나는 부직포로 된 파란 수술 모자를 쓴 채 대기실에 누워있었다. 천장에는 성경 구절인 듯 보이는 문장이 그곳 어디에 누워있어도 잘 읽힐 만큼 크게 쓰여있었고 어디선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 구절도 클래식 음악도 내 심장의 미친듯한 비트를 잠재울 수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 산부인과 선생님, 마취과 선생님이 차례로 다가와 이름과 환자 번호, 금식 여부, 치아상태를 물었다. 긴장하면 화장실부터 가고 싶어 지는 터라, 가장 친절해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께 용기 내어 "화장실 다녀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가실 순 있는데 그러면 일정이 딜레이 돼서.. 금식하셨으니까 나올 것도 없으실 거예요”라는 친절한 답변이 싸늘한 표정과 함께 돌아왔다. 나는 이미 내릴 수 없는 열차에 탑승해 있음을 깨달았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리고 수술방으로 옮겨져 갔다.

수술방에 들어가자 5명 정도의 의료진이 분주히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는 환자복을 벗기고, 누군가를 의료기록을 살피고, 누군가는 내 몸에 무언가를 부착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을 붙이던 무엇을 벗기던 이불을 덮은 채로 양해를 먼저 구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전신마취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라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제 주무시면 돼요"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이것만 끝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지?’

둘 ‘음…..’

셋 ‘왜 마취가 안되지?’

넷 ‘음…’

다섯 ‘말을 해야 하나’

여섯 ‘말을 해야겠….’


그렇게 나는 무의식의 세계로 입장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몸을 휘감는 강력한 추위와 함께 눈을 떴다. 다시 보이는 성경 구절과 익숙한 클래식 음악. 소변이 마려워 미칠 것 같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혹은 무의식 중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소변은 더 이상 마렵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마취 때문에 혀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춥다고 말하고 싶었다.


“주… 어ㄹ… 여…” 

“진통제는 위에 있어요” 

“추! 어..ㄹ! 여!"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두 번을 전하자 내 위로 이불이 폭닥하게 덮였다. 그러나 다시 잠들면 안 된다는 경고에 눈을 부릅뜨고 몇 분쯤 버텼을까 다시 병실로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엄마는 병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원을 위해서는 몇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했는데, 우선 마취에서 온전히 회복되어야 했다. 자력으로 앉아있으면 마취가 금방 깬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 시간쯤 버텼다. 제정신이 돌아오니 의사 선생님이 찾아와 지혈을 했던 거즈를 제거하며 상태를 물으셨다. 진통제를 맞고 큰 통증이 없어 수술부위가 작은가 보다 싶었는데 출혈량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는 아이패드 같은 기계로 수술을 해주신 의사 선생님과 비대면 회진을 했다. '와, 세상 진짜 좋아졌다.' 싶었지만 촌스러운 티 내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선생님과 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당일 입원실의 첫 번째 비대면 회진이었다고... 사실은 내 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비대면 회진을 지켜보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소변량까지 검사를 마치고 나니 퇴원 허락이 떨어졌다. 약 7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여러 장의 안내문과 한 달치의 호르몬제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땐 배가 조금 아팠지만 그 외에는 진통제로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누우니 뭔가 후련한 느낌이랄까, 숙원사업을 해낸 성취감이 느껴졌다.


일주일 뒤 방문한 외래에서도 호르몬제를 총 두 달 먹는 것 외에 특이사항은 없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고, 약을 다 먹고 난 후에는 임신 시도도 바로 가능하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뭔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서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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