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수를 보면 도시가 있다

하노이 포부터 호이안 까오라우까지 지역별 국수,교민들만의 한식화 레시피

by 무타리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면 그 도시가 보인다.

하노이 포(Phở)의 맑은 육수에는 북부의 절제가 있고, 후에 분보후에의 진붉은 국물에는 옛 궁중의 고집이 배어 있다. 다낭 미꽝(Mì Quảng)의 노란 면은 강황빛 중부 햇살을 닮았고, 호찌민 후띠에우(Hủ Tiếu)의 달달한 남방 국물은 코코넛워터 문화권의 것이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1,650킬로미터 뻗은 나라다. 같은 쌀로 면을 뽑아도 지역마다 형태가 다르고, 같은 소고기를 넣어도 양념이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킬로미터인데 베트남은 그것의 네 배다.

하노이 사람이 호찌민 국수를 처음 먹으면 '달다'고 하고, 호찌민 사람이 하노이 국수를 먹으면 '심심하다'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오래 살다 보면 국수 앞에서 도시를 구분하게 된다. 어떤 국물이 나오는지, 어떤 면이 쓰이는지, 테이블에 무엇이 함께 나오는지. 베트남 지역별 국수를 북에서 남으로 나열해보자.


북부 — 하노이, 하이퐁: 담백함의 미학

포보(Phở Bò) / 포가(Phở Gà) — 하노이

베트남 국수 이야기는 포(Phở)에서 시작한다. 소뼈를 몇 시간 고아낸 맑은 육수에 납작한 쌀면을 말고, 생우둔살이나 숙성 소고기를 얹는다. 계피, 팔각, 구운 생강, 양파, 카다멈을 조합한 향신료가 육수 깊숙이 녹아들어 비린 맛 없이 달고 맑다. 2018년 CNN이 선정한 세계 50대 음식에 올랐다.

하노이 포의 특징은 '덜 넣음'이다. 남부처럼 힘줄, 양지, 완자를 쌓지 않는다. 얇게 저민 고기 몇 점과 맑은 국물, 테이블에 라임과 쪽파만 있으면 된다. 북부 포는 고수(향채)를 거의 넣지 않는다는 것도 포인트다.

한국인 입맛에는 하노이 스타일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포가(닭 쌀국수)도 있다. 북부에서는 포가가 더 일상적이라는 말도 있다.

닭육수 특유의 구수함이 있고, 닭고기 특유의 담담한 단맛이 국물에 녹는다.

숙취해소에는 포가가 낫다는 현지 교민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분짜(Bún Chả) — 하노이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완자와 삼겹살 구이를 라임, 느억맘, 설탕, 식초로 만든 소스에 담근다.

거기에 쌀면 다발과 생허브 한 바구니가 나온다. 면을 소스에 찍어 고기와 함께 먹는 방식이다.

한국인 감각으로 치면 냉면 위에 구운 고기를 얹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2016년 버락 오바마가 하노이 방문 당시 르반흐우 거리 24번지에서 먹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분지에우(Bún Riêu) — 하노이

게나 새우 살을 갈아 만든 완자를 토마토 기반 새콤한 국물에 넣고 두부와 돼지 선지를 함께 담는다.

국물이 붉고 새콤하며, 한국인 중에는 처음엔 낯설어도 두 번째부터 찾게 되는 국수라는 후기가 많다.

분까(Bún Cá) — 하이퐁

항구도시 하이퐁의 대표 국수다. 생선뼈와 돼지뼈를 함께 우린 국물에 튀긴 잉어를 올리고, 신선한 야채와 잘게 썬 바나나꽃을 곁들인다. 타마린드 소스가 들어가 새콤하고 어향(魚香)이 강하다. 바다 냄새가 배어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하이퐁에서만 이 맛이 나는 이유가 있다. 항구에서 잡아온 생선을 그날 쓴다.


중부 — 후에, 다낭, 호이안: 매콤하고 진하고 복잡하다

분보후에(Bún Bò Huế) — 후에

베트남에서 가장 복잡한 맛의 국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소뼈와 돼지뼈를 기본으로, 레몬그라스, 새우젓(맘루옥), 고추기름, 발효새우소스를 넣어 끓인다. 국물이 붉고 진하며 매운데,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라 발효 향이 겹쳐 있다. 면도 다르다. 포에 쓰는 납작한 면 대신 두꺼운 둥근 쌀면을 쓴다. 소 정강이, 돼지족, 선지, 때로는 게살 완자까지 올라간다.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다. 궁중 요리 문화가 남아 있어서인지 음식 하나하나에 품이 많이 든다. 분보후에도 마찬가지다. 단번에 끓여 내는 국수가 아니다. 국물을 며칠 전부터 담가 두는 집도 있다.

