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 오래 살아보니

여행자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

by 무타리

처음 왔을 때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못 잤다. 새벽 네 시에도 창밖이 웅웅거렸다.

창문을 닫아도 진동이 느껴졌다. 그게 언제부터 들리지 않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아 이 도시가 조용해졌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익숙해진 것이었다.

지금은 밤늦게 까지 가라오케를 틀어 젖히는 이웃들의 노랫소리가 오히려 정겹다.

응 ㅎ 나도 나중에 그렇게 친구들 불러다 파티하면 되지 뭐, 잘 노셈...하고 만다

호치민에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온다. 무언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변한 건 도시가 아니라 나였던 것. 그 차이를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 호치민은 혼돈이다.

신호 없이 달리는 오토바이, 인도를 점령한 노점, 섞여 있는 냄새들.

런데 살면 살수록 이 도시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게 보인다.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오토바이는 혼돈이 아니라 유기체다

그들의 환경에선 최선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였다.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생계의 수단이며 생활 그 자체다.

그런데 처음 호치민 도로를 보면 교통이 무법천지처럼 보인다.

신호를 무시하고, 역주행을 하고, 인도 위로 올라온다.

그런데 그 안에는 규칙이 있다. 명시된 규칙이 아니라 암묵적인 것이다.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갑자기 멈추지 않는다. 부드럽게 빠져나가고, 부드럽게 받아준다.

보행자가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걸어가면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피한다. 어설프게 달리면 오히려 위험하다.

리듬이 있다. 오토바이 떼는 새떼가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움직인다. 일원이 되면 무섭지 않다.

그 리듬을 몸이 기억하는 순간 이 도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법이 아니라 맥락으로 돌아가는 도시. 호치민의 첫 번째 수업이다.


계절은 둘이다 — 더운 계절과, 더 더운 계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호치민에 적응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계절 감각 상실이다.

일 년 내내 더우니까. 북부 하노이는 그나마 겨울에 좀 선선해지지만, 호치민은 연중 30도 안팎이다.

그래도 계절이 있다. 우기와 건기다. 5월부터 10월까지 우기엔 오후가 되면 하루에 한 번은 폭우가 쏟아진다. 정확히 30분이다. 30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추고 햇살이 다시 나온다. 처음엔 이게 신기했고, 1년이 지나면 이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는다. '비 피하고 가자'는 말이 일상이 된다.

건기가 되면 하늘이 선명해진다. 공기가 달라진다. 건기의 호치민 저녁은 의외로 선선하다.

바람이 분다.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에 좋다. 한국의 가을과 다르지만, 그 나름의 쾌적함이 있다.

공기의 습도, 저녁 바람의 온도, 빗소리의 강도.

오래 살다 보면 달력아닌 피부의 감각으로 계절을 읽게 된다


이 도시의 리듬은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한다

호치민 사람들은 일찍 일어난다. 새벽 다섯 시면 동네 노점이 열린다. 쌀국수 집이 문을 연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공원을 채운다. 덥기 전에 하루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침 여섯 시 반에 동네 포(Phở) 집에 가면 이미 만석이다. 현지인들도 뜨거운 국물을 마시듯 국수를 헤치운다. 에어컨도 없는 좁은 집에서. 더운 나라 사람들이 뜨거운 걸 마시는 이유가 있다.

땀을 내면 더 시원해진다. 한국사람들과 이 얼마나 비슷한가.

오후 열두 시 반에서 두 시 반 사이가 점심 낮잠 시간이다.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직원들이 책상에서 잔다. 처음엔 이게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됐다. 가장 더운 시간을 쉬고, 저녁 늦게까지 일한다. 이 도시의 생체시계가 그렇게 맞춰져 있다.

오래 살면 이 리듬에 몸이 맞춰진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길게 쓰고, 낮에 좀 쉬고, 저녁을 느긋하게 보내는 것. 한국식 시간표와 다른데, 사는 동안은 이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한국인이 많아서 편하고, 한국인이 많아서 불편하다

호치민에는 한국인이 많다. 특히 7군, 빈탄 지구, 2군 타오디엔, PMH 일대에는 한국어 간판이 즐비하다.

한국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사고,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한국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한국어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처음엔 이게 편하다. 낯선 곳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안도감이 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게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살면 베트남에 있는데 베트남을 모르게 된다. 현지어를 배울 기회가 없고, 현지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고, 이 도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몇 년을 살아도 '한인 타운'에만 있었다면 베트남을 여행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현지 오래된 교민들이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베트남어로 흥정하고, 현지 시장을 혼자 돌아다니고, 베트남 친구가 생기는 것.

그때부터 다른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인 커뮤니티는 정착의 발판이다. 그런데 발판은 디뎌야 하는 것이지 거기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자존심이 세다

호치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어느 쪽이든 '가진 사람' 쪽이다.

베트남 평균 월급이 30만 원 안팎인 나라에서, 서울 기준으로 생활하는 한국인은 그냥 부자다.

하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보면 대도시 현지에 자가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현재의 당신보다 더 부자일수도 있다. 자기 집앞에서 시골 부모님이 보내준 채소를 팔고 있는 동네 어떤 아줌마는 월세로 한달에 4,000불을 받는다.이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과 알고 사는 것은 다르다.

