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않으면 울어야 하니까
베트남어로 '쯔이 꼬 어 비엣남(Chỉ có ở Việt Nam)'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베트남에서만 있는 일'. 한국식으로 치면 '이게 나라냐'쯤 되는 탄식인데, 베트남인들은 이 말을 분노가 아니라 피식 웃으면서 쓴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을 그렇게 소화한다.
베트남 페이스북에는 6,000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있다. 그 중 상당수가 매일 이 표현을 해시태그처럼 쓴다. 교통 사진, 공무원 관련 뉴스, 말도 안 되는 행정 처리 결과 아래에 '쯔이 꼬 어 비엣남'이 달린다. 베트남인들이 스스로를 냉소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한 자학이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웃음으로 말하는 방법이다. 직접 비판하면 잡혀가지만, 밈으로 만들면 잠시는 살아남는다. 그 냉소 안에 진짜 베트남 일상이 들어 있다.
호찌민이나 하노이에서 걷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다. 인도(人道)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 오토바이들이 인도를 질주하고, 오토바이들이 인도를 빼곡히 점령한다. 카페 테라스가 인도를 먹고, 노점이 인도를 먹으면 남은 공간은 없다.
보행자는 차도로 밀려난다. 그 차도에는 오토바이가 물결처럼 흐른다. 신호등은 있지만 빨간불은 '멈춰라'가 아니라 '잠깐 속도를 줄여라'처럼 운용된다. 횡단보도는 설계도에나 있는 것이고, 현실에서는 오토바이 물결을 직접 뚫고 나가야 한다.
베트남인들은 이것을 스스로 냉소한다. '베트남에서 인도는 주차장이다.' '빨간불은 장식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도 오토바이를 인도에 올린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다. 인프라가 교통량을 따라가지 못한 40년의 결과다.
재미있는 건 외국인들이 '어떻게 저 오토바이 사이를 건너냐'고 경악할 때, 베트남 현지인들은 태연하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봐온 풍경이라 공포감이 없다. 다만 그것이 정상이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냉소한다.
베트남에서 뭔가를 처리하려면 서류 외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봉투다. 정식 명칭은 없지만 '감사의 문화(văn hóa cảm ơn)'라는 완곡한 표현이 있다. 공무원에게 서류를 접수할 때, 허가를 받을 때, 빠른 처리를 원할 때 — 봉투 하나가 속도를 바꾼다.
2025년 400억 동 규모의 건설 뇌물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이 한 말이 화제가 됐다. '베트남의 비즈니스 관계에는 감사의 문화가 존재하며,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변호인이 한 말이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은 이 문장에서 웃음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경찰에게 적발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면허증 문제, 헬멧 착용 방식 등 사소한 꼬투리가 잡히면 경찰서로 끌고 가려는 신호가 온다. 그때 봉투를 꺼내면 그 자리에서 해결된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공안은 고가 오토바이를 잘 잡는다'고 냉소한다. 벌금이 목적이 아니라 흥정이 목적이라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도, 학교에서도, 허가 기관에서도. '감사의 봉투'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는 필수다. 베트남인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쓰고, 쓰면서도 냉소한다. 그게 '쯔이 꼬 어 비엣남'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공산당의 대대적인 반부패 캠페인 '불태우기(đốt lò)'는 실제로 고위 관료들을 잡아들였다. 2012년부터 10년간 2,740개 당 조직과 167,700명 이상이 징계를 받았다. 전직 부총리, 장관, 지방 당서기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공무원들이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재를 해줬다가 나중에 이게 부패 연루로 해석될까봐, 허가를 내줬다가 감사 대상이 될까봐
그냥 미룬다. 책임지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됐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이것을 냉소적으로 정리한다. '이전엔 봉투를 줘야 처리됐다. 지금은 봉투를 줘도 안 해준다.' 반부패 캠페인이 부패를 줄인 게 아니라, 행정을 마비시켰다는 비판이다. NGO들이 프로젝트를 수개월째 진행 못 하고, 기업 허가가 지연되며, 도시 인프라 공사가 멈춘다.
베트남의 유명 속담이 있다.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서 대책을 만든다(trên có chính sách, dưới có đối sách).'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반부패 캠페인도 그 법칙을 비껴가지 못했다.
