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비즈니스맨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가장 먼저 배우는 교훈이 있다.
계약서를 완벽하게 써도, 그 계약이 베트남의 법 위에서 작동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이 후진적이어서가 아니다.
베트남 법체계가 처음부터 다른 논리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법문은 읽었지만 게임의 규칙은 모른 채 시장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베트남은 형식적으로 대륙법 계통의 성문법 국가다.
헌법을 정점으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 정부 의정(議定), 부처 통자(通牒)까지 위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이 체계만 보면 한국이나 프랑스의 법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위계의 바깥에 실질적 최상위 규범이 있다.
베트남 헌법 제4조는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를 영도하는 유일 세력임을 명시한다.
당의 결의와 노선이 법률보다 먼저 방향을 정하고, 법은 그 방향을 뒤따라 성문화된다.
당 조례는 단순한 당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법전은 읽을 수 있지만, 법의 실제 작동 방향은 당의 정책 문서에서 먼저 결정된다.
외국 기업이 이 구조를 모르고 들어오면, 계약서는 완벽하지만 판이 이미 다른 곳에서 짜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베트남 법령 체계는 헌법 아래 국회 의결, 정부 의정, 부처 통자까지 수십 개 층위로 구성된다.
이 층위 자체는 낯설지 않다. 문제는 법령의 수명이다.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이후 베트남은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투자법, 기업법, 토지법이 수차례 전면 개정됐다.
투자법 하나가 전면 개정되면, 그 아래 수십 개의 시행령과 부처 지침도 순차적으로 바뀐다.
더 까다로운 것은 타이밍이다. 모법이 먼저 시행된 뒤 시행령이 늦게 나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법문은 있지만 적용 기준이 아직 없는 공백기가 생긴다.
이 공백기에 허가 신청을 넣으면, 담당 기관마다 해석이 다르고 처리 결과도 달라진다.
계약 시점과 실행 시점 사이에 적용 법령이 달라지는 상황은 베트남에서 예외가 아니다.
법령의 안정성을 전제로 중장기 사업 계획을 짠 기업이 현장에서 처음 마주치는 벽이 바로 이것이다.
베트남은 중앙집권 국가처럼 보이지만, 법 집행 현장은 분권적으로 작동한다.
도이머이 이후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지방 권력이 강해졌고, 상향 집중된 권력체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지방 인민위원회는 성급(省級) 단위에서 광범위한 행정 재량을 갖는다.
중앙의 법이 지방 현장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집행되는 일은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외국인 투자자는 베트남에서 사업·투자 활동을 수행할 때 베트남 법률에서 규정하는 요구사항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이 요구사항이 지역마다 편차를 갖는다.
허가 절차, 환경 기준 적용, 토지 사용 승인 등에서 하노이와 호찌민, 그리고 지방 도시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행정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법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이며, 그 해석권은 지방 인민위원회 담당자의 손에 있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증가함에 따라 분쟁 사례들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분쟁의 상당수는 계약 위반이 아니다.
법 해석의 차이, 허가 조건의 변경, 지방 재량 행정의 결과다.
계약서가 아무리 정교해도 막아낼 수 없는 종류의 리스크다.
베트남에서 개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베트남 법률에 따라 개인은 상업 목적의 부동산 소유권을 가질 수 없으며,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이 부여된다.
취득할 수 있는 것은 토지사용권(Land Use Right, LUR)이다.
이 토지사용권은 일정 기간 동안 토지를 사용하고 양도·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다.
기간은 사업 목적에 따라 다르며, 갱신 조건은 법령 개정에 따라 바뀐다.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수십억 원의 설비를 들인 이후에도, 토지 사용권 갱신 과정에서 조건이 바뀌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한다.
장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기업에게 이것은 사업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외국인 투자가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영역으로 약 85개의 분야가 지정되어 있다.
금지 분야는 외국인 투자가 허가되지 않으며, 제한 분야는 법령에 규정된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 관련 업종은 이 제한 분야에 해당한다.
진출 업종이 제한 분야에 걸리는지는, 법문만 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지역에, 어떤 구조로 진입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베트남 시장의 성장성은 숫자로 증명되어 있다.
젊은 인구 구조, 제조업 기반의 확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베트남이 갖는 위치는 분명하다.
문제는 그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이다.
법 텍스트만 검토하고 들어가는 것은, 악보는 읽었지만 지휘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베트남에서 법은 당의 정책을 구현하는 도구다.
당의 방향이 바뀌면 법도 바뀐다. 지방의 재량이 중앙의 법문을 앞서는 경우도 있다.
토지는 국가 소유이며, 그 위에 세운 구조물의 안전은 사용권 갱신 여부에 달려 있다.
비즈니스 진출 전 법무 검토의 기준을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약서 한 장이 아니라, 지금 당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진출 지역의 인민위원회가 어떤 재량을 갖고 있는지, 사용하려는 토지의 권리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법을 안다는 것은, 법전을 읽는 것이 아니다.
법이 작동하는 방식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