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꽝득의 소신공양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저항은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
1992년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이 앨범 커버가 됐다.
흑백으로 처리된 그 사진 속에서 한 노인이 불타고 있었다.
가부좌를 튼 채로, 미동도 없이,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채로. 그 주변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울고 있었다.
이 사진을 자신들의 데뷔 앨범 커버로 선택한 밴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이었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이 4인조 밴드는, 첫 앨범의 얼굴로 30년 전 베트남의 승려를 불러들였다.
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보다 먼저 이 사진을 내세웠는가.
그리고 그 승려는 누구였으며, 왜 스스로 화염속에 불타고 있는건가
두 이야기를 이어붙이면, 저항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언어로 말해질 수 있는지 보인다.
하나는 침묵의 언어였고, 하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두 개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권력이 요구하는 복종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틱꽝득(釋廣德, Thích Quảng Đức). '틱(釋)'은 석가모니의 제자, 즉 승려를 뜻하는 베트남식 호칭이다.
속명은 람반팟(Lâm Văn Phát). 1897년 베트남 중부 나짱 인근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7살 때 승려였던 숙부를 따라 출가했고, 20살에 정식 수계를 받았다. 그 이후 수십 년간 베트남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교하고, 평생 30여 개의 절을 세웠다. 남베트남 불교계의 거목으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그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 1963년이었다. 그해 남베트남의 대통령은 응오딘지엠(Ngô Đình Diệm)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국민의 80% 이상이 불교도인 나라에서 불교를 탄압했다.
사찰을 폭파하고, 승려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했으며, 불교도 마을에서 강제 개종을 강요했다.
1963년 5월, 응오딘지엠의 형이 꽝빈성 가톨릭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석가탄신일 행사 자체를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금지령에 맞선 불교도들의 시위대에 경찰이 총격을 가했고, 사망자가 나왔다.
틱꽝득은 이 상황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분신을 결심하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짧고 단호했다. '나, 비구 꽝득은 이 나라 불교가 고난의 때임을 보고,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가 멸망해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이 한 몸 불살라 불교를 지키는 공덕을 행할 수 있기를 기꺼이 청합니다.'
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사이공 시내 한 네거리. 승려 행렬이 멈췄다.
틱꽝득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제자 승려들이 그의 몸에 휘발유를 부었다.
그는 염주를 쥔 채로 성호를 긋듯 가만히 있었다. 불을 붙였다. 불꽃이 치솟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AP 통신의 말콤 브라운(Malcolm Browne) 기자가 셔터를 눌렀다. 그 사진이 전 세계 신문 1면을 뒤덮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이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뜨거운 불꽃 속에서 15분간 미동도 하지 않다가, 숯덩이가 된 뒤에야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그 이후가 놀라웠다. 시신을 화장하는 과정에서 심장이 타지 않았다. 6,000도의 불로 6시간을 태워도 심장은 그대로였다. 영국 BBC와 미국 VOA는 '영원의 심장(Eternal Heart)'이라고 보도했다.
그 심장은 현재 베트남 국립 불교 사원에 보관되어 있다.
서양의 시각에서 틱꽝득의 분신은 자살로 분류됐다.
그러나 틱낫한(Thích Nhất Hạnh) 스님은 이것이 저항도, 자살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은 불교에서 몸을 불살라 공덕을 쌓는 수행이다.
틱낫한은 이렇게 말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권력 앞에서 논리 대신 몸을 태웠다.
틱꽝득의 소신공양이 세계를 움직인 것은 그 침묵 때문이었다.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대신, 그는 가부좌를 튼 채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가장 큰 소리였다.
권력은 외침을 무시할 수 있지만, 저 고요한 불꽃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틱꽝득의 분신 이후 남베트남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고, 케네디 행정부는 응오딘지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같은 해 11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응오딘지엠은 처형됐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RATM이 결성됐다. 보컬 잭 데라로차(Zack de la Rocha), 기타 톰 모렐로(Tom Morello), 베이스 팀 코머포드(Tim Commerford), 드럼 브래드 윌크(Brad Wilk). 넷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음악을 한다는 신념이었다.
1992년 11월, 데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이 에픽 레코드를 통해 발매됐다.
앨범의 첫 싱글 〈Killing in the Name〉이 나온 지 나흘 뒤였다. 앨범에는 10곡이 수록됐다.
〈Killing in the Name〉, 〈Bombtrack〉, 〈Wake Up〉, 〈Freedom〉.
이 곡들은 랩과 하드록과 헤비메탈과 펑크가 뒤엉킨 새로운 소리였다.
톰 모렐로의 기타는 기타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는 기타로 LP 스크래치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기계음을 흉내 냈으며, 때로는 비명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잭 데라로차의 보컬은 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선동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들렸다. '분노는 재능이다(Anger is a gift)'라는 구절이 〈Freedom〉에 있다.
