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세무·노무·관세·행정 — 5가지 리스크
베트남이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2025년 GDP 성장률 8%를 돌파했고, 삼성·애플 공급망이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누적 투자액 기준 1위 국가다. 그런데 투자를 결정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진입은 쉬워 보였는데 운영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세무 조사가 나왔는데 이전가격 문서화가 준비돼 있지 않다. 최저임금이 또 올랐다. 2025년 7월 행정구역 개편 때문에 허가증 주소가 현존하지 않는 지역명으로 돼 있다.기회는 리스크를 알아야 잡을 수 있다. 베트남 투자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는 5가지 리스크 영역을 알바본다.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이라면 사전 체크리스트로 쓸 수 있고, 이미 운영 중인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 점검이 필요한 항목이다.
베트남에서 외국인 투자가 금지되거나 조건부로만 허용되는 업종은 약 85개에 달한다. 언론, 인쇄, 출판, 항공 운수, 일부 소매 유통, 특정 부동산 운용 등이 대표적이다. 조건부 허용 업종은 외국인 지분 비율 제한이 있거나 현지 합작 파트너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2025년 시행된 개정 투자법(Law No. 143/2025/QH15)은 규제 완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투자증명서 발급 전 회사 설립이 가능해졌고, 산업단지 내 일부 프로젝트는 사전 승인 없이 사후 점검 방식으로 전환됐다. 투자자 입장에서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화된 법이 현장에서 즉각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개정 투자법의 상당 부분은 향후 정부 시행령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시행령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방 인민위원회마다 적용 기준이 다르고, 담당 공무원의 해석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하노이는 2025년 10월 기준으로 법인 1건당 총투자금 최소 20~30만 달러, 정관자본금 15만 달러 이상을 실무적으로 요구한다.
법인 설립 자체보다 '설립 후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는 구조인가'가 더 중요하다. 지분 구조를 초기에 잘못 설계하면 나중에 변경이 매우 복잡해진다. 투자 자금은 반드시 직접투자자본계좌(DICA)를 통해 송금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배당 송금이나 청산 단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체크포인트: 진입 업종이 외국인 제한 업종인지 먼저 확인한다.
소매 유통을 포함하면 하노이 기준 정관자본금 20만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법인 설립 대행보다 현지 법무 전문가를 통한 구조 설계를 먼저 한다.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 기업에게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적극 제공해왔다.
표준 법인세율이 20%이지만 첨단산업, 경제구역 내 투자 등 우대 업종은 5~10%의 특별 세율을 적용받아왔다. FDI 기업의 평균 실효 법인세율이 8% 수준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글로벌 최저한세(Pillar Two, 최저세율 15%)가 도입됐다.
베트남은 2023년 국회 결의안 제107/2023/QH15호를 통해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을 결정했고, 2025년 8월 시행령 제236/2025/ND-CP호로 세부 규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직전 4개 회계연도 중 2개 이상 연결 매출이 7억5천만 유로 이상인 다국적기업은 실효세율이 15%에 미달하면 추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삼성, LG 같은 대기업은 물론 이들의 협력업체 중 연결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한국 중견기업도 영향권 안에 있다. 기존에 받던 법인세 감면 혜택의 실질적 효과가 사라진다.
베트남 정부는 글로벌 최저한세 영향을 받는 FDI 기업이 약 1,015개에 달한다고 추정하며, 이들로부터 연간 6억 달러 이상의 추가 세수를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와 별도로,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세무조사도 강화되고 있다.
베트남 과세당국은 본사와 현지 법인 간 거래에서 정상가격을 벗어난 거래가 있다고 판단하면 세액을 조정할 수 있다. Decree 132 규정에 따라 특수관계자 거래가 있는 납세자는 매년 이전가격 문서(Local File, Master File)를 연간 법인세 신고 전에 구비해야 한다.
체크포인트: 연결 매출 7억5천만 유로 이상이면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 여부를 즉시 검토한다. 본사와 현지 법인 간 용역 제공, 원자재 공급, 로열티 지급 등 거래가 있다면 이전가격 문서를 반드시 구비한다. 세무조사가 개시된 뒤에는 문서를 소급해 준비하기 어렵다.
베트남의 강점 중 하나는 노동 비용이다. 2024년 기준 월평균 임금이 약 374달러로 태국(593달러), 말레이시아(973달러), 중국(1,138달러)보다 낮다. 그런데 이 비용이 매년 오른다.
베트남은 2000년 이후 최저임금을 20차례 인상했다. 2024년 7월에 6% 인상, 2026년 1월부터 다시 평균 7.2% 인상이 시행됐다. 제1지역(호찌민·하노이) 기준 2026년부터 월 최저임금이 535만 동으로 올랐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됐다.
임금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숙련 인력 부족이다. 베트남 전체 노동력 중 기술자격을 보유한 비율은 2025년 1분기 기준 약 29%에 불과하다. IT, 반도체, 고급 제조 분야에서는 숙련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2025년 상반기 생산·서비스 부문에서 인력 부족이 심화됐다는 KOTRA 보고도 있다.
