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문화교류, 일방통행에서 상생으로
밤 열 시쯤이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낯선 채널 번호 2번에서 멈춘 것은 음악 때문이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기타를 쳤고, 뒤에는 영어로 된 간판이 보였다.
1980년대 한국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려면 이 채널뿐이었다.
바로 AFKN이었다.
공식 경로가 없었다. 위성안테나를 달아야 볼 수 있는 MTV는 일반가정에서는 꿈도 못 꿨다.
강남, 문화에 관심있는 부잣집에는 이 안테나가 아파트 베란다 창가에 걸렸다.
일반적으로 미군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어 노래들이 그 시절 한국 젊은이들의 음악 창고였다.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신세계처럼 들어왔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춤없이 음악만 들어선 절대 안될 일이다.
그 채널을 보던 나라가 1996년 아리랑TV를 만들었다.
한국어로 된 음악과 드라마를 전 세계에 내보내는 채널이다. 수신자였던 나라가 발신자가 됐다.
베트남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를 만나는 방식은 지금 두 갈래다.
하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들이다. K드라마, K팝, 한국 음식.
베트남 Z세대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정책과 프로젝트들이 밀어 넣은 것들이다.
문화원 사업, 관변 행사, MOU들이밀면서 사진 찍는 일.
나 역시 베트남에 진출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대표들을 만나고 느꼈던 소회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이였다. 힌트를 드려도 이상하게 차용해서 적용하셨다.
계산이 먼저 앞서는 방식이였다, 손님처럼 보이지 않았고 은근슬쩍 담넘어 가는 도둑처럼 보이는 컨텐츠와 프로젝트 일색이다. 문화사업에서는 무조건 팔고 보자는 방식은 더 이상 안통한다.
단기적인 수익을 보려 하면 오히려 실패한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자주 인사하러 가는 이웃이 되어야 문이 열리고 성공한다.
베트남 대중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그 다음 흡수가 된다.
정확하게는 우리 것을 가져가라는 방식이었다.
베트남의 것을 배우거나 흡수해서 함께 만들려는 움직임은 드물었다.
현재까지도 획일적인 포맷에 한국 내용을 채워 현지에 심는 방식말고는 없다.
PPT와 장밋빛 청사진이 그리는 것들은 오로지 숫자로면 표기되어 있지 장기적인 안목이 안보인다.
교류는 교환이다. 주기만 하는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힘의 불균형으로 굳어진다.
AFKN이 한국에 무언가를 남긴 이유는 단순히 음악을 틀어줬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청년들이 그것을 받아서 자신의 언어로 소화하고 나중에 다른 무언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받는 쪽이 능동적이었다. 그 과정이 교류다.
CJ CGV가 2011년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 우려가 있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영화 시장을 먹어치우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나는 당시에 BHD의 일을 하고 있었고 BHD는 현지에서 영화제작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베트남에선 CJ와 가장 포지션이 겹치는 현지 회사중 하나다.
당시의 회장님은 나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 회사에도 타진이 왔었습니다.아직 제안을 믿을 수 없어서 보류하고 있고 우려중입니다.라는 대답이셨다.
이런 우려는 현지 관계자들의 불안한 시선과 겹쳐있었다.
극장 체인을 늘리고, 한국 영화를 배급하고, 돈을 빼가는 구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나중에 달라졌다. 침략에서 친교로 정책을 바꿨다.
CJ CGV 베트남은 2019년 이후 로컬 영화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봉준호 같은 스타 감독이 베트남에서도 나와야 한다'고 말하며 영화 펀드를 조성했다.
베트남 감독 쩐 탄과 협업한 영화 <마이>는 2024년 베트남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CJ가 투자하고 베트남인이 연출하고 베트남 이야기를 담았다.
CJ문화재단은 2018년부터 '한-베 청년꿈키움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운영한다.
베트남 젊은 영화인의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 지원하고 해외 영화제 출품까지 돕는다.
이 지원을 받은 베트남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올라갔다.
CJ가 처음부터 이런 방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한국 영화를 가져가 상영하는 것이 주였다.
현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전환점에서 '베트남 영화 시장이 커야 CGV도 큰다'는 판단이 있었다.
상생이라는 말이 전략적 선택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믿을 만하다.
한류가 지금처럼 된 것은 정부 계획의 산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콘텐츠 산업이 절박하게 해외로 나가면서 시장에서 검증된 것들이 살아남았다.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가 불법스트리밍 사이트로 먼저 퍼졌고, 이후 음악이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국가 예산이 모든 것을 설계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원하되 주도하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가 찾아야 할 것은 컨텐츠가 아니라 사람이고 그 인재가 핵심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아리랑티비는 문광부 소속이라고 정부의 힘이였다고.
아니다 그 컨텐츠들은 문화인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좋은 컨텐츠가 없었다면 해외의 호응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반응이 없었다면 지금의 BTS는 없었을 것이다.
대중이 아직도 유튜브의 힘으로 BTS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할까 아니다 BTS라는 컨텐츠가 훌룡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으로 잘하는 회사가 시장에서 경쟁해 살아남은 콘텐츠를 전파하는 것,
그것이 오래가고 깊이 남는다
많은 해외관계자들이 한국정부의 지원을 부러워한다.
자세히 보면 문화인들이 만든 업적에 정부가 침만 발랐다. 실속은 잘 모른다.
정부가 천편일률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들은 예산이 끊기면 함께 사라진다.
베트남은 한국이 문화를 가르쳐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4,000년 역사와 자기 언어와 자기 음악이 있다.
쩐 탄 감독이 만든 <마이>는 한국인의 눈으로는 만들 수 없는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다.
CJ는 그 이야기에 기술과 자본을 얹었다. 그리고 이 영화 하나로 한 화 200억을 넘게 벌었다.
'받는 쪽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라'
우리가 중국에 영화인력을 보내고 우리의 시스템을 적용했지만 토사구팽(兎死狗烹)당했던 일을 베트남에서 다시 반복해선 안된다
그게 교류고 해외사업이 된다. 현지화하지 못하면 해외사업은 무조건 실패한다.
더 이상 어떤 힌트를 더 드려야 할까
AFKN은 한국에 팝송만 준 것이 아니다. 다른 언어로도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경험이 한국 콘텐츠 산업 안 어딘가에 쌓였다.
수십 년이 지나 봉준호가 영어로 수락 연설을 하고, 아리랑TV가 전 세계에 신호를 보냈다.
베트남과의 문화교류에서 한국이 줄 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고,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여는 방법이다.
CJ가 베트남에서 그 일을 조금씩 하고 있다.
베트남 시장은 분명하게 커지고 있다.
우리의 시스템과 인력을 보내고 그 시스템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나중에 수확할 수 있는 토양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 이제는 문화의 파급은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다 융합해서 발전하고 흡수한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만 마련되면 된다.
AFKN이 나에게 팝송을 틀어주던 방식으로 우리가 베트남에 무언가를 내보낼 때,
베트남은 그것을 받아서 베트남의 언어로 바꿔 언젠가 다시 세계에 내보낼 것이다.
교류는 그렇게 작동한다.
https://youtu.be/YnTaUb5IkxM?si=gkn98a7qxh_aZr7B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broadcast/2023/08/01/37GYDIOKPUB7AD42ADN426AJ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