이것은 RATM의 철학 선언이었다.
앨범은 미국 빌보드 히트시커스 차트 1위를 기록했고, RIAA로부터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2020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앨범 500' 목록에서 221위에 올랐다.
그러나 RATM이 이 앨범에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곡도, 사운드도 아니었다. 커버였다.
1963년 6월 11일 사이공의 사진.
이 선택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적 저항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밴드가, 역사상 가장 강렬한 저항 이미지를 앨범 얼굴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선택에는 더 세밀한 논리가 있다.
RATM의 음악은 시스템을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미국 경찰의 인종 폭력,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 정치 권력의 위선. 〈Killing in the Name〉은 경찰과 KKK단이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저항은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을 향한다. '이름을 내세운 살인(Killing in the Name)'이라는 제목 자체가 권위라는 포장지 안에 숨어 있는 폭력을 가리킨다.
틱꽝득의 분신도 같은 지점을 겨냥했다. 응오딘지엠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불교도를 탄압했다. 이름이 다를 뿐, 구조는 같다. 권력은 언제나 명분을 달고 폭력을 실행한다.
그러나 더 깊은 연결은 저항의 형식에 있다. RATM의 저항은 최대한 크고, 시끄럽고, 공격적이다. 기타가 비명을 지르고, 보컬이 고함을 친다. 반면 틱꽝득의 저항은 최대한 조용하고, 고요하고, 절제돼 있다.
화염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방법이었다.
두 저항은 극단적으로 다른 형식을 취하지만, 같은 핵심을 공유한다. 복종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RATM이 틱꽝득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충격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저항의 계보를 이어받겠다는 선언이었다. 우리의 기타 소리는, 30년 전 사이공 네거리에서 침묵으로 타오른 그 불꽃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차이를 먼저 보자. 틱꽝득은 66세의 승려였다. 그의 저항은 철저히 내향적이었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것,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 외부를 향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세계가 이 고통을 보기를 바랄 뿐이다.
그의 분신 목적은 '압제자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분노가 아니라 자비(慈悲)의 언어였다.
RATM은 20대의 미국인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저항은 철저히 외향적이다.
분노가 재능이라고, 분노를 선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시대를 넘어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둘 다, 기존 시스템이 요구하는 언어로 말하기를 거부한다.
틱꽝득은 청원서를 제출하고 대화를 요청하는 대신 몸으로 말했다.
RATM은 음악 산업의 상업적 언어 대신 저항의 언어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스템의 문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둘 다, 권력이 명분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구조에 저항했다.
틱꽝득은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불교 탄압에 맞섰다.
RATM은 '질서'와 '국가'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인종 폭력과 경제 착취에 맞섰다.
명분이 달라도 구조는 같다. 그 구조를 정확히 가리키는 것이 두 저항의 공통된 작업이었다.
사진 한 장은 말보다 빠르게 전달된다.
틱꽝득의 사진을 앨범 커버로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은 길고 복잡한 정치 선언보다 더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복종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복종은 정당한가.
RATM의 노래 〈Freedom〉 마지막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Anger is a gift.' 분노는 선물이다.
이것은 도발처럼 들리겠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것 앞에서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분노는 자연적인 현상이며, 분노 자체로서 이미 힘을 가진 에너지다.
그렇다면 틱꽝득은 분노했는가. 그의 표정과 자세는 분노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차분했고, 고요했으며, 절제돼 있었다. 그러나 소신공양이라는 행위 자체는 가장 격렬한 저항 행위 중 하나다.
다만 그것은 타인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을 태움으로써 세계를 바꾸려는 의지였다.
불교에서 이것은 자비의 극단이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끝내려는 것.
RATM의 분노와 틱꽝득의 자비는 사실 많이 다르다.
분노로서 불의를 인식하고, 자비로서 불의를 종식한다.
절제없는 저항은 완성되지 않는다.
분노 없는 자비는 무력하고, 자비 없는 분노는 방향을 잃는다.
나는 각자도생의 현 시점의 세계 시류와 강대국들의 극단적 이기주의, 기득권자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저항의 의미를 새롭게 배운다.
명분없는 전쟁과 시민들을 향한 야만적 살인,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 이기적인 역사의 현장앞에 나는 사실 매일 분노를 삼킨다. 그 분노는 늘 역사 속 저항안에 자리 잡는다고 믿는다.
틱꽝득의 심장은 지금도 불타지 않은 채로 사원에 남아 있다.
RATM의 음악은 아직도 저항의 시로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있다.
저항의 불꽃과 분노의 소리.
두 저항은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당신은 무엇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가.
https://youtu.be/2o9aoL0NWpw?si=b5-MdZtOCtg8_MkN
엿 먹어, 난 네가 시킨 대로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