택시 기사가 바가지를 씌우는 것, 시장에서 가격이 두 배로 나오는 것, 음식점에서 외국인 메뉴판이 따로 있는 것. 처음엔 화가 난다.

불합리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것 그리고 더 나중엔, 그 차이를 좁혀가는 방법을 배운다.

오토바이 세차를 하러 갔는데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의 두배를 내라고 하는 직원을 베트남말로 훈계하면 주인이 다가와서 죄송하다고 웃으면서 나를 얼랜다.

신 로이(Xin lỗi) 보다 꼼 사우(Không sao)가 더 정확하다.

미안해보다 괜찮아가 최대한 그들에겐 정중한 표현이 된다.

베트남의 미소는 죄송하다라는 또 다른 표현이다.

처음에 한국인들은 더 기분나쁘다고 더 역정을 내지만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공산국가에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공개재판의 심판대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웃으면서 의연해야 차라리 욕을 덜 먹는게 체감화되어 있다.

베트남어로 직접 가격을 물어보고, 현지인과 같은 노점에서 같은 가격을 내고 먹는 것.

이 도시에서 오래 살면 '현지화'의 정도가 가격표에 나온다.

같은 동네에서 나는 얼마를 내고 옆집 베트남 아주머니는 얼마를 내는가.

그 차이가 좁혀질수록 이 도시에 더 깊이 들어온 것이다.

돈 앞에서 솔직한 것이 이 도시의 미덕이기도 하다.

이 도시 자체가 겉으로 예의 바르게 포장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은 종종

베트남에 와서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경제 수준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옷차림이 소박하고, 가게가 허름하고, 말이 안 통한다고 해서 무시하는 태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걸 다 느낀다.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의 오랜 지배와 전쟁을 모두 이겨낸 나라다. 그 자부심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겉으로 친절하고 부드럽지만,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조용히 마음 문을 닫는다. 다시 열기 어렵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업무에서도, 개인 관계에서도 벽이 생긴다.

반대로, 진심으로 대하면 그 진심을 안다.

베트남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가족 이야기를 물어보고, 베트남 음식을 맛있다고 말하는 것.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짜로 그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다르게 돌아온다.

우리와 같은 유교국가의 사람들이라 상당수가 비슷한 가정교육과 비슷한 정감을 가지고 커온 사람들이다.

나이가 어리고 현재의 당신보다 보수가 적다고 해서 그들의 인품이 저렴하지 않다.

내가 현지에서 피하는 한국인의 부류들은 "개도국의 사람들을 낮게 대하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당신이 필요할 때만 당신을 찾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효율적으로 대한 건데,

예를 들면 만나자마자 "월급은 얼마야 / 에어컨없이 지내는게 힘들지 않아" 라는 묻는 행동이다.

상대는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것.

우리 부모님들도 예전에 도시에 상경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신 분들이다.

무례함을 최대한 피하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해라.

당신의 효율은 그저 인간을 돈으로 단순화시킨 당신만의 효율일지도 모른다.

일부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막돼먹은 특수한 인종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 중 상당수가 이런 무례함에서 나온다.

나도 그들을 그렇게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차라리 오해라고 부르고 싶을 뿐이다.


이 도시가 좋아지는 순간

오래 살다 보면 이 도시가 좋아지는 순간이 온다. 구체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저녁 먹고 동네를 걷다가 노천 카페에 앉았을 때.

오래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베트남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오토바이 행렬을 보는 것.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이 도시는 그걸 허용한다.

서울에서는 노점 앞에 앉아 한 시간을 보내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그냥 그게 저녁이다.

아파트에서 우기 폭우가 쏟아지는 걸 내려다볼 때. 창문에 빗방울이 두드러지는 소리, 30분 뒤에 멈추는 것까지 기다리는 시간. 베트남이 아니었다면 이 리듬을 몰랐을 것이다.

거창한 것이 아닌 같은 동네 커피숍 주인이 내 주문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내준다든가, 시장 아주머니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해줬을 때 별거 아니지만 현지 친구가 생겼다는 기분이 든다

이 도시를 떠나는 날, 공항에 가면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장면이야 말로 비싼 기념품을 산 것보다 더욱 값어치가 있다.


살았다는 것과 머물렀다는 것 사이

호치민에서 몇 년을 보냈어도 어떤 사람은 '살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있었다'고 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현지 사람과 현지어로 한 번이라도 진짜 대화를 해봤는가.

그들이 처한 환경에 내가 가슴으로 같이 아파한 적이 있는가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기준이 아닌 이 도시 자체의 기준으로 무언가를 판단해봤는가.

여행자는 이 도시를 구경한다. 거주자는 이 도시에 처한 환경들을 살아낸다.

오래 살면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되는 시간이 온다.

현지인처럼 살면서 한국에 살때와 비교하고 스스로 뒤쳐지고 있는게 아닌지 고민이 시작될 때쯤 이 도시에서 제대로 산 것이다.

오토바이 소리가 언제부터 들리지 않았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미 그렇게 됐다는 것.

베트남에서 오래 산다는 게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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