분헨(Bún Hến) — 후에

재첩을 삶아 양념한 뒤 쌀면 위에 얹어 비벼 먹는다. 국물이 거의 없는 비빔 형태다. 후에 현지인들이 아침에 즐겨 먹는다. 재첩 특유의 쌉쌀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 강렬해 처음엔 낯설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그 맛을 찾게 된다.

미꽝(Mì Quảng) — 다낭·꽝남

다낭과 꽝남 지방의 영혼이라 불린다. 강황을 넣어 노랗게 물들인 넓고 납작한 쌀면을 쓴다. 결정적인 차이는 국물 양이다. 다른 베트남 국수와 달리 면이 겨우 잠길 정도로만 붓는다. 국물 요리가 아니라 소스 요리에 가깝다. 새우, 돼지고기, 달걀, 볶은 땅콩, 참깨 쌀과자(반짱), 생허브가 올라간다. 각 재료의 맛과 식감이 따로따로 살아 있다가 한 입에 합쳐진다.

단순하지만 고급스럽다.

까오라우(Cao Lầu) — 호이안

호이안에서만 제대로 맛볼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국수다. 쌀면과 달리 회갈색 빛을 띠는 면을 쓰는데, 호이안 근처 우물물과 잿물로 반죽해서 다른 데서는 재현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돼지고기와 생채소, 바삭한 크루통 같은 튀긴 면을 올린다. 일본 우동처럼 두툼하면서도 쫄깃하다. 국물이 거의 없고, 중국과 일본, 베트남 요리 문화가 교차하는 호이안의 역사가 이 면 하나에 담겨 있다.


남부 — 호찌민, 냐짱, 메콩델타: 달고 풍성하고 열대의 것

후띠에우(Hủ Tiếu) — 호찌민·메콩델타

남부 대표 국수다. 투명한 쌀면(또는 노란 에그누들)에 돼지뼈와 새우 살을 넣고 오래 끓인 달달한 국물이 특징이다. 코코넛워터나 사탕수수즙을 넣는 집도 있어 단맛이 두드러진다. '남방 스타일(Hủ Tiếu Nam Vang)'이 유명한데, 이는 캄보디아 프놈펜(남방·南邦)의 화교 스타일이 전해진 것이다. 건면으로 먹는 '후띠에우 khô(꼬)'도 있다.

포남부(Phở Nam) — 호찌민

남부의 포는 북부와 다르다. 면이 더 넓고 국물이 더 달다. 힘줄, 양지, 차돌, 완자를 고명으로 쌓아 올리는 '선택 조합형'이 발달했다. 테이블에는 숙주와 타이바질, 고수, 라임, 생칠리가 한 바구니 나온다. 직접 국물에 넣어 나만의 맛을 만든다. 하노이 포가 완성된 맛으로 나온다면, 호찌민 포는 반조리 상태로 나와 내가 완성하는 구조다.

분까쓰아(Bún Cá Sứa) — 냐짱

냐짱 앞바다에서 나오는 해파리(쓰아)를 고명으로 올린 생선 쌀국수다. 쫄깃하고 투명한 해파리 식감이 독특하다. 냐짱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 신선한 해파리는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

항구도시가 가진 특권을 그대로 담은 국수다.

뿐퀘이 (Bún Quậy) - 푸꾸억

"분퀘이"라는 이름은 "휘젓는 국수"를 뜻하고 일부 한국인에게는 총알오징어국수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밍밍한 느낌이나다가 육수의 진한 맛이 면을 다 먹어갈 즈음에 슬슬 올라온다.

호불호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인들도 맛있다고 평하는 국수인데 잘하는 집은 식사시간에 맞춰가면 자리가 없다.


면이 다르면 국수가 다르다 — 베트남 면 종류 정리

베트남 국수 이름 앞에 붙는 단어가 면의 종류를 나타낸다. 한국에서 국수, 우동, 라면이 면발로 구분되는 것과 같다.

퍼(Phở): 쌀가루로 만든 납작한 흰 면. 부드럽고 쫄깃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면이다.

분(Bún): 쌀가루로 만든 둥근 흰 면. 퍼보다 가늘고 부드럽다. 분짜, 분보후에, 분헨 등에 쓰인다.

미(Mì): 밀가루 또는 강황을 넣은 노란 면. 미꽝이 대표적이다.