이직률도 고려해야 한다.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려는 욕구가 강하지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쟁사가 있으면 이동이 빠르다. 핵심 인력의 이탈은 기술 이전, 고객 관계, 내부 데이터 유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계약서에 경업금지 및 기밀유지 조항을 구체적으로 넣어두는 것이 기본이다.
베트남 노동법은 해고 절차에도 엄격하다. 근거 없는 해고는 부당해고로 간주되어 복직 명령이나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노동법 관련 점검이 강화됐다는 현지 법무법인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체크포인트: 비용 계획에 연간 6~8% 수준의 임금 인상을 반영한다. 핵심 인력에 대한 경업금지·기밀유지 계약을 체결한다. 해고는 반드시 법적 절차(사유 명시, 징계위원회 소집, 통보 기간 준수)를 거친다.
2025년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산 수입품에 46% 관세를 선언했을 때 충격이 컸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 비중이 전체의 약 3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같은 해 7월 베트남은 미국과 협상을 타결해 20% 관세로 합의했다. 당초 46%보다는 낮지만, 협상 진행 중 적용됐던 10%보다 두 배 높은 수치다.
20% 관세가 의미하는 것은 비용 증가만이 아니다. 협정 조건에 따라 '베트남산' 판정을 받기 위한 원산지 규정이 강화됐다. 공급망에서 중국산 부품·원자재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관세 적용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중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한국 제조 기업은 공급망 재설계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이 미국과 무역협정을 빠르게 타결한 것은 긍정적이다.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투자 환경의 안정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협정 조건의 세부 이행 규정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원산지 검증 강화, 우회 수출 제재 등 추가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체크포인트: 제품의 대미 수출 비중을 파악하고 관세 20% 적용 시 수익성을 재계산한다. 공급망 내 중국산 원자재·부품 비율을 점검하고 원산지 규정 충족 여부를 미리 확인한다.
미-베트남 무역협정 세부 이행 규정의 추가 발표를 지속 모니터링한다.
베트남 공산당의 반부패 캠페인은 실제로 고위직을 처벌했다.
2012년부터 10년간 2,740개 당 조직과 167,700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전에는 '감사의 봉투'가 행정 처리를 빠르게 했다면, 이제는 봉투를 내밀어도 공무원이 처리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경우가 생겼다.
반부패 캠페인의 부작용은 '복지부동'이다. 결재를 해줬다가 나중에 부패 연루로 해석될 것을 우려해 공무원들이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NGO들이 프로젝트를 수개월째 진행하지 못하고, 기업 인허가가 이유 없이 지연된다. '이전엔 봉투를 줘야 됐다, 지금은 줘도 안 해준다'는 현지 교민들의 냉소가 현실을 담고 있다.
여기에 2025년 7월부터 대규모 행정구역 통폐합이 시행됐다. 40년 만의 대규모 행정 개편으로 지방 조직이 줄고 관할 구역이 바뀌었다. 그 결과 법인 허가증에 기재된 주소지가 통폐합으로 사라진 행정구역명인 경우가 생겼다. 세금 시스템에 등록된 주소, 공급업체에 통보한 주소, 계약서 주소를 모두 새로운 행정 경계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
비나한인 등 현지 컨설팅 업체들은 '2025년 7월 이후 모든 행정 절차가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며 '사업 프로젝트 일정이 확정된 경우 가능한 서둘러 진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과도기가 언제 끝날지는 명확하지 않다.
체크포인트: 인허가·등록 일정에 예상보다 2~3배 더 긴 시간을 배정한다. 법인 주소가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변경됐는지 확인하고, 세무서·은행·주요 거래처에 변경 사항을 통보한다. 허가 지연 시 담당 공무원 압박보다 상위 기관에 공식 문서로 문의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5가지 리스크를 나열하면 베트남이 복잡해 보인다. 실제로 복잡하다. 그런데 이 복잡함은 숨겨진 게 아니라 알면 대응할 수 있는 복잡함이다.
법규 리스크는 진입 전 업종과 지분 구조를 점검하면 대부분 차단된다. 세무 리스크는 이전가격 문서화와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 여부 사전 검토로 대응 가능하다. 노무 리스크는 인상 추세를 반영한 비용 계획과 핵심 계약 조항으로 관리한다. 관세 리스크는 공급망 원산지 구조를 정리하고 통상 협정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행정 리스크는 일정에 여유를 두고, 행정구역 변경 사항을 즉시 업데이트하는 것이 전부다.
베트남이 한국의 대(對)베트남 누적 투자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리스크가 없어서가 아니다. 알면서 들어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이해하고 진입하면 기회가 되고, 모르고 진입하면 피해가 된다.
베트남 투자에서 가장 비싼 수업료는 '무지'라는 두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