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火爐)가 태운 것과, 태우지 못한 것
허가를 기다리던 기업이 있었다. 서류는 완비됐고, 법령상 요건도 충족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도장을 찍지 않았다. 결재가 지연됐고, 사업은 멈췄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지금은 예민한 시기입니다.'
베트남에서 '예민한 시기'란 반부패 캠페인이 한창인 시기다.
역설적이게도,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캠페인이 정상적인 행정을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응우옌푸쫑 전 공산당 총비서는 2016년 '반부패 지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이 캠페인을 '화로(Lò lửa, 불타는 화로)'라고 불렀다.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베트남 부패인식지수(CPI)는 100점 만점에 41점으로 세계 81위권에 머무는 나라였다.
고위 관료들이 부동산 개발 인허가, 국영기업 계약, 토지 사용권 배분 과정에서 수십억 달러를 빼돌렸다.
화로는 실제로 타올랐다. 전직 부총리, 대형 부동산 그룹 총수, 국영은행 임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베트남의 또 럼(To Lam) 서기장은 2024년 7월 병세가 악화된 응우옌푸쫑 전 총비서의 서거를 계기로 권한을 대리하게 된 후, 총비서로 추대되어 정권을 계승했다.
공안부장 출신인 그는 강력한 부패 척결 캠페인을 주도하며 당권과 대외적인 서열 1위 권력을 모두 쥐고 응우옌푸쫑 전 공산당 총비서의 측근들 부터 고위관료들을 척결하였다
2022년 상반기에만 정치국·서기국 관할 고위 인사 27명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전년 동기 대비 20명이 늘어난 수치였다. 베트남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의 척결이었다.
숙청 주요 일지
2021
반부패 캠페인 전면화
응우옌 푸 쫑 3선 연임 성공. 군·경찰 관료가 정치국 다수 점령. '불타는 용광로' 작전 가속화.
2024. 3월
보 반 트엉 국가주석 사임
권력서열 2위 국가주석이 '당규 위반'으로 전격 사임. 역설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2024. 4월
브엉 딘 후에 국회의장 낙마
차기 총비서 유력 후보였던 경제통 의장 퇴진. 경제 전문가 공백 우려 확산. 5주 간격 '두 기둥' 붕괴.
2024. 7월
응우옌 푸 쫑 총비서 사망
호찌민 이후 최강 지도자 별세. 공안부장관 또 럼이 권력을 접수하며 사실상 1인 체제 등장.
2024. 8월
또 럼 총비서 선출
평생 공안만 담당한 강경파. "성역 없는 반부패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 선언. 권력 집중 가속.
2026. 1월
제14차 공산당 전당대회
총비서·국가주석 겸직 가능성 대두. 65년 유지된 4주 집단지도체제 변화 기로. 신규 정치국원 19명 선출
겉으로 보면 괄목할 성과였다. 그러나 화로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화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도 데이기 시작했다.
반부패 캠페인이 강화되자 베트남 공무원 사회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했다.
호찌민시에서만 약 6,000명의 공무원이 이직하거나 퇴직했다.
부패의 유혹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결재를 잘못 내렸다가 감찰에 걸릴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남은 공무원들은 '복지부동(不動)'을 선택했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전략이 됐다.
인허가는 지연됐고, 행정 절차는 멈췄다.
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행정 서비스가 필요한 시민과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
베트남 정부는 2025년 행정 개혁을 단행했다. 63개 성을 34개로 통합하고, 공무원 14만 5천 명을 감축했다. 관료제를 줄이면 비리의 통로도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도기에 발생하는 행정 공백은 고스란히 일반 시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선거철마다 반부패 공약이 나온다. 새 지도부가 들어설 때마다 쇄신을 다짐한다.
그런데 베트남의 부패는 특정 인물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구조가 부패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행정 재량이 광범위하고, 법 집행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고, 공무원 급여가 낮은 상태에서 비공식 수입에 대한 묵인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 구조 안에서 부패는 예외가 아니라 관행이었다.
개인을 처벌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다음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유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응우옌푸쫑이 사망한 2024년 이후, 새 지도부 또럼 체제는 캠페인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선거 공약에서 반부패가 '정형화된 연설문'으로 반복된다는 현지의 냉소는 이 구조적 딜레마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은 필요하다. 다만 조건이 있다. 척결의 칼이 구조를 겨냥할 때만 장기적 변화가 가능하다.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면, 그것은 권력 재편이지 개혁이 아니다.
베트남의 반부패 캠페인이 진짜 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행정 재량의 범위를 줄이는 법령 정비, 공무원 급여의 현실화,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
이 세 가지가 없는 척결은 주기적으로 타오르다 꺼지는 화로일 뿐이다.
베트남 시민들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다.
공약을 들을 때마다 일부 시민들은 '이번엔 다를까'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도 같겠지'라고 답하는 냉소 속에 그 인식이 담겨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을 호아저씨의 추억을 되살리며 정부에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나 역시 정직하고 애국적인 젊은 정치인을 만나보고 그가 해온 업적과 겸손에 감탄한 적이 있다.
젊은 정치인들, 그들의 저력을 여전히 믿는다.
척결 캠페인이 타오를 때, 가장 먼저 몸을 낮추는 것은 고위 권력자가 아니다. 중간 관료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서류를 들고 기다리는 것은 시민이다.
반부패는 옳다. 그러나 옳은 목표가 잘못된 방식으로 집행되면, 피해는 목표와 무관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베트남 반부패 캠페인의 역설이 바로 여기 있다. 화로는 타올랐다.
그런데 재가 된 것 중 일부는 부패가 아니라, 부패와 아무 관계 없는 시민들의 시간과 기회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로는 다시 켜진다.
그 불이 구조를 태우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참고사항
쯔엉 미 란 (Truong My Lan) - 장미란
부동산 재벌 · 사형 선고
GDP 6%인 $270억 (한화 40조)횡령. 베트남 역사상 최대 부패 사건의 주인공. 숙청의 상징적 표적.
남편과 자녀들이 중국국적이라 전체 횡령 금액은 회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