바인까인(Bánh Canh): 타피오카 전분이 들어간 쫄깃하고 두꺼운 면. 중부에서 자주 보인다.

까오라우 면: 회갈색의 쫄깃한 면. 호이안 특산. 잿물과 우물물로 만든다고 전해진다.

후띠에우(Hủ Tiếu): 가늘고 투명한 쌀면. 남부에서 주로 쓰인다.


교민의 식탁 — 베트남에서 배운 국수 활용법

베트남에 오래 살면 현지 국수를 외식으로만 먹다가 어느 순간 집에서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베트남 재료와 한국식 조리법이 섞이기 시작한다.

쌀국수 남은 국물로 끓이는 라면 — '진품명품'

식당에서 포를 먹고 나면 국물이 반쯤 남는다. 그 국물을 집에 가져오기는 어렵지만, 배달로 먹고 남은 육수는 활용가능하다. 혹은 자주 가는 식당에서 국물만 봉지에 담아 와서 냉동해두고 필요시 해동해서 국물을 끓이고 한국 신라면을 넣으면 전혀 다른 차원의 라면이 된다. 단 물 3: 육수1 정도의 포션이 젤 좋더라. 너무 진하면 오히려 잘 안먹힌다. 쌀국수 육수 특유의 팔각·계피 향이 라면 스프의 짙은 감칠맛과 만난다. 고수를 싫어하면 빼고, 숙주나물 한 줌에 쪽파 송송 올리면 끝이다.

교민들 사이에서 '진품명품'이라고 불리는 조합이다.

차돌박이 볶음 쌀국수 — 현지에서 쉽게

국물 없이 볶는 쌀국수다. 재료: 쌀국수 건면 2인분, 차돌박이 100g, 숙주나물 2줌, 목이버섯 한 줌, 마늘 10개, 청경채, 양파 반 개. 양념은 간장 1, 액젓 1, 굴소스 1, 참기름 1, 깨소금. 차돌박이를 먼저 볶아 기름을 낸 뒤 채소를 넣고, 물에 불린 면을 넣어 같이 볶는다. 완성 직전에 양념을 넣는다. 분보남보(Bún Bò Nam Bộ) 스타일의 응용판이다.

피시소스+사태 육수 쌀국수 — 현지 재료 최대 활용

재료: 사태 삶은 육수 900ml, 아롱사태 200g, 쌀국수 면 120g, 숙주 적당량, 양파, 쪽파, 피시소스(느억맘) 2T, 베트남 조미료(핫넴투티) 1.5T. 육수를 끓이고 피시소스와 조미료로 간을 맞춘 뒤 고기를 넣고 한 번 끓인다. 그릇에 찬물에 헹군 면과 생숙주를 담고 육수를 붓는다. 핵심은 피시소스다. 특유의 깊은 발효 감칠맛이 일반 소금으로는 나지 않는다.

인스턴트 쌀국수 격상 — 비폰 업그레이드

베트남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하는 비폰(Vifon) 쌀국수 스프를 베이스로 쓴다. 스프만 넣고 먹으면 5%쯤 부족한 맛이다. 여기에 샤브샤브용 소고기나 차돌박이를 넣고, 호이신소스(뜽뗀), 스리라차 칠리소스(뜽엇), 베트남 청양고추 한두 개를 더한다. 라임 한 조각과 쪽파를 올리면 가격 대비 완성도가 올라간다.


국수는 기억이다

내가 일주일에 3번은 아침을 해결하는 동네 장인 국숫집이 있다. 조금만 늦으면 육수가 동나서 동네 사람들도 경쟁상대다. 빠르면 오후 2-3시 전에도 문을 일찍 닫는다. 그래서 한국분들에게 가리켜 드릴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베트남 쌀국수는 내 베트남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다

베트남을 떠난 교민들이 가장 먼저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아침 국수다. 새벽 여섯 시에 낮은 의자에 앉아 마시듯 먹는 포 한 그릇. 그게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국수는 지역마다 다르고, 집마다 다르고, 주인 손마다 다르다. 같은 하노이 포라도 밧단 거리 집과 호안끼엠 호숫가 집이 다르다. 레시피가 사람들의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나에겐 하노이식 쌀국수가 제일 맛있다. 하노이 출신 장모님이 해주셨던 음식이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1,650킬로미터를 국수로 읽는 방법이 있다.

남쪽으로 내려 올수록 국물이 아지고 면이 점점 두꺼워지고 고명이 점점 쌓인다.

그만큼 남쪽 사람들의 정도 북쪽보다 더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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