2021년 11월. 당시 베트남 공안부 장관 또럼(현재 베트남 최고권력자)이 런던에서 마르크스 묘소에 헌화한 뒤, '솔트베'라는 별명의 터키 유명 셰프에게 2,000달러짜리 금박 스테이크를 대접받는 장면이 퍼졌다. 베트남 소셜미디어는 들끓었다. 공안부 장관이 국민 1인당 GDP 2,000달러 수준인 나라에서 2,000달러짜리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었다.
이날 식사의 전체 비용과 결제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관의 월급은 수당을 제외하고 600~800달러(약 71~94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뒤 다낭의 면 국숫집 주인 부이뚜언람이 검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솔트베 흉내를 내며 칼국수에 파를 뿌리는 패러디 영상을 틱톡에 올렸다. 영상은 순식간에 수백만 뷰를 기록했다. '파 뿌리는 국숫집 사장'이라는 별명으로 베트남 인터넷 스타가 됐다.
그 다음이 'Only in Vietnam'이다. 경찰이 그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영상을 삭제했다. 1년도 안 돼 그는 '국가에 반하는 선전' 혐의로 체포됐다. 국숫집 패러디 영상 한 개로 징역형을 받은 것이다.
베트남인들이 이 사건을 냉소적으로 부르는 방식이 있다. '밈은 허용되지 않는다. 권력을 웃기면 잡혀간다.'
그리고 그 냉소 자체도 너무 크게 표현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작은 글씨로, 밈으로, 비유로 돌려 말한다.
2022년 9월 하노이 의대에서 열린 보건부 공식 행사가 있었다. 행사 스크린 배경으로 보건부 로고가 띄워졌다. 로고는 뱀이 청진기를 감아쥔 전형적인 의료 심볼이었다. 그런데 그날 올라온 버전에서 뱀의 입에는 봉투가 물려 있었다.
이것이 공식 행사 화면에 그대로 투사됐다. 누가 일부러 바꿔 넣은 것인지, 실수로 수정본이 올라간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은 바로 퍼졌고 베트남 6,000만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돌았다. 국영 미디어도 아무 논평 없이 보도했다.
봉투를 문 뱀. 베트남인들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이미지였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수술을 받으려면, 좋은 병실에 배정받으려면 — 의료계도 봉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로고는 반박이 불가능한 밈이 됐다.
베트남 경제는 2025년 8% 성장했다. 삼성, 애플 공급망,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행정 처리 속도는 다른 시간대에 있다.
외국인이 워크퍼밋 하나를 받으려면 열 개가 넘는 기관에서 서류를 받아야 한다. 각 기관은 다른 양식을 원하고, 양식은 이미 구식이고, 담당자는 바뀌어 있다. 사업 등록은 서류가 완비됐어도 몇 주씩 걸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 '서류 하나가 빠졌다'는 통보가 온다.
베트남인들이 이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한국엔 인맥, 중국엔 꽌시, 베트남엔 띵깜(tình cảm, 정감)이 있다.' 공식 루트가 막힐 때 개인적인 관계망이 열어주는 뒷문.
공식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비공식 시스템이 발달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우리가족도 현지 국립병원에서 이런 루트로 줄서기를 하지 않고 프리패스를 이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거니와 진료받기가 어렵다.
사립병원이나 국제병원은 진료비가 많이 드니 이게 훨씬 효율적이다.
경제 성장과 행정 현실의 괴리. 베트남인들은 이것을 '로켓이 달리는데 기차길 위에 올라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속도는 최신인데 인프라는 구식이다. 이것도 'Only in Vietnam'이다.
베트남 인터넷 밈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활발한 축에 든다. 그 활력의 뒤편에는 이유가 있다. 직접 말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비틀어 말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면 국가에 반하는 선전으로 잡혀갈 수 있다. 그래서 웃음으로 말한다.그리고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냉소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벼락같이 화를 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웃음의 공격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없다.' 베트남 공산당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공개적인 조롱이라는 분석이 있다. 솔트베 패러디를 한 국숫집 주인이 잡혀간 것이 그 증거다. 권력은 비판보다 웃음을 더 무서워한다.
'쯔이 꼬 어 비엣남'은 포기의 언어가 아니다. 차라리 이것이 냉소 안에 든 날카로움이다. 웃으면서 보는 것들을, 웃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들을, 기록한다. 그게 베트남인들이 자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몽골을 세 번 이긴 나라, 미국도 이긴 나라. 그리고 오늘도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 앞에서 피식 웃는 나라.
그 웃음 안에 베트남의 진짜 현실이 있다.
*만약 이런 글들을 베트남에서 쓰고 있다면 나도 잡혀갈지